
<굿 포 낫씽>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와 너에게
눈이 가득 쌓인 흑백 화면 속 친구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떠올리게 한다. 교복 위로 삐져나온 후드티, 불량해 보이는 귀걸이, 불안한 세 친구의 시선은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 속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별일 아닌 사건 하나에 하루가 흔들리고, 이유 없는 불안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프란시스 하’의 얼굴까지 겹친다.
지금은 아시아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인 미야케 쇼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 <굿 포 낫씽>은 그렇게 익숙한 이미지들로 시작한다.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순간과 장면들을 절제된 시선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는 자연스레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보여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익숙한 이미지들은 마치 관객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과거 어느 한 순간일 것이다. 감독은 바로 그러한 느낌, 청춘의 가장 애매하고 느슨한 시간을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테츠오(시바타 타카야), 이와마(타마이 히데키), 타니(산단 토모아키)는 선배 이타미(쿠시노 코이치)가 일하는 보안 경비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사장은 일거리도 없는데 세 명이나 데려온 이타미가 못마땅하지만, 나름 무언가를 배워보려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삼킨다. 사회로 나가기 직전의 막연함은 세 친구의 눈빛과 표정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고, 어른이 되기 직전의 서투름은 예상치 못한 절도 사건을 겪으며 터져 나온다. 선배인 이타미도 후배들을 챙기려는 따뜻함을 보이지만, 정작 자신도 불안한 청춘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자연스럽게 사회인이 되어 가는 캐릭터들을 지켜보다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내가 저 나이일 때 저런 표정이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된다.
흑백으로 촬영된 화면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어느 순간을 불러온다. 그것은 어느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관객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의 향수에 가깝다. 미래는 막연하고, 현재는 별것 없으며,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할 만큼 냉소적이지도 않았던 시간. 이 영화가 주는 향수가 과하지 않으면서 이질적이지도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은 그 시절을 미화하지도, 비극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있었던 그대로 두고, 카메라는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이들을 바라본다.
제작, 각본, 연출, 촬영, 편집까지 혼자 해낸 이 영화는 오히려 그래서 더 담백하다. 겉멋이 들어 보이는 세 친구의 행동은 튀지 않고, 카메라는 그들의 실패와 허세를 굳이 확대하지 않는다. 대신 성인이 되기 직전, 누구나 한 번쯤 겪었던 그 어정쩡한 시기의 공기와 냄새를 흑백 화면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상태에서의 불안과 자신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순간들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 한겨울, 픽업트럭 뒤에 맨손으로 올라탈 만큼 뜨거운 이들의 청춘은 겉보기엔 불량스럽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가만히 두면 한 명쯤은 먼저 관두지 않을까 싶었던 세 친구는,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버텨보려 한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청춘. 자전거를 훔치는 것이 일상이었던 고등학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일하는 회사의 차를 도둑맞으며 처음으로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이들에게는 커다란 좌절로 다가온다. 세상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다.
삶은 원래 부조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난한 여정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큰 의미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할지라고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부조리한 제목 <굿 포 낫씽>에 대한 해석이다.
이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을 지나온 모두의 이야기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이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소중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굿 포 낫씽>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와 너에게
눈이 가득 쌓인 흑백 화면 속 친구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떠올리게 한다. 교복 위로 삐져나온 후드티, 불량해 보이는 귀걸이, 불안한 세 친구의 시선은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 속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별일 아닌 사건 하나에 하루가 흔들리고, 이유 없는 불안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프란시스 하’의 얼굴까지 겹친다.
지금은 아시아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인 미야케 쇼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 <굿 포 낫씽>은 그렇게 익숙한 이미지들로 시작한다.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순간과 장면들을 절제된 시선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는 자연스레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보여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익숙한 이미지들은 마치 관객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과거 어느 한 순간일 것이다. 감독은 바로 그러한 느낌, 청춘의 가장 애매하고 느슨한 시간을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테츠오(시바타 타카야), 이와마(타마이 히데키), 타니(산단 토모아키)는 선배 이타미(쿠시노 코이치)가 일하는 보안 경비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사장은 일거리도 없는데 세 명이나 데려온 이타미가 못마땅하지만, 나름 무언가를 배워보려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삼킨다. 사회로 나가기 직전의 막연함은 세 친구의 눈빛과 표정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고, 어른이 되기 직전의 서투름은 예상치 못한 절도 사건을 겪으며 터져 나온다. 선배인 이타미도 후배들을 챙기려는 따뜻함을 보이지만, 정작 자신도 불안한 청춘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자연스럽게 사회인이 되어 가는 캐릭터들을 지켜보다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내가 저 나이일 때 저런 표정이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된다.
흑백으로 촬영된 화면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어느 순간을 불러온다. 그것은 어느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관객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의 향수에 가깝다. 미래는 막연하고, 현재는 별것 없으며,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할 만큼 냉소적이지도 않았던 시간. 이 영화가 주는 향수가 과하지 않으면서 이질적이지도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은 그 시절을 미화하지도, 비극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있었던 그대로 두고, 카메라는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이들을 바라본다.
제작, 각본, 연출, 촬영, 편집까지 혼자 해낸 이 영화는 오히려 그래서 더 담백하다. 겉멋이 들어 보이는 세 친구의 행동은 튀지 않고, 카메라는 그들의 실패와 허세를 굳이 확대하지 않는다. 대신 성인이 되기 직전, 누구나 한 번쯤 겪었던 그 어정쩡한 시기의 공기와 냄새를 흑백 화면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상태에서의 불안과 자신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순간들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 한겨울, 픽업트럭 뒤에 맨손으로 올라탈 만큼 뜨거운 이들의 청춘은 겉보기엔 불량스럽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가만히 두면 한 명쯤은 먼저 관두지 않을까 싶었던 세 친구는,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버텨보려 한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청춘. 자전거를 훔치는 것이 일상이었던 고등학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일하는 회사의 차를 도둑맞으며 처음으로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이들에게는 커다란 좌절로 다가온다. 세상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다.
삶은 원래 부조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난한 여정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큰 의미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할지라고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부조리한 제목 <굿 포 낫씽>에 대한 해석이다.
이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을 지나온 모두의 이야기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이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소중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