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리 장만옥>
혐오, 그 위에 피어오르는 웃음과 연대
보통의 퀴어 영화라고 하면 청춘과 여름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젊은 청춘 시기에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지켜나가는 성 가치관과 사랑, 그리고 필수적으로 붙어오는 아픔. 어쩌면 공식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퀴어 영화들이 이 소재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반리 장만옥>은 다르다. 한국의 중년 여성 장만옥(양말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이미 세간의 불편한 시선들을 이겨내며 살아왔고, 그쪽으로는 이골이 난 단단하고 약간의 꼰대미를 겸비한 이 주인공은 고통 대신 유머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오랜 기간 성소수자들의 갈 곳이 되어줬던 장만옥과 그의 가게 '레인보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젊은 세대들이 향유하기엔 올드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20년 동안 돈 안 돼도 너희를 위해서 한 거라며 통탄해도 후배들의 눈에 만옥은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꼰대 선배일 뿐이다. 비건은 먹을 걸 가리는 적응 안 되는 유행, 지금 그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늘 해온 음식만을 대접하며 생색내는 옛날 사람.
차별과 편견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사람이라 해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차별에 맞서며 단단해진 심지가 때로는 유연함을 잃은 완고함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아이러니가 만옥이라는 인물을 훨씬 입체적으로 만든다. 동시에 그것이 이 영화가 한국 퀴어들의 서사를 마냥 합일시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의견이 맞지 않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돌아온 고향 이반리는 예나 지금이나 정상성에 대한 집착과 소수자에 대한 배타심으로 꽉 막혀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머리가 짧은 여자아이에겐 아들인 줄 알았다, 왜 머슴아처럼 하고 다니냐며 겉모습에 왈가왈부한다. 장만옥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것도 그의 성적취향을 병이라고 터부시하는 시선 때문이었다.
심지어 현 이장인 전 남편 철주(박완규)는 허례허식에 집착하며 마을 사람들의 복지에는 관심 없고 돈 되는 일, 자신의 명예에 이로운 일만 찾는다. 어르신들 안부 잘 챙기고 마을에 관심을 가져달라 말해도 저는 마을 이장이지 심부름꾼이 아니라며 발전기금부터 내라고 아우성치기 일쑤다. 결국 정말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 홀로 쓸쓸히 죽어가던 이웃 순이씨를 반찬을 주러 들른 만옥이 살려내자, 소수의 마을 사람들은 만옥에게 이장 출마를 권한다. 만옥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답답함을 이고 사는 이장의 딸이자 FTM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재연(성재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직접 이장 선거에 출마한다.
영화는 이 묵직한 현실들을 능청스러운 연기와 해학적인 연출로 풀어낸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법한 장면들이 어느새 웃음을 유발하고, 웃다 보면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만옥은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후배들과도 화해하고, 세대를 넘어 연대가 만들어진다. 배우 양말복은 첫 등장부터 극을 단박에 장악하고, 만옥을 둘러싼 배우들의 앙상블도 맛깔난다. 이유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이 영화는 웃기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이장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만옥의 길은 순탄치 않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눈길을 주기는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며 하루아침에 그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인과 친구들은 널 환영하지 않는 이 마을에 왜 계속 있으려 하냐며 계속 만옥을 걱정하기만 한다. 정말로 이반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만옥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옥은 그런 제 사람들에게 걱정이 아닌 응원을 해달라고 말했다. 나 진짜 잘하고 싶다고.
어쩌면 처음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차마 하지 못했던 응어리진 그 말이 만옥과 영화의 전환점이 된다. 계속 꽉 막혀 있던 만옥의 벽도, 그런 만옥을 계속 걱정하며 하나의 모습만 바라보던 만옥의 사람들의 벽도 모두 허물어지고 연대와 지지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장만옥은 정말로 시골 마을 이반리의 이장이 될 수 있을까? 혐오가 만연한 지금 21세기에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온 성소수자 중년 여성 원톱 영화라는 점에서 <이반리 장만옥>은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디지기 전에 하고싶은 일 다해보자"는 장만옥의 말처럼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마음껏 펼치길 바라게 된다.
