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파리, 밤의 여행자들> 리뷰 : 지나간 상실의 시대, 그 다음 여행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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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밤의 여행자들> 

지나간 상실의 시대, 그 다음 여행자들에게


 1981년 5월 10일. 이 날짜는 그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무심한 표정으로 커다란 배낭을 둘러메고 화면에 얼굴을 비추는 이는 18살 소녀 탈룰라(노에이 아비타). 그녀는 노숙자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비추던 앵글은 다음 샷으로 지하철 노선이 표시된 파리의 지도를 더듬는 그녀의 손을 보여준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 그녀는 영화 <Closer> 속의 Stranger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태엽 감는 새, 영화 <아비정전>의 발 없는 새이다. 아직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탈룰라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향할지, 자신도 모른다. 새벽 4시까지 진행되는 심야 라디오 방송에 일일 게스트로 나오게 된 탈룰라는 이혼 후 생계를 걱정하며 또 다른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엘리자베트(샤를로트 갱스부르)를 만나게 된다. 오늘도 머물 곳 없이 카페가 영업을 시작하길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는 탈룰라에게 엘리자베트는 자신의 집으로 함께 갈 것을 제안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탈룰라와 엘리자베트. 그리고 그녀의 아들과 딸인 마티아스와 주디트. 네 사람은 각자의 시간을 살지만 어딘가에서 조금씩 무언가를 '잃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영화 속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상실의 시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1980년대 파리, 그 '지나간 시대'를 불러와서 그 시대에 우리가 남기고 간 감각이 무엇인지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정 사건으로 시작하여 마무리되는 일반적인 서사가 아니라, 단순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 속에 오래 묻어나는 관계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계속되는 탈룰라의 방황, 마티아스의 어설픈 사랑과 자아 찾기, 주디트의 흔들리는 성장 역시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캐릭터들의 삶을 지켜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삶이란 꼭 어떠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매일을 살아나가면서 떠남과 머묾을 반복하고 ’상실‘이라는 세계의 질서와 함께 산다는 걸 배우는 것이 아닐까? 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잃어버리고 흘러가는 시간과 삶에 대해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질까? 그 이유는 엘리자베트의 '태도' 때문이다. 자기 삶에서 무언가를 상실해 가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엘리자베트는 탈룰라를 보듬는다. 1980년대 파리의 밤도 누군가의 다정한 수용으로 인해 버텨진다. 지금의 우리가 1980년대의 파리의 풍경 속 엘리자베트를 보며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잃어버린 우리 내면의 타인에 대한 관심과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며 사라져가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그 당시 환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캐릭터들을 보며 환기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사실 잃어버린 풍경이 아니라 잃어버린 태도에 대한 그리움일지 모른다. 버티고 이겨야 하는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아직도 타인의 아픔을 잠시라도 받아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한 날, 그 한 밤의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다음 날을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는가.


 극은 후반으로 흘러가면서 그 당시 파리의 정서, 밤과 고독, 스쳐 가는 관계와 지속되는 관계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시간에 대해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8mm 필름(슈퍼 에이트)으로 기록되는 주디트와 엘리자베트의 추억이다. 8mm 필름은 영화 속에서 1980년대 파리의 감성을 담는 매개체이자 '엘리자베트'의 과거 추억과 주디트와의 깊은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다. 사이사이에 삽입된 8mm 필름 영상이 스크린에 가끔 보일 때, 관객들은 아련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고 앞서 말한 노스탤지어를 상상하며 웃음 짓게 된다.

 

 탈룰라는 이제 방황을 끝내고 자기 자신을 찾았을까? 사랑과 자기 확신 사이에서 매번 무너지던 마티아스는 이제 강해졌을까? 다시 사랑을 찾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엘리자베트는 이제 행복해졌을까?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나며 잃어버리고 있었던 80년대 노스탤지어를 추억하면서, 동시에 버티고 이겨야 한다는 문장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영화는 묻는다. 그 감성을 혹시 아직 그리워하느냐고. 여전히 기억하느냐고.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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