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타나의 꿈>
수평선 너머로
이사벨 에르게라 감독의 <술타나의 꿈>은 스페인 여성 ‘이네스(미렌 아리에타)’의 인도 여행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이네스는 여행 중 우연히 방문한 도서관에서 100년 전 인도의 여성 작가 베검 로케야(Rokeya Sakhawat Hossain)가 쓴 페미니즘 SF소설 『술타나의 꿈』을 만나고,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로케야의 자취를 따라간다.
먼저 이네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화는 그녀의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지만, 그녀가 애니메이터로 일하며 독특한 시각을 지닌 남자친구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녀의 부모는 각자의 자리에서 존경받는 화이트칼라이며, 정열과 자유의 나라 스페인은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또한 말수가 적고 사색적이지만, 동시에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정체불명의 엽서 한 장에 이끌려 다음 행선지를 정할 정도로 추진력이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네스는 ‘스페인 출신 애니메이터’ 감독의 모습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어디서든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젊은 여성을, 즉 우리 자신의 상(像)을 닮았다.
그렇다면 숱한 차별을 견디며 인도에서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을 쓴 100년 전의 여성 작가는 어떠할까? 또 이 영화를 제작한 여성 감독 개인은 어떠할까? 로케야의 삶을 기리는 노래가 흐르는 장면에서, 가수는 그녀가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여성의 교육은 남성을 위협한다’는 인식에서 인도 여성들을 구해낸 업적을 찬미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이네스에게 돌아가 보자. 영화에서 이네스의 어머니는 인도 출신의 해양 전문 학자로 그려진다. 로케야와 이네스의 어머니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분명히 연결고리를 갖고 있으며, 이네스와 로케야, 감독과 로케야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영화 속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처럼 분절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그 자체로 시대와 매체를 뛰어넘어 여성과 여성이 서로 만나고 응답하는 하나의 장(field)을 펼쳐내고 있다.
이로써 이 영화가 우리에게 행하는 것은 보다 명확해진다. 오래된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엽서 한 장이 100년 전의 여성과 현대의 여성을 만나게 한 것처럼, 우리 관객은 이네스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베검 로케야와 조우한다. 그렇게 로케야-감독-이네스-관객으로 형성된 비가시적 연결고리는 상영관을 일시적 ‘레이디랜드’로 변모시킨다. (남성 관객이라면 유감이다. 로케야의 ‘레이디랜드’에서 남성 관객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듯하니 말이다.) 영화가 보여주듯, 100년 전 베검 로케야는 남성들이 집안에 갇혀 오직 여성들만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세계를 상상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것이 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로케야가 꿈꾼 사회에 잠시 속할 기회를 얻지만, 영화가 언젠가 끝이 나듯 체류 역시 영원하지 않다. 에르게라 감독은 화려한 기법과 몽환적인 장치로 계속해서 관객에게 로케야의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잔인할 만큼 친절한 방식으로 환상과 ‘현실’을 대비시킨다.
영화 초반 이네스는 남자친구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귀여운 일러스트 속 코끼리인지 묻는다. 그러나 후반에서 감독은 관객에게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에 대해 알려 준다. 또한 여행 중 이네스와 만난 또 다른 인도 여성 수단야(아루니마 바타차리야)는 이네스에게 여성의 처지를 묻고, ‘유럽은 인도보다 여성 인권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단야의 희망어린 질문에 대한 이네스의 대답은 단순하다. “아니요. 여자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로케야의 페미니즘 소설은 SF 소설이다. 영화 속 노파가 말했듯 “수평선은 멀리서 보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로케야의 소설은 ‘SF(공상과학소설)’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비록 로케야의 유토피아, 그리고 수단야가 희망한 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여성들의 꿈은 이어지고 있으니까. 이네스가 로케야의 길을 따라 나섬으로써 그들의 꿈을 이어받은 것처럼 말이다. 에르게라 감독이 <술타나의 꿈>을 보여주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부 함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글을 씀으로써, 다시 말해 이 글을 읽을 또 다른 여성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로케야와 감독이 펼쳐낸 레이디랜드의 장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수평선 너머로”라고 하겠다.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나, 그것이 우리에게 ‘레이디랜드’의 환상을 ‘보여준’ 100년 전의 여성 베검 로케야와 이 영화를 완성한 많은 여성에게 존경을 표하는 가장 분명한 방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도 같은 존경을 전하고 싶다. 여성들이여, 코끼리 아닌 공기가 되어라. 우리의 연대가 100년의 시간을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품으면서.
