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럭키 데이 인 파리>
인생이란, 선택이라는 모순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일지도
무던하게 흘러가던 일상에 갑자기 훅! 하고 튀어나오는 예상 범주 밖의 일들 가운데 인생을 뒤흔들만한 사건들이 더러 있다. 그 우연한 계기가 필연으로 이어질 시작점이 되려면 한 사람의 운명을 건 선택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실, 나열된 단어가 거창할 뿐이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과정들이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에 어떤 영화를 볼지, 이번 휴가에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와 같은 고민 속에서 우연히 본 광고, 우연히 듣게 된 타인의 경험담, 우연히 알게 된 장소 등등이 택일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문제는 선택의 결과가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점이다.
출근길 아침,
분주하게 거리를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한 여자를 알아본 한 남자.
찰나의 마주침을 놓치지 않고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영화 <럭키 데이 인 파리>는 파니(루 드 라쥬)와 알랭(닐스 슈네데르)의 낭만적인 재회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뉴욕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이 지나 파리의 한 거리에서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이 우연한 상황을 알랭은 일생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모양이다. 거리에서 나눈 짧은 인사에서 그치지 않고 알랭은 가던 길을 뒤로하고 파니의 근무지까지 함께 걸으며 고등학교 시절 전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첫사랑을 다시 시작하려는 알랭의 간절함이 전해진 걸까. 파니와 알랭의 재회는 공원에서의 점심 식사로 이어지더니 이윽고 알랭의 숙소에서 밀회를 맞이한다. 낙엽이 진 파리의 공원을 거닐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파니와 알랭. 비 내리는 오후 알랭의 숙소 창가에 마주 보고 앉은 파니와 알랭.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서로를 갈망하는 마음이 전달된다. 파니와 알랭의 만남이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이미 결혼한 파니의 상태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파국을 낳을지 불안할 따름이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로 힘들어하던 파니는 새해전야 파티에서 지금의 남편 장(멜빌 푸포)을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하였다.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남편 덕분에 파니는 상류사회의 이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아내를 트로피 취급하며 자기 입맛에 따라 아내를 조종하려 드는 남편 장에게 지쳐가던 파니 앞에 운명처럼 알랭이 나타난다. 무료한 나날에 흐물흐물해진 파니의 감정이 나라와 도시를 넘나들며 작품을 쓰는 자유로운 작가의 영혼에 매료되어 그녀의 가슴속 욕망이 되살아난 순간이다. 그래서일까. 알랭과 사랑을 나눈 이후 파니는 남편 장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해 보인다. 알랭과 보낸 시간들로 인해 남편에게 늘어놓는 변명과 거짓말이 쌓여갈수록 파니의 마음에는 죄책감과 함께 알랭을 향한 열망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파니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선택하기만 하면 그녀를 둘러싼 모든 번뇌는 사라질 테지만, 파니는 쉽사리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파니는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의 열병을 앓으면서도 자신이 영위하는 부유층의 일상을 놓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사교 파티에서의 험담은 불편하기만 하고, 취미에도 없지만 남편 장이 매우 좋아하는 사냥을 위해 주말마다 시골 별장에서 지내는 게 갑갑하지만 견딜만한 모양이다. 말로는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되뇌지만, 끝내 파니의 고백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파니가 알랭과 장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하는 동안 두 남자는 원치 않는 죽음이라는 생의 운명을 맞이한다. 일생일대의 사랑이라는 운명에 인생을 건 알랭은 파니의 남편 장의 모략으로 커다란 짐가방에 실려 대서양 한가운데로 추락한다. 운명 따위에 지고 싶지 않던 장은 알랭을 죽음으로 몬 자신의 계략을 눈치챈 장모를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다 되려 자신이 사냥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두 사람을 사이에 둔 파니의 고뇌가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만약에 파니가 장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파니가 알랭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알랭과 장 모두 파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알랭과 장이 더 나은 삶을 살았으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그건 파니의 일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확률은 40 경분의 1 이래.
태어나 존재하는 게 기적이라고.
그러니 그 기적을 허비하지 마.
40 경분의 1이라는 기적.
