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햄넷>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예상치 못한 순간 우리를 덮쳐오는데. 아녜스(제시 버클리)와 윌(폴 메스칼) 부부에게도 다르지 않다.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둘이지만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극히 상반된다. 절망과 고통에 휩싸여 꾸려오던 삶이 일그러지는 아녜스와 후회와 허탈감으로 점철된 지금의 슬픔을 글로 풀어내는 윌. 결코 누구 하나가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배우들의 열연과 물 흐르는 연출로 두 인물의 슬픔이 스크린 너머로 쏟아져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녜스와 윌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집요한 노력으로 결실을 보았다. 윌은 아녜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심을 얻었고, 아녜스의 곁을 얻는 데 성공하자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건하게 약혼과 결혼까지 성공한다. 영화 내내 초월적인 이야기들이 종종 흘러나오는데, 그중 첫 번째가 아녜스라는 인물이 가진 신비로운 이미지와 윌이 아녜스에게 들려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 이야기다.
쑥과 질경이 같은 수많은 약초와 허브의 쓰임에 능한 아녜스는 숲에 자주 들락거린다는 이유로 마녀라는 의심과 함께 배척받았다. 윌은 그런 아녜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리스 신화 얘기를 들려주는데, 너무나도 사랑한 아내를 찾기 위해 저승행까지 감행한 오르페우스가 그 사랑으로 인해 결국 금기인 '뒤를 돌아보는 행위'를 지키지 못하고 아내를 잃는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화가 윌과 아녜스 사이에도 적용되기라도 하듯, 결혼식장에서 아녜스의 부름으로 뒤를 돌아본 윌은 머지않아 자신의 꿈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버팀목 삼아 떨어지게 된 둘은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아이들을 키우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수재나와 주디스, 햄넷이라는 세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글을 쓰고 뛰어다닐 수 있을 때쯤 역병이 주디스를 덮친다. 햄넷은 주디스를 크게 걱정하다 밤중에 그의 방을 찾아 사신을 속이겠다며 주디스와 자리를 바꿔 눕는다. 윌이 런던으로 다시 떠나기 전 그에게 당부했던 용감해지라는 말을 끝없이 되뇌면서. 결국 주디스는 목숨을 건졌지만, 햄넷은 대신 열병을 가져가 숨을 거둔다. 아이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아녜스는 자리를 비운 윌을 힐난했고 윌은 그런 자신의 공백에 죄책감을 갖는다. 햄넷의 죽음이 두 사람의 삶과 사랑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죽음'을 다루는 방법과 특유의 신비롭고 묵직한 감성을 시작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은 가히 경탄스럽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의 모습과 아이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지 못한 이의 허망함과 슬픔이란 감정을 납득시키고,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더욱 놀랍다. 그가 담아낸 숲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과, 막힘없이 그리고 거슬리지 않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은 영화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햄넷의 죽음을 두고 멀어진 아녜스와 윌이 다시 만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햄넷의 이름을 쓴 윌의 <햄릿> 연극 무대였다. 햄넷을 꼭 닮은 햄릿 배우는 무대 위에서 칼을 부딪치며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윌은 죽은 햄릿의 아버지 유령으로 등장해 대사로 차마 건네지 못했던 아들을 향한 작별인사를 대신 고한다. 관객들은 극 속에서 맞이하는 햄릿의 죽음에 손을 뻗어 인사와 온기를 건네고,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과거의 햄넷은 아녜스와 눈을 마주치고는 숲의 구멍으로 사라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연출 속에서 아녜스는 비로소 미소를 짓는다. 윌이 써 내려간 <햄릿>의 막과 함께 아녜스의 얼룩진 고통이 내려간 모습이었다. 아녜스와 윌은 비로소 함께, 햄넷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선택한 방식은 달랐지만, 결국 그들이 도달한 곳은 같은 지점이었다. 사랑했던 존재를 잊지 않으면서도 그 부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햄넷의 죽음은 두 사람의 삶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그들을 다시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계속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려는 마음이리라.
