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작새> 씨네토크
2024.11.19.
초청 : 변성빈 감독
진행 :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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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 반갑습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진유라고 하고요. 멀리서 와주신 감독님 모시고 씨네토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올해 봤던 영화들 중에 <공작새>가 제일 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과 배우의 합도 좋았던 것 같아요. 작년에 ‘댄스필름댄스’ 기획전에 이어서 신영극장에 두 번째 오셨잖아요. 다시 방문하신 소감과 소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변성빈 : 안녕하세요. <공작새> 연출한 변성빈입니다. 작년에 ‘댄스필름댄스’ 기획전 때 <공작새>랑 그전에 만들었던 <신의 딸은 춤을 춘다>라는 단편 영화를 신영극장에 상영했거든요. 그때 찾아뵙고 인사드렸었는데 또 이렇게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김진유 : 왁킹과 농악의 콜라보라고 할까요? 전혀 다른 요소들이 조화롭게 영화 안에서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성빈 : 방금 전에 말씀드린 <신의 딸은 춤을 춘다>라는 단편 영화에 해준 배우랑 김우겸 배우도 출연했어요. 단편 영화를 같이 만든 배우랑 스태프들이 모여서 장편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부터 장편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그게 21년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진유 : <공작새>가 개봉하기 전까지 62개국의 영화제에서 상영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외국 관객과 한국 관객의 반응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변성빈 : 물론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차이가 좀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2022년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을 때 저는 관객분들이 편안하게 보시길 바랐거든요. 근데 굉장히 진지하게 보시는 거예요. 내가 더 노력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이걸 영국이랑 미국에서 상영할 때 관객분들이 엄청 많이 웃으시면서 편안하게 보시더라고요. 그때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고요.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했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환대의 정도 차이인 것 같더라고요. 캄보디아도 한국이랑 비슷하게 진지하게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라마다 반응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김진유 : 이 영화가 왁킹도 선보여야 하고, 농악도 선보여야 하잖아요. 제가 알기로 김우겸 배우는 6개월 동안 농악을 연습했다고 하더라고요. 신명 역 맡은 해준 배우님은 원래 댄서여서 농악과 어우러지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 같아요. 관련해서 캐스팅이나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변성빈 : 해준 배우나 우겸 배우는 시나리오 초고를 보여줬는데 다들 바로 너무하고 싶다고 하면서 캐스팅이 시작됐고요. 굿이라는 설정을 가져오게 된 이유는 <공작새>가 제 첫 장편 영화인데, 저한테 되게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시나리오 쓸 때 만약 내가 지금 영화를 안 만들고 있으면 뭘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영화 속 우기처럼 꽹과리 상쇄를 했었거든요. 그때 너무 행복해서 어쩌면 굿을 치고 있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왁킹 댄서 트랜스젠더가 굿을 하는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서 동아시아 철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배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굿을 빌려서 말하기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굿을 선택한 게 왁킹과 굿이라는 이질적인 문화를 충돌시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저한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왁킹이라는 춤은 미국 LA의 LGBTQ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나온 춤이거든요. 그러니까 왁킹을 추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굿은 반대로 공동체의 번영을 빌어주는 행위예요. 왁킹 댄서 트랜스젠더가 굿을 하는 건 공동체나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인물이 오히려 공동체의 번영을 빌어주는 행위가 저한테는 뭐라고 해야 될까. 그게 제가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힘의 형태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왁킹과 굿을 매치했던 것 같아요.