감독 우디 앨런이 이토록 허망한 애정극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희박한 확률로 발생한 한 사람이라는 기적 앞에 운명이니, 필연이니 하는 거창한 생의 표현은 실로 무색할 따름이다. 인간의 삶은 매 순간 선택이라는 기로 앞에 서 있다. 우리는 그때마다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그 선택이 불러오는 감히 예상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에 자유롭지 못한 일생, 이 모순을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하나의 궤적이 아닐까 싶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럭키 데이 인 파리>
인생이란, 선택이라는 모순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일지도
무던하게 흘러가던 일상에 갑자기 훅! 하고 튀어나오는 예상 범주 밖의 일들 가운데 인생을 뒤흔들만한 사건들이 더러 있다. 그 우연한 계기가 필연으로 이어질 시작점이 되려면 한 사람의 운명을 건 선택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실, 나열된 단어가 거창할 뿐이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과정들이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에 어떤 영화를 볼지, 이번 휴가에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와 같은 고민 속에서 우연히 본 광고, 우연히 듣게 된 타인의 경험담, 우연히 알게 된 장소 등등이 택일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문제는 선택의 결과가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점이다.
출근길 아침,
분주하게 거리를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한 여자를 알아본 한 남자.
찰나의 마주침을 놓치지 않고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영화 <럭키 데이 인 파리>는 파니(루 드 라쥬)와 알랭(닐스 슈네데르)의 낭만적인 재회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뉴욕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이 지나 파리의 한 거리에서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이 우연한 상황을 알랭은 일생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모양이다. 거리에서 나눈 짧은 인사에서 그치지 않고 알랭은 가던 길을 뒤로하고 파니의 근무지까지 함께 걸으며 고등학교 시절 전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첫사랑을 다시 시작하려는 알랭의 간절함이 전해진 걸까. 파니와 알랭의 재회는 공원에서의 점심 식사로 이어지더니 이윽고 알랭의 숙소에서 밀회를 맞이한다. 낙엽이 진 파리의 공원을 거닐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파니와 알랭. 비 내리는 오후 알랭의 숙소 창가에 마주 보고 앉은 파니와 알랭.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서로를 갈망하는 마음이 전달된다. 파니와 알랭의 만남이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이미 결혼한 파니의 상태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파국을 낳을지 불안할 따름이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로 힘들어하던 파니는 새해전야 파티에서 지금의 남편 장(멜빌 푸포)을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하였다.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남편 덕분에 파니는 상류사회의 이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아내를 트로피 취급하며 자기 입맛에 따라 아내를 조종하려 드는 남편 장에게 지쳐가던 파니 앞에 운명처럼 알랭이 나타난다. 무료한 나날에 흐물흐물해진 파니의 감정이 나라와 도시를 넘나들며 작품을 쓰는 자유로운 작가의 영혼에 매료되어 그녀의 가슴속 욕망이 되살아난 순간이다. 그래서일까. 알랭과 사랑을 나눈 이후 파니는 남편 장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해 보인다. 알랭과 보낸 시간들로 인해 남편에게 늘어놓는 변명과 거짓말이 쌓여갈수록 파니의 마음에는 죄책감과 함께 알랭을 향한 열망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파니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선택하기만 하면 그녀를 둘러싼 모든 번뇌는 사라질 테지만, 파니는 쉽사리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파니는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의 열병을 앓으면서도 자신이 영위하는 부유층의 일상을 놓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사교 파티에서의 험담은 불편하기만 하고, 취미에도 없지만 남편 장이 매우 좋아하는 사냥을 위해 주말마다 시골 별장에서 지내는 게 갑갑하지만 견딜만한 모양이다. 말로는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되뇌지만, 끝내 파니의 고백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파니가 알랭과 장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하는 동안 두 남자는 원치 않는 죽음이라는 생의 운명을 맞이한다. 일생일대의 사랑이라는 운명에 인생을 건 알랭은 파니의 남편 장의 모략으로 커다란 짐가방에 실려 대서양 한가운데로 추락한다. 운명 따위에 지고 싶지 않던 장은 알랭을 죽음으로 몬 자신의 계략을 눈치챈 장모를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다 되려 자신이 사냥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두 사람을 사이에 둔 파니의 고뇌가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만약에 파니가 장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파니가 알랭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알랭과 장 모두 파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알랭과 장이 더 나은 삶을 살았으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그건 파니의 일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확률은 40 경분의 1 이래.
태어나 존재하는 게 기적이라고.
그러니 그 기적을 허비하지 마.
40 경분의 1이라는 기적.
감독 우디 앨런이 이토록 허망한 애정극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희박한 확률로 발생한 한 사람이라는 기적 앞에 운명이니, 필연이니 하는 거창한 생의 표현은 실로 무색할 따름이다. 인간의 삶은 매 순간 선택이라는 기로 앞에 서 있다. 우리는 그때마다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그 선택이 불러오는 감히 예상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에 자유롭지 못한 일생, 이 모순을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하나의 궤적이 아닐까 싶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