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구 디 오리지널>
사랑의 다면성
1987년의 <연지구>가 2026년 다시 돌아왔다. <연지구>는 1934년을 살던 기생 여화(매염방)와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장국영)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1987년에 나타난 여화의 영혼을 돕는 원영정(민자량)과 아초(주보의) 커플의 이야기까지 한 영화에 두 시대를 공존시켜 흥미로움을 자아낸 관금붕 감독의 히트작이다. 홍콩 영화 전성시대의 한가운데에 섰던 영화가 지금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영화는 여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진진방을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신분의 고하를 넘지 못하고 함께 죽음을 택할 정도로 사랑에 목을 매는, 전형적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저승에서 50년을 기다려도 진진방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귀신의 몸으로 연인을 찾기 위해 이승으로 올라온 때가 바로 1987년이다. 여기서 여화에 대한 시선이 둘로 나뉠 것이다. 사랑에 목숨을 바친 가여운 사람, 혹은 미련한 사람으로. 하지만 이야기는 여화를 그런 평면적인 캐릭터로 소모하지 않는다.
여화가 살았던 1937년의 홍콩은 신분제가 분명했고, 그만큼 사람들의 자유가 제한되는 곳이었다. 16살부터 기생 일을 해야 했던 여화는 의홍루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안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고, 또 그게 당연했다. 귀를 만지는 값과 허벅지를 만지는 값이 다르고, 의홍루를 찾는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그의 업이자 삶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화는 자신을 사랑한다며 속삭이는 진진방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에도 거리끼지 않는 주체적인 모습도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여화의 인생 반경은 턱없이 좁았고, 운명의 남자라고 생각한 진진방에게 한번 빠져든 이상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맹목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런 여화가 사랑한 진진방은 어떠한가. 당시 홍콩의 부유한 약재상 집의 열두 번째 도련님으로 태어난 그는 앞선 형들이 모두 죽는 불상사로 집안을 이어야 하는 철없는 막내에 불과했다. 의홍루에서 노래를 부르던 여화에게 첫눈에 반해 몇백 달러나 하는 침대를 떡하니 선물하지 않나, 하루가 멀다하고 그에게 찾아가 사랑을 속삭이며 여화를 잔뜩 흔든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을 거스를 용기는 없어 정략혼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화에게 늘 너만 생각할 거란 감언이설이나 늘어놓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도련님'이기도 하다. 입은 여화를 향한 사랑을 읊지만, 진진방은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다.
여화는 원영정과 아초의 도움으로 3811, 진진방이 잠들기 전 여화가 자신들의 자살하는 날짜와 시간을 숫자로 만들어 기억하라고 신신당부했던 숫자를 홍콩 전역의 신문에 광고로 싣고 그의 행방을 계속 좇는다.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여화를 그 오랜 시간 혼자 내버려둘 이가 아니라고 믿었던 진진방이었기에 혼란스러웠던 관객들 역시 여화 일행의 여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진진방은 혼자 '구차하게' 살아남았고, 여화의 죽음 이후로 기녀 제가 폐지되었으며 그 후 남자는 그토록 원했던 가극의 단역을 전전하며 못난 꼴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청산유수 마냥 사랑을 쏟아내던 잘생긴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이젠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며 처지를 비관하는 노인만이 존재한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복합적인 만큼 그걸 접하는 사람들마다의 소감도 다르고, 느끼는 바도 다르다. 사랑만큼 매력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연지구>는 사랑을 가장 깊고도 무겁게 다루면서도 끝까지 이야기의 몰입감을 유지하는 힘이 대단하다. 사랑은 겉으로는 찬란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은 더럽고 형편없을 수도 있고,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 모습 이면에 오히려 신뢰와 애정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무슨 사랑을 해야 하는가. <연지구>는 사랑을 미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때 진실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사랑의 다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질문할 뿐이다. 40여 년 전 영화임에도 <연지구>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연지구 디 오리지널>
사랑의 다면성
1987년의 <연지구>가 2026년 다시 돌아왔다. <연지구>는 1934년을 살던 기생 여화(매염방)와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장국영)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1987년에 나타난 여화의 영혼을 돕는 원영정(민자량)과 아초(주보의) 커플의 이야기까지 한 영화에 두 시대를 공존시켜 흥미로움을 자아낸 관금붕 감독의 히트작이다. 홍콩 영화 전성시대의 한가운데에 섰던 영화가 지금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영화는 여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진진방을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신분의 고하를 넘지 못하고 함께 죽음을 택할 정도로 사랑에 목을 매는, 전형적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저승에서 50년을 기다려도 진진방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귀신의 몸으로 연인을 찾기 위해 이승으로 올라온 때가 바로 1987년이다. 여기서 여화에 대한 시선이 둘로 나뉠 것이다. 사랑에 목숨을 바친 가여운 사람, 혹은 미련한 사람으로. 하지만 이야기는 여화를 그런 평면적인 캐릭터로 소모하지 않는다.