김진유 : 영화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라는 대사가 저는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시나리오 쓸 때부터 그 대사는 있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사고하거나 바라보는 세상과도 맞닿아 있을 것 같아서 영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변성빈 : 명이가 버스정류장에서 보석이한테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어떤 순간에 사람을 사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웃어라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뭐라고 해야 될까요? 본질은 같은데 형태가 달라서 본질이 가려지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본질이 가려진 사람들을 가끔씩 착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런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한 거고, 그것을 알게 되는 것도 너무 소중한 거고. 그래서 명이가 보석이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김진유 : 할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마지막에 사진으로 드러나는데요. 뜬쇠패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시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변성빈 : 뜬쇠패는 쉽게 생각하시면 <왕의 남자>의 ‘공길’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뜬쇠패의 다른 말이 남사당패이기도 한데요. 조선시대 후기에 뜬쇠패에서 굿을 치시던 분들이 남성분들이셨는데 굿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서 동성한테 몸을 파는 일들이 많았대요. 제가 뜬쇠패를 설정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영화 밖의 어떤 시선으로는 트랜스젠더나 성소자의 이슈를 유행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 속에서 늘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을 조선시대의 퀴어적인 시각으로 가져오고 싶었고요. 또 한 가지는, 명이가 덕길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그런데 저는 덕길이를 단순히 명이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덕길이가 명이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덕길에게도 자신만의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걸 통해 인물의 레이어를 입체적으로 쌓고 싶었고요. 영화가 전개되면서 덕길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자신의 뼛가루를 아버지의 나무에 뿌려달라고 했잖아요? 그건 덕길이도 명이와 같이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결국엔 용서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명이에게는, 덕길이에게 도전하는 하나의 어떤 제안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덕길이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은 이유 때문에 뜬쇠패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김진유 :이 영화가 감독님이 기사로 봤을 때 ‘어떤 용서에 대한 영화다’라는 이야기를 좀 봤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석이든 명이든 그리고 덕길이든, 모든 캐릭터가 어떤 용서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느 한 인물조차도 용서를 안 하는 사람들이 없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완성을 해 나가고 있었더라고요. 그거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성빈: 저도 놀랐어요.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 ‘내가 용서에 대해서 말할 거야. 그러니까 캐릭터들 다 용서하게 하자’ 이렇게 한 적이 없었고 그냥 써요. 시나리오를 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이야기로 써 나가요. 근데 ‘이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뭘까?’ 하면 그걸 제가 잘 몰라요. 계속 시나리오한테 물어가는 과정인 거죠. 근데 어느 순간 이 시나리오가 저한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순간이 있고, 그때 약간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 될까요? 영화가 나한테 도전하고 있는 거고, 영화의 메시지를 제가 정하고 가는 게 아니라 저한테 알려주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공작새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쓸 때 사실 미움이 너무 큰 상태였었어요.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너무 컸고,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미워할 때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글 쓸 때는 집중을 다른 곳에 둘 수 있으니까, 미워하는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싶어서 글을 썼었거든요.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도, 이 시나리오가 ‘미움과 용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계속 탈고하는 과정에서, ‘이 시나리오가 지금 나한테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용서해 내는 게, 제가 창작자로서 관객을 기만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영화를 단순히 잘 만들어내는 게 연출자의 영역을 넘어서, 제 개인적인 삶 안에서도 그 사람을 용서해 내는 여정을 영화가 도전하게끔 만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이 영화가 용서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김진유: 어쨌든 이 영화가 표현되는 방식을 이야기해 보자면, 제가 궁금했던 건 4대 3 촬영 방식을 선택했잖아요? 그리고 인물 중심으로 촬영이 계속되어 있고. 많은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들이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뭔가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랜만에 배우와 카메라가 가까운 느낌을 받는 영화였어요. 그걸 의도한 건가요?
변성빈: 감독님이 먼저 말씀하셨듯이, 요즘은 트렌드처럼 인물을 굉장히 멀리서 건조하게 바라보고 풍경을 많이 담아내는 영화들이 많고 저도 그런 영화를 너무 좋아해요. 근데 공작새를 기획할 때 핵심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트랜스젠더 주인공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장편 극영화가 너무 적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명이와 같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고요. 그렇다면 관객들에게 명이를 만나게 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 명이를 기억하게 하는 것에 영화의 성취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인물을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좁혀서 데려가고 싶었고요. 4대 3이나 극단적인 인물 클로즈를 많이 사용했고, 오프닝 중간과 엔딩의 카메라 워킹을 똑같이 대칭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명이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트래킹 하거나 줌하는 식으로 배치를 시켰죠. 그 이유가 뭐냐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처음 본 관객은 명이를 굉장히 불편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영화가 끝났을 때, 명이를 굉장히 친근하게 느끼고, 명이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같은 ‘우리’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최대한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좁히는 선택들을 한 것 같습니다.
김진유: 충분히 감독님이 의도한 대로 영화를 보게 된 것 같고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기주봉 배우님의 존재감이 되게 중요했어요. 영정 사진으로 첫 등장을 해서, 중간에 한 번 더 등장을 하는데, 그 지점들이 명이의 상태를 더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보여지고 있었어요. 그럼 기주봉 배우는 처음부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아니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얘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성빈: 기주봉 선생님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PD님 편으로 시나리오를 드리고, 선생님께서 만나자고 하셔서 만나게 되었어요.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암전된 화면에서 덕길이가 ‘나 이제 간다’ 이렇게 웃으면서 전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사실 선생님의 지인분의 이야기예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아서 선생님께 영화 첫 시작에 넣고 싶다고 하니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아이디어도 주시면서 같이 영화를 하게 됐습니다.