- 관객리뷰단 서수민
<햄넷>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예상치 못한 순간 우리를 덮쳐오는데. 아녜스(제시 버클리)와 윌(폴 메스칼) 부부에게도 다르지 않다.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둘이지만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극히 상반된다. 절망과 고통에 휩싸여 꾸려오던 삶이 일그러지는 아녜스와 후회와 허탈감으로 점철된 지금의 슬픔을 글로 풀어내는 윌. 결코 누구 하나가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배우들의 열연과 물 흐르는 연출로 두 인물의 슬픔이 스크린 너머로 쏟아져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녜스와 윌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집요한 노력으로 결실을 보았다. 윌은 아녜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심을 얻었고, 아녜스의 곁을 얻는 데 성공하자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건하게 약혼과 결혼까지 성공한다. 영화 내내 초월적인 이야기들이 종종 흘러나오는데, 그중 첫 번째가 아녜스라는 인물이 가진 신비로운 이미지와 윌이 아녜스에게 들려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 이야기다.
쑥과 질경이 같은 수많은 약초와 허브의 쓰임에 능한 아녜스는 숲에 자주 들락거린다는 이유로 마녀라는 의심과 함께 배척받았다. 윌은 그런 아녜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리스 신화 얘기를 들려주는데, 너무나도 사랑한 아내를 찾기 위해 저승행까지 감행한 오르페우스가 그 사랑으로 인해 결국 금기인 '뒤를 돌아보는 행위'를 지키지 못하고 아내를 잃는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화가 윌과 아녜스 사이에도 적용되기라도 하듯, 결혼식장에서 아녜스의 부름으로 뒤를 돌아본 윌은 머지않아 자신의 꿈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버팀목 삼아 떨어지게 된 둘은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아이들을 키우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수재나와 주디스, 햄넷이라는 세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글을 쓰고 뛰어다닐 수 있을 때쯤 역병이 주디스를 덮친다. 햄넷은 주디스를 크게 걱정하다 밤중에 그의 방을 찾아 사신을 속이겠다며 주디스와 자리를 바꿔 눕는다. 윌이 런던으로 다시 떠나기 전 그에게 당부했던 용감해지라는 말을 끝없이 되뇌면서. 결국 주디스는 목숨을 건졌지만, 햄넷은 대신 열병을 가져가 숨을 거둔다. 아이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아녜스는 자리를 비운 윌을 힐난했고 윌은 그런 자신의 공백에 죄책감을 갖는다. 햄넷의 죽음이 두 사람의 삶과 사랑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죽음'을 다루는 방법과 특유의 신비롭고 묵직한 감성을 시작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은 가히 경탄스럽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의 모습과 아이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지 못한 이의 허망함과 슬픔이란 감정을 납득시키고,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더욱 놀랍다. 그가 담아낸 숲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과, 막힘없이 그리고 거슬리지 않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은 영화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햄넷의 죽음을 두고 멀어진 아녜스와 윌이 다시 만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햄넷의 이름을 쓴 윌의 <햄릿> 연극 무대였다. 햄넷을 꼭 닮은 햄릿 배우는 무대 위에서 칼을 부딪치며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윌은 죽은 햄릿의 아버지 유령으로 등장해 대사로 차마 건네지 못했던 아들을 향한 작별인사를 대신 고한다. 관객들은 극 속에서 맞이하는 햄릿의 죽음에 손을 뻗어 인사와 온기를 건네고,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과거의 햄넷은 아녜스와 눈을 마주치고는 숲의 구멍으로 사라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연출 속에서 아녜스는 비로소 미소를 짓는다. 윌이 써 내려간 <햄릿>의 막과 함께 아녜스의 얼룩진 고통이 내려간 모습이었다. 아녜스와 윌은 비로소 함께, 햄넷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선택한 방식은 달랐지만, 결국 그들이 도달한 곳은 같은 지점이었다. 사랑했던 존재를 잊지 않으면서도 그 부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햄넷의 죽음은 두 사람의 삶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그들을 다시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계속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려는 마음이리라.
-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