여화가 살았던 1937년의 홍콩은 신분제가 분명했고, 그만큼 사람들의 자유가 제한되는 곳이었다. 16살부터 기생 일을 해야 했던 여화는 의홍루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안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고, 또 그게 당연했다. 귀를 만지는 값과 허벅지를 만지는 값이 다르고, 의홍루를 찾는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그의 업이자 삶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화는 자신을 사랑한다며 속삭이는 진진방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에도 거리끼지 않는 주체적인 모습도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여화의 인생 반경은 턱없이 좁았고, 운명의 남자라고 생각한 진진방에게 한번 빠져든 이상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맹목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런 여화가 사랑한 진진방은 어떠한가. 당시 홍콩의 부유한 약재상 집의 열두 번째 도련님으로 태어난 그는 앞선 형들이 모두 죽는 불상사로 집안을 이어야 하는 철없는 막내에 불과했다. 의홍루에서 노래를 부르던 여화에게 첫눈에 반해 몇백 달러나 하는 침대를 떡하니 선물하지 않나, 하루가 멀다하고 그에게 찾아가 사랑을 속삭이며 여화를 잔뜩 흔든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을 거스를 용기는 없어 정략혼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화에게 늘 너만 생각할 거란 감언이설이나 늘어놓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도련님'이기도 하다. 입은 여화를 향한 사랑을 읊지만, 진진방은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다.
여화는 원영정과 아초의 도움으로 3811, 진진방이 잠들기 전 여화가 자신들의 자살하는 날짜와 시간을 숫자로 만들어 기억하라고 신신당부했던 숫자를 홍콩 전역의 신문에 광고로 싣고 그의 행방을 계속 좇는다.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여화를 그 오랜 시간 혼자 내버려둘 이가 아니라고 믿었던 진진방이었기에 혼란스러웠던 관객들 역시 여화 일행의 여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진진방은 혼자 '구차하게' 살아남았고, 여화의 죽음 이후로 기녀 제가 폐지되었으며 그 후 남자는 그토록 원했던 가극의 단역을 전전하며 못난 꼴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청산유수 마냥 사랑을 쏟아내던 잘생긴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이젠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며 처지를 비관하는 노인만이 존재한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복합적인 만큼 그걸 접하는 사람들마다의 소감도 다르고, 느끼는 바도 다르다. 사랑만큼 매력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연지구>는 사랑을 가장 깊고도 무겁게 다루면서도 끝까지 이야기의 몰입감을 유지하는 힘이 대단하다. 사랑은 겉으로는 찬란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은 더럽고 형편없을 수도 있고,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 모습 이면에 오히려 신뢰와 애정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무슨 사랑을 해야 하는가. <연지구>는 사랑을 미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때 진실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사랑의 다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질문할 뿐이다. 40여 년 전 영화임에도 <연지구>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