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아르코> / 달콤하고 씁쓸한 모험극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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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달콤하고 씁쓸한 모험극 속에서


그러니까 이건, 소외된 인간의 대범하고도 무모한 고독 탈출기이다. 그저 공룡이 보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 몰래 시간 여행을 감행한 30세기 소년 아르코와 자연재해가 일상을 지배한 세상에서 부모와 떨어져 로봇 유모의 손에 자라는 21세기 소녀 아이리스. 시간을 역행해 아이리스가 사는 시대로 불시착한 아르코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소년 소녀의 모험극은 필자에게 두 사람의 외톨이 극복기로 다가온다. 동시에 그들이 짊어진 고독을 관망하면서 모순적이지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는, 인류가 태동한 이래 지금까지 인간 사회를 지탱해 온 우리들의 정(情)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한 스푼 집어넣고선 약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우정을 이야기하는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웠을 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어린 두 사람에게서 내면의 적막함을 느껴버렸다. 금기를 깨뜨린 소년의 어리석음도, 채워지지 않는 애정에 사무친 소녀의 일탈도 그것이 발현된 시작점에는 외톨이가 된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이 있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줄 알았던 절망의 시간 속에서 나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사건은 그야말로 구원과도 같은 기적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아르코와 아이리스가 관계를 맺는 지상과 상공을 잇는 수직선 위에서 그려낸다. 학교 주변 숲속에서 아이리스가 하늘에서 낙하하는 아르코(이리저리 휘적이는 무지개 광선으로 표현된)를 발견하는 게 이들의 첫 만남이다. 그로부터 아르코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는 가운데 아르코와 아이리스는 무수히도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다. 노력이 무상하게 이들의 시도는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결말로 귀결될 뿐이지만,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아르코와 아이리스는 관계의 범위를 수평적으로 넓혀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의 부재를 열심히 채워주는 로봇 유모 미키의 다정함이 소중해지고, 악당으로 느껴지던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 정장과 특이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요상한 삼인방은 그저 호기심으로 가득한, 또 다른 모험가였다. 이렇게 아르코와 아이리스의 모험은 홀로 남겨진 시간이 당연했던 이들의 일상에 변화를 일으켜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연결한다.


필연인지 우연인지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 사이에는 아르코와 아이리스의 만남을 기폭제 삼아 만들어진 특이점이 존재한다. 미래에서 온 아르코와의 대화를 기반으로 그보다 과거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리스가 어른이 되는 시간 속에서 고안한 새로운 생활 형식(구름 위에 떠 있는 여러 가지가 달린 형태의 주거 공간)이 아르코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혀있다. 그러니까 시간의 흐름을 일방의 직선으로 보지 않는다면, 과거의 사건이 미래에 영향을 주고 동시에 미래의 사건이 과거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사카모토 류지 각본의 영화 <첫 번째 키스>에 나온 표현처럼 시간은 마치 밀푀유와 같아서 현재의 우리가 과거와 미래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가설이 그리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잿빛으로 물든 피로하고 불운한 시대를 버텨내고 있을지라도 나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우리가 세대를 넘어 공간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 속에서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아르코와 아이리스의 흥미진진했던 모험극은 분명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그저 행복하고 즐겁지만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아이리스는 무리한 탈출 계획의 여파로 미키를 잃었고, 아르코는 시간 여행의 여파로 가족들과 함께 보낼 같은 시간 속의 추억을 잃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을 마감한 미키의 심장부만큼, 자신을 찾기 위해 무수한 시간 여행을 감행하여 수많은 시간을 바친 가족들의 세월만큼 아이리스와 아르코는 남은 생애 동안 짊어질 부채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얼마 동안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가혹한 운명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완전하고 무결한 행복으로만 가득 들어차 있지 않더라도, 어쩌면 자신의 섣부른 판단으로 만들어진 슬픔을 기꺼이 감당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오늘을 기꺼이 살아낼 수 있다. 세대를 넘어 공간을 넘어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존재들이 있다는 믿음 속에서 말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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