김진유: 캐치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오프닝에 들렸던 목소리가 기주봉 배우님 목소리거든요. 그래서 두 번 보시면 또 남다르다. 그래서 한 번 더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김진수 배우님을 얘기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김진수 배우님을 어떻게 이렇게 정극을 할 수 있는 배우로 만드셨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리고 ‘김진수 배우님은 앞으로 영화를 하시는 건가?’ 이런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변성빈: 저는 김진수 선배님이랑 일면식도 없긴 했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통해서 시나리오를 드렸어요. 근데 회사에서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계속 연락하고 이럴 때마다 회사가 자꾸 말을 돌리더라고요. 그러다 촬영이 가까워져 오면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배우들한테 시나리오가 갔어요. 알고 보니까 회사에서 촬영 2~3주 전에 선배님한테 시나리오를 넘긴 거예요. 그래서 선배님이 보자마자 그날 바로 연락을 주셨어요. 너무 하고 싶다고. 저희는 그제야 그 후의 사정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같이 하게 됐고요. 저는 물론 개그맨으로서 선배님을 더 인지하겠지만 억도랑 잘 어울릴 것 같은 선배님만의 그런 모습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안을 드렸고 바로 같이 하게 됐습니다.
김진유: ‘너무 탁월한 배우였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석의 엄마 역할을 했던 황정민 배우도 ‘보석을 감싸는 엄마의 마음’과 그리고 명이를 위하는 마음, 하지만 또 보석을 더 지키고 싶은 마음을 잘 드러낸 인물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 안에서보다 더 드러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일단 ‘정말 연기를 너무너무 잘하시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배우분들은 촬영 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되게 많잖아요. 그 감정선을 유지하려고 준비 중이신데도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나시다’ 이 생각을 했고. 사실 정민 선배님은 미혼이시고 아이가 없으신데도 저랑 이제 이야기 나누면서 감정을 잡으시고 되게 좋게 표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청 많은 디렉션을 드리지 않아도 되게 많은 것을 소화해 주시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김진유: 저는 이 영화가 배우들의 합이 너무 훌륭한 영화라고 계속 느끼면서 봤어요. 그런 부분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혹시 관객분들 중에 질문이 있으실까요?
관객 1: 네, 안녕하세요.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영화를 봤어요. 영화 포스터 보고 ‘이런 공작새인가 봐’ 하면서 봤거든요.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 파란색 공작새가 등장하는데, 남자 배우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존재 같은 역할을 하고, 화려한 춤을 추잖아요. 또 공작새의 경우 수컷일수록 더 화려하고 예쁜 데다가 구애를 할 때 춤을 추는 특징이 있고. 그런 특징들과 주인공이 연결돼서 공작새의 이미지가 계속 나왔던 건지 그게 되게 궁금했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안고 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게 실제 공작새를 안아 주셨던 건지 궁금했어요.
변성빈: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작새는 다 실제 공작새고요. 동물을 담당해 주시는 전문가 선생님과 함께 안전하게 잘 촬영했어요. 공작새를 설정했던 이유는 먼저 굿에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를 ‘새’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새’라는 상징을 영화에 되게 가져오고 싶었었어요. 그럼 어떤 새를 가져오느냐 했을 때, 공작새를 가져온 이유는 억도의 대사처럼 ‘공작새의 깃털 모양이 사람의 눈 같았다’ 이 말 때문이었어요. 제가 영화에 ‘눈’이라는 오브제를 좀 가져왔거든요. 명이의 사건을 일으키는 목걸이도 눈 모양을 하고 있고, 명이의 집에서도 눈 모양의 오브제도 많이 배치를 했어요. 그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살면서 트랜스젠더를 마주칠 일이 정말 없어요. 저는 ‘이게 참 이상한 일 같은, 우리는 왜 이것조차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함께 살아가는 것의 시작이 대단한 걸 뭘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쳤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눈이라는 오브제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공작새의 깃털모양과 비슷해서 공작새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2: 어쨌든 영화 제목이 공작새잖아요. 근데 공작새라는 제목을 처음부터 짓고 영화를 시작하신 걸까요? 또 다른 제목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변성빈: 초고는 지금이랑 다른 얘기라 제목이 달랐고, 이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처음부터 공작새로 하긴 했는데 되게 고민이 많았어요. 왜 공작새로 검색을 하면 진짜 공작새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공작새와 춤’ 이런 식으로 여러 개를 더해봤는데 결국 공작새가 되게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공작새로 하게 됐습니다.