- 관객리뷰단 조수빈
<술타나의 꿈>
수평선 너머로
이사벨 에르게라 감독의 <술타나의 꿈>은 스페인 여성 ‘이네스(미렌 아리에타)’의 인도 여행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이네스는 여행 중 우연히 방문한 도서관에서 100년 전 인도의 여성 작가 베검 로케야(Rokeya Sakhawat Hossain)가 쓴 페미니즘 SF소설 『술타나의 꿈』을 만나고,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로케야의 자취를 따라간다.
먼저 이네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화는 그녀의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지만, 그녀가 애니메이터로 일하며 독특한 시각을 지닌 남자친구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녀의 부모는 각자의 자리에서 존경받는 화이트칼라이며, 정열과 자유의 나라 스페인은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또한 말수가 적고 사색적이지만, 동시에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정체불명의 엽서 한 장에 이끌려 다음 행선지를 정할 정도로 추진력이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네스는 ‘스페인 출신 애니메이터’ 감독의 모습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어디서든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젊은 여성을, 즉 우리 자신의 상(像)을 닮았다.
그렇다면 숱한 차별을 견디며 인도에서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을 쓴 100년 전의 여성 작가는 어떠할까? 또 이 영화를 제작한 여성 감독 개인은 어떠할까? 로케야의 삶을 기리는 노래가 흐르는 장면에서, 가수는 그녀가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여성의 교육은 남성을 위협한다’는 인식에서 인도 여성들을 구해낸 업적을 찬미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이네스에게 돌아가 보자. 영화에서 이네스의 어머니는 인도 출신의 해양 전문 학자로 그려진다. 로케야와 이네스의 어머니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분명히 연결고리를 갖고 있으며, 이네스와 로케야, 감독과 로케야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영화 속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처럼 분절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그 자체로 시대와 매체를 뛰어넘어 여성과 여성이 서로 만나고 응답하는 하나의 장(field)을 펼쳐내고 있다.
이로써 이 영화가 우리에게 행하는 것은 보다 명확해진다. 오래된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엽서 한 장이 100년 전의 여성과 현대의 여성을 만나게 한 것처럼, 우리 관객은 이네스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베검 로케야와 조우한다. 그렇게 로케야-감독-이네스-관객으로 형성된 비가시적 연결고리는 상영관을 일시적 ‘레이디랜드’로 변모시킨다. (남성 관객이라면 유감이다. 로케야의 ‘레이디랜드’에서 남성 관객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듯하니 말이다.) 영화가 보여주듯, 100년 전 베검 로케야는 남성들이 집안에 갇혀 오직 여성들만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세계를 상상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것이 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로케야가 꿈꾼 사회에 잠시 속할 기회를 얻지만, 영화가 언젠가 끝이 나듯 체류 역시 영원하지 않다. 에르게라 감독은 화려한 기법과 몽환적인 장치로 계속해서 관객에게 로케야의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잔인할 만큼 친절한 방식으로 환상과 ‘현실’을 대비시킨다.
영화 초반 이네스는 남자친구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귀여운 일러스트 속 코끼리인지 묻는다. 그러나 후반에서 감독은 관객에게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에 대해 알려 준다. 또한 여행 중 이네스와 만난 또 다른 인도 여성 수단야(아루니마 바타차리야)는 이네스에게 여성의 처지를 묻고, ‘유럽은 인도보다 여성 인권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단야의 희망어린 질문에 대한 이네스의 대답은 단순하다. “아니요. 여자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로케야의 페미니즘 소설은 SF 소설이다. 영화 속 노파가 말했듯 “수평선은 멀리서 보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로케야의 소설은 ‘SF(공상과학소설)’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비록 로케야의 유토피아, 그리고 수단야가 희망한 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여성들의 꿈은 이어지고 있으니까. 이네스가 로케야의 길을 따라 나섬으로써 그들의 꿈을 이어받은 것처럼 말이다. 에르게라 감독이 <술타나의 꿈>을 보여주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부 함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글을 씀으로써, 다시 말해 이 글을 읽을 또 다른 여성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로케야와 감독이 펼쳐낸 레이디랜드의 장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수평선 너머로”라고 하겠다.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나, 그것이 우리에게 ‘레이디랜드’의 환상을 ‘보여준’ 100년 전의 여성 베검 로케야와 이 영화를 완성한 많은 여성에게 존경을 표하는 가장 분명한 방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도 같은 존경을 전하고 싶다. 여성들이여, 코끼리 아닌 공기가 되어라. 우리의 연대가 100년의 시간을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품으면서.
- 관객리뷰단 조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