-관객리뷰단 서수민
<이반리 장만옥>
혐오, 그 위에 피어오르는 웃음과 연대
보통의 퀴어 영화라고 하면 청춘과 여름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젊은 청춘 시기에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지켜나가는 성 가치관과 사랑, 그리고 필수적으로 붙어오는 아픔. 어쩌면 공식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퀴어 영화들이 이 소재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반리 장만옥>은 다르다. 한국의 중년 여성 장만옥(양말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이미 세간의 불편한 시선들을 이겨내며 살아왔고, 그쪽으로는 이골이 난 단단하고 약간의 꼰대미를 겸비한 이 주인공은 고통 대신 유머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오랜 기간 성소수자들의 갈 곳이 되어줬던 장만옥과 그의 가게 '레인보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젊은 세대들이 향유하기엔 올드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20년 동안 돈 안 돼도 너희를 위해서 한 거라며 통탄해도 후배들의 눈에 만옥은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꼰대 선배일 뿐이다. 비건은 먹을 걸 가리는 적응 안 되는 유행, 지금 그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늘 해온 음식만을 대접하며 생색내는 옛날 사람.
차별과 편견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사람이라 해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차별에 맞서며 단단해진 심지가 때로는 유연함을 잃은 완고함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아이러니가 만옥이라는 인물을 훨씬 입체적으로 만든다. 동시에 그것이 이 영화가 한국 퀴어들의 서사를 마냥 합일시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의견이 맞지 않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돌아온 고향 이반리는 예나 지금이나 정상성에 대한 집착과 소수자에 대한 배타심으로 꽉 막혀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머리가 짧은 여자아이에겐 아들인 줄 알았다, 왜 머슴아처럼 하고 다니냐며 겉모습에 왈가왈부한다. 장만옥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것도 그의 성적취향을 병이라고 터부시하는 시선 때문이었다.
심지어 현 이장인 전 남편 철주(박완규)는 허례허식에 집착하며 마을 사람들의 복지에는 관심 없고 돈 되는 일, 자신의 명예에 이로운 일만 찾는다. 어르신들 안부 잘 챙기고 마을에 관심을 가져달라 말해도 저는 마을 이장이지 심부름꾼이 아니라며 발전기금부터 내라고 아우성치기 일쑤다. 결국 정말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 홀로 쓸쓸히 죽어가던 이웃 순이씨를 반찬을 주러 들른 만옥이 살려내자, 소수의 마을 사람들은 만옥에게 이장 출마를 권한다. 만옥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답답함을 이고 사는 이장의 딸이자 FTM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재연(성재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직접 이장 선거에 출마한다.
영화는 이 묵직한 현실들을 능청스러운 연기와 해학적인 연출로 풀어낸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법한 장면들이 어느새 웃음을 유발하고, 웃다 보면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만옥은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후배들과도 화해하고, 세대를 넘어 연대가 만들어진다. 배우 양말복은 첫 등장부터 극을 단박에 장악하고, 만옥을 둘러싼 배우들의 앙상블도 맛깔난다. 이유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이 영화는 웃기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이장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만옥의 길은 순탄치 않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눈길을 주기는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며 하루아침에 그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인과 친구들은 널 환영하지 않는 이 마을에 왜 계속 있으려 하냐며 계속 만옥을 걱정하기만 한다. 정말로 이반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만옥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옥은 그런 제 사람들에게 걱정이 아닌 응원을 해달라고 말했다. 나 진짜 잘하고 싶다고.
어쩌면 처음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차마 하지 못했던 응어리진 그 말이 만옥과 영화의 전환점이 된다. 계속 꽉 막혀 있던 만옥의 벽도, 그런 만옥을 계속 걱정하며 하나의 모습만 바라보던 만옥의 사람들의 벽도 모두 허물어지고 연대와 지지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장만옥은 정말로 시골 마을 이반리의 이장이 될 수 있을까? 혐오가 만연한 지금 21세기에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온 성소수자 중년 여성 원톱 영화라는 점에서 <이반리 장만옥>은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디지기 전에 하고싶은 일 다해보자"는 장만옥의 말처럼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마음껏 펼치길 바라게 된다.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