관객 2: 저는 이제 영화에서 ‘마지막에 한 번쯤은 공작새가 펼쳐진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를 기대하면서 보긴 했거든요. 근데 그거를 끝까지 안 보여주시더라고요. 명이의 캐릭터로서 더 보여주려고 하는 마음들이 느껴졌는데, 어떤 의도한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의도한 바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사실 날개를 폈어야 됐는데, 공작새가 안 피더라고요. 허락을 안 해주셔서. (웃음)
김진유: ‘만약 날개를 폈으면 이야기적으로 뻔한 느낌인데, 그 모습이 없어서 상상의 영역으로 간 것이 오히려 더 영화를 살리지 않았나’라고 포장을 한번 해볼게요. (웃음) 혹시 또 질문 있으세요?
관객 3: 영화 미술이 좋다는 후기를 봐서 기대를 하면서 봤는데, 예상한 기대만큼 너무 좋았고요. 신명의 직업이 왁킹 댄서인데, 왁킹 특징이 이제 화려한 만큼 춤을 추는 댄스 배틀 장소에서의 조명이 엄청 화려하잖아요. 근데 반대로 고향으로 내려갈 때는 분위기는 좀 차분한데 귀걸이나 옷이 화려하고, 특히 조명 대신 신명의 아이섀도가 조명처럼 좀 화려하고요. 영화에서 보면 조명이나 아이섀도 같은 컬러를 굉장히 잘 쓰신 것 같고 저도 좋게 봤거든요.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감독님이 미술적인 부분에서 신경 쓰시고 싶었거나 강조하고 싶었던 숨은 비하인드 같은 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 미술, 의상을 제가 정말 가장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집요하게 하긴 했었어요. 그 이유가, 명이가 서울에 있을 때 검은색 아닌 누드톤의 옷을 입고 있는데 호창에 오면서부터 옷이 굉장히 화려해지고 머리에 컬도 되게 심해지고 그래요 저는 그 이유가 단순히 명이를 예쁘게 보이게 하려는 게 아니라 명이에게는 그게 투쟁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명이가 있는 모습 그대로 포창에 갔을 때, 포창에 있는 사람들이 명이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명이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떤 투쟁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더 페미닌한 의상들, 그리고 더 화려한 색깔, 강렬한 분장 같은 요소들을 선택을 한 거죠. 근데 중간에 명이가 굿을 치고 난 다음 이후부터, 의상들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해요. 머리 컬들도 점점 풀어지기 시작하고. 저는 명이의 이런 겉모습을 통해서 명희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요. 그래서 지인 스타일리스트랑 의상 착장을 먼저 디자인하고, 공간에 맞춰서 색감 대비를 맞춰서 디자인도 하고, 디자인에 맞춰서 조명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해서 조명 컬러도 정하고, 이런 식으로 디벨롭이 됐던 것 같습니다.
김진유: 저는 영화가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형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촬영 감독님이랑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촬영을 하다 보면 하다 보면 대부분 아웃포커싱 시키는 방식으로 최대한 배경을 가려서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방식들을 선택을 하잖아요. 오히려 백을 더 열고 보여주고, 미술도 보여주는 여러 방식으로 촬영이 되어서 ‘어떤 자신감이 있으셨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저예산이다 보니까, 특성상 최대한 믿게 해야 되고 감춰야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가린다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는 방식으로 더 계속해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더 좋게 본 영화입니다. 혹시 또 질문이 있을까요? 그러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시면서 마무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하고 싶은 얘기 하셔도 되고요.
변성빈: 영화 속에서 명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려고 한다’ 이 말을 하는데, 사실 제가 저한테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정말 용서라는 건 한 번 했다고 쉬운 건 아니고, 또다시 다음의 과제처럼 또 오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용서해 내는 그 여정이, 그리고 타인을 수용해 수용한다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거잖아요. ‘엄청난 수용을 해내는 것이 굉장히 힘들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꿔 나갔던 것 같다’라고 믿는 편이에요. 너무 어렵지만 저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을 나름대로 하면서 살고 있고요. 저는 솔직하게 사는 게 나다운 것 같지는 잘 모르겠고, 나답게 살아갔을 때 나타나는 징표가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것 같거든요. 만약 나 자신도, 그리고 타인도 나답게 살아갈 때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웃을 일이 많아지고 나도 편안해지는 거. 이게 나답게 살아가는 거에 대한 징표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서요. 이 영화를 통해서, 명이와 만난 2시간을 통해서 관객분들도 ‘나답게 살아가는 여정’에 대한 용기와 응원을 받았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진유: 들으면서 생각이 난 건데, 아까 시나리오 쓸 때 어떤 미움의 감정으로 출발했잖아요. 그 미움의 감정은 해소가 됐을까요? 용서하셨나요?
