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우린 앞으로 몇 번의...
그러고 보면 세상이란 참으로 지독하게 아름답다. 치사하고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것들로 넘쳐나는 징글징글한 이 행성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버거운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에 누릴 수 있는 생의 기쁨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자 한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새삼스레 인지하는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시기라면 봄이 태동하는 기운을 느낄 때가 그러하다. 바람이 한결 따스해지고 길가에 아름드리 피어난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릴 때. 그럴 때면 필자는 때때로 ‘산다’라고 불리는 행위에 대해 의문이 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의 삶이란 죽음으로 끝나버리지 않는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 무수한 예술과 과학 기술이 영생에 가닿기 위해 상상의 상상을 거듭하고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유한한 생의 존재는 필멸의 운명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비약이 과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 왜 그리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서글픈 허무함이 밀려오려 한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가 담아낸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은 침잠하는 필자의 마음에 파문을 새긴다. 수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가 잔상을 퍼뜨리듯 삶의 끝자락에서 그가 남긴 메시지는 필자가 살아가는 지금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영화의 시작, 카메라는 2019년 4월경 사카모토 류이치의 뉴욕 자택을 비추고 있다. 사카모토는 자택 뒷마당에 피아노를 설치한다. 피아노가 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연과 동화되는 과정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시간의 실험체’라고도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재해의 여파로 바닷물에 잠겼던 피아노를 사카모토는 그 상태 그대로 둔 채 목재가 뒤틀리고 소리가 변해가는 과정을 조명하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창조물은 자연에 의해 사라진다는 그의 깨달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을 텐데. 그런 사카모토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록하는 시기가 자신의 병을 알기 불과 몇 달 전이라는 게 정말이지 공교로울 따름이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정원 위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에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결연한 각오를 느낀 순간을 한낱 기분 탓으로 두고 싶지는 않다. 이어지는 장면 곳곳에서 등장하는 서서히 닳고 부스러지는 정원의 피아노는 왜 그렇게도 투병하는 사카모토와 닮아가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절로 가슴이 메어온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삶은 온통 음악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을 탐미한다. 영화 곳곳에 수록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그의 마지막 생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감상의 진폭을 넓혀준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카모토가 절망과 당혹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동안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흘러나온다. ‘내 인생이 끝났다.’라는 내레이션 뒤로 곧장 이어진 그의 연주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슬프게 다가온다. 흑백으로 처리된 장면 위로 <The Sheltering Sky>를 선율에 몸을 맡긴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카모토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외에도 <Aqua>와 미완으로 남겨진 교향곡 <Untitled/ Unfinished>의 몇몇 대목이 흘러나올 때면 사카모토를 추모하는 마음이 배가되는 경험하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Happy End>를 들으며 동시에 사카모토가 생전 남긴 사진(보름달, 구름 등)을 감상하는 시간도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메모 중에서 사생관(死生觀)이라는 표현이 필자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다. 살고 죽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지만, 살고 죽는 것만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모순 덕분에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사카모토는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해진 모습이다. 수척해진 그의 얼굴과 야윈 그의 몸을 보며 점차 사그라드는 생명의 빛을 느끼고야 만다. 끝을 향해 나아가는 사카모토의 삶은 여전히 생에 대한 의지가 굳건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사카모토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사랑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불타고 있다. 항암 치료의 여파로 통증과 저림에 시달리는 손가락으로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비와 구름이 자아내는 소리를 음미하며, 어느새 창작의 시간에 파고드는 사카모토는 여전히 지독하리만큼 아름답게 살아내고 있다. 삶은 영원하다는 착각에 쉽사리 빠지는 우매한 인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아마도 내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시작된)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마다의 생애 속에서 기어코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우린 앞으로 몇 번의...
그러고 보면 세상이란 참으로 지독하게 아름답다. 치사하고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것들로 넘쳐나는 징글징글한 이 행성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버거운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에 누릴 수 있는 생의 기쁨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자 한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새삼스레 인지하는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시기라면 봄이 태동하는 기운을 느낄 때가 그러하다. 바람이 한결 따스해지고 길가에 아름드리 피어난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릴 때. 그럴 때면 필자는 때때로 ‘산다’라고 불리는 행위에 대해 의문이 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의 삶이란 죽음으로 끝나버리지 않는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 무수한 예술과 과학 기술이 영생에 가닿기 위해 상상의 상상을 거듭하고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유한한 생의 존재는 필멸의 운명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비약이 과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 왜 그리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서글픈 허무함이 밀려오려 한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가 담아낸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은 침잠하는 필자의 마음에 파문을 새긴다. 수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가 잔상을 퍼뜨리듯 삶의 끝자락에서 그가 남긴 메시지는 필자가 살아가는 지금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영화의 시작, 카메라는 2019년 4월경 사카모토 류이치의 뉴욕 자택을 비추고 있다. 사카모토는 자택 뒷마당에 피아노를 설치한다. 피아노가 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연과 동화되는 과정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시간의 실험체’라고도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재해의 여파로 바닷물에 잠겼던 피아노를 사카모토는 그 상태 그대로 둔 채 목재가 뒤틀리고 소리가 변해가는 과정을 조명하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창조물은 자연에 의해 사라진다는 그의 깨달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을 텐데. 그런 사카모토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록하는 시기가 자신의 병을 알기 불과 몇 달 전이라는 게 정말이지 공교로울 따름이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정원 위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에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결연한 각오를 느낀 순간을 한낱 기분 탓으로 두고 싶지는 않다. 이어지는 장면 곳곳에서 등장하는 서서히 닳고 부스러지는 정원의 피아노는 왜 그렇게도 투병하는 사카모토와 닮아가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절로 가슴이 메어온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삶은 온통 음악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을 탐미한다. 영화 곳곳에 수록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그의 마지막 생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감상의 진폭을 넓혀준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카모토가 절망과 당혹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동안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흘러나온다. ‘내 인생이 끝났다.’라는 내레이션 뒤로 곧장 이어진 그의 연주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슬프게 다가온다. 흑백으로 처리된 장면 위로 <The Sheltering Sky>를 선율에 몸을 맡긴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카모토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외에도 <Aqua>와 미완으로 남겨진 교향곡 <Untitled/ Unfinished>의 몇몇 대목이 흘러나올 때면 사카모토를 추모하는 마음이 배가되는 경험하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Happy End>를 들으며 동시에 사카모토가 생전 남긴 사진(보름달, 구름 등)을 감상하는 시간도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메모 중에서 사생관(死生觀)이라는 표현이 필자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다. 살고 죽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지만, 살고 죽는 것만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모순 덕분에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사카모토는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해진 모습이다. 수척해진 그의 얼굴과 야윈 그의 몸을 보며 점차 사그라드는 생명의 빛을 느끼고야 만다. 끝을 향해 나아가는 사카모토의 삶은 여전히 생에 대한 의지가 굳건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사카모토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사랑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불타고 있다. 항암 치료의 여파로 통증과 저림에 시달리는 손가락으로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비와 구름이 자아내는 소리를 음미하며, 어느새 창작의 시간에 파고드는 사카모토는 여전히 지독하리만큼 아름답게 살아내고 있다. 삶은 영원하다는 착각에 쉽사리 빠지는 우매한 인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아마도 내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시작된)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마다의 생애 속에서 기어코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