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비발디와 나> / 그들이 마주하고자 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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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와 나>

그들이 마주하고자 한 봄


<비발디와 나>의 원제는 <PRIMAVERA>, 이탈리아어로 '봄'을 뜻하는 단어다. 꽃은 해사한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추운 겨울에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땅 밑에서 웅크려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그제야 세상을 물들이는 것이다. 주인공 체칠리아(테클라 인솔리아)가 바로 영화에서 겨울이 끝나길 기다리는 꽃이다. 그의 바이올린 재능은 비발디(미셸 리온디노)도 인정한 천재적인 재능이지만, 그의 신분이, 환경이 체칠리아란 꽃이 만개하지 못하도록 내내 막는다.

 

실제 비발디가 오랜 기간 기거했던 18세기 피에타 고아원은 여타 고아원들과 좀 다르다. 이곳의 여자아이들은 모두 바이올린을 비롯해 성악 등 성가대 공연을 위한 단원으로 길러진다. 주일마다 성당을 들르는 귀족들을 감복시키는 연주를 해야만 하고, 돈을 위해 다른 고아원의 공연에 비해 밀리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다 늙은 귀족의 눈에 들면 결혼을 빙자한 매매혼으로 팔려 가 평생 그의 아내로 살아야 하는, 아주 단조롭고도 답답한 굴레를 영원히 돌아야 하는 것이다.

 

아기 때 맡겨져 어머니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체칠리아는 영화 중간중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분노, 좌절과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란 희망, 그리고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란 다짐까지 남몰래 쓰는 편지에는 그의 온갖 감정이 다 들어있다. 그만큼 어머니와 보호자에 대한 열망과 버려진 것에 대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체칠리아가 피에타 고아원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바이올린이다. 비록 연습과 공연 때만 잠깐, 허가 하에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지만 그걸 켤 때 가장 행복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체칠리아는 영화 내내 자유와 욕망을 숨김없이 갈망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극 초반에 새끼 고양이들을 부원장에게 들켜 그들이 버려지는 걸 지켜봐야만 했고, 그렇게 좋아하던 바이올린 연주도 곧 전쟁이 끝나 돌아올 그의 예비 남편, 즉 귀족 장교가 돌아오면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지루한 그의 아내로 여생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그가 바이올린에 대해 재능이 있고, 사랑을 보여도 이 겨울은 체칠리아에게 조금의 온기도 나눠주지 않는다.

 

이때 비발디가 피에타 고아원의 새로운 악단 담당으로 들어오는데, 체칠리아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비발디가 혹여나 저를 돕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나 똑같이 평민 출신에 천식으로 몸도 약한 비발디는 체칠리아를 안타깝게 여길 뿐, 체칠리아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주진 않는다. 체칠리아의 겨울을 끝내줄 이는 비발디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대목이었다.

 

비발디의 사계 3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의 메인은 비발디가 아니다. 그의 천재성과 비범함을 보여주는 대목은 있지만 이야기의 가장 핵심은 '봄'에 있다. 천재적이지만 신분의 한계에 갇혀 겨울을 사는 비발디가 어떻게 봄을 느끼고 사계를 작곡하기 시작했는가.

 

영화의 말미에서 체칠리아는 으스러진 손을 안고 고아원을 도망친다. 바이올린을 위해 순결을 버린 선택이 자신의 결혼을 파투 낸 체칠리아에게 복수하기 위해 귀족 장교가 손을 으스러뜨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유디트의 복수> 무대에도 서지 못하고, 모든 희망을 잃은 체칠리아는 비발디와 친구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아예 겨울 밖을 떠나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공연을 마친 비발디는 자신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던 체칠리아가 사라진 걸 보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기쁨도, 허탈함도 아닌 무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우레같은 환호와 박수를 받으면서도 좀처럼 웃음을 짓지 않는다. 체칠리아의 선택과 자신의 모습에서 그는 어떤 '봄'을 느꼈는지, 그의 마음을 연기하는 배우의 내공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겨울을 떠난 체칠리아에게 어떤 봄이 기다리고 있을까. 순결도, 재능 있는 손도, 돈도 없는 어린 여자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체칠리아의 표정은 마냥 어둡지 않다. 결혼해서 떠나간 친구의 남은 물길엔 그의 축복을 바라는 친구들의 편지가 흘렀지만, 체칠리아의 물길엔 고아의 증표가 흘러 버려진다. 그의 인생을 개척할 자유를 비로소 얻은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울려 퍼진다. 꽃의 개화를 응원하듯 우렁차고 희망적인 멜로디가 크레딧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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