변성빈: 영화를 만들고 난 다음에 만날 일이 생겼어요. 만날 줄 몰랐는데 만나게 됐어요. 그분은 저를 피하는데 제가 가서 안아드렸어요. 그리고 ‘잘 지내셨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풀어지는 게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됐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김진유: 마지막으로 차기작이나 앞으로의 계획 얘기하면서 마무리 한번 해보겠습니다.
변성빈: 다양한 장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근데 이렇게 계속 시나리오 쓰고 하다 보니까, 저만의 어떤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런 공통점이 있구나. 이런 것을 발견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고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중에 뭐가 되는 대로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진유: 이창동 감독님과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하신 명언이 있습니다. ‘한 감독은, 한 이야기밖에 못한다.’ 그래서 감독님은 아마 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이 영화를 미워하는 사람한테 추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오늘자로 세 번째 봤는데 그전에 본 것보다 세 번째가 좋더라고요. 오늘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보면 더 읽히는 것도 있으니까 한번 더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10월 22일에 개봉을 해서 지금까지의 일정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주변에 추천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신영극장도 많이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수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객 4: 죄송한데 갑자기 질문이 하나 생각나서요. 일단 질문드리기 전에, 아까 영화를 좀 편히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또 딱딱하게 봤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영화장면 중에서 나무가 딱 잘려 있었는데 그 순간에 번개가 치면서 명이의 표정이 약간 비급 영화의 한 장면같이 보였어요. 그래서 ‘이거를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이 들었어요. 웃긴데 왠지 웃으면 안 되는 분위기라서 좀 못 웃었는데, ‘웃어도 됐겠다. 감독님이 약간 그런 걸 의도하셨나?’ 약간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건, 우기의 캐릭터가 추모굿을 명이가 해야 한다는 집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진짜 유언이 아닐 수도 있고 이거는 우기만 아는 사실이고. 집착을 하는 게 진짜 유언이라서인지, 아니면 명이에 대한 감정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에도 명이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때도 우기는 왜 명이한테 미안했던 것인지, 명이의 진심을 믿지 못해서인지 혹은 다른 감정이 있어서 미안하다고 한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우기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한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진유: 첫 번째로는 B급 코미디 같은 거를 노리셨는지, 어떤 순간들이 있을까요?
변성빈: 명이가 노동하러 다녔던 장면에서의 연출 방식이나, 홍시를 더럽게 발라먹는 하트 장면 같은 것들이요. 사실 번개 치는 장면도, 외국 관객들은 엄청 웃는데 한국 관객들은 안 웃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렇게 설정한 게, 물론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이 덕길의 음성과도 연결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굉장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번개를 맞은 나무는 불씨를 품고 있다가 자연발화를 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그런 식의 셋업들을 했던 거고, 그냥 편하게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우기의 캐릭터에 관해서도 질문을 많이 주시는데, 사실은 다른 캐릭터들은 좀 이해가 되잖아요. 사실 마지막 완고에 우기랑 명이랑 둘이 대화하는 신이 하나가 더 있어요. 거기에서 우기가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제 나오는데, 우기 역할을 한 우겸 배우가 이 씬은 없애자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설명하지 말고 자기가 연기를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그러자’ 그러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사실 우기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관객분들의 상상에 맡겨도 상관이 없었거든요. 다만 우기가 그렇게까지 명이로 하여금 추모굿을 하게 하려는 것은, 명이에 대한 질투심과 덕길에 대한 엄청난 애증 같은 감정만으로 명이를 끌고 오는 거죠. 그리고 우기가 왜 저렇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됐죠.
김진유: 저는 우기가 전통을 이어가는 캐릭터로 인식을 해서, ‘그래도 아빠의 추모는 자신이 하는 것으로 가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하면서 봤습니다.
변성빈: 근데 너무 재밌는 게, 우기 캐릭터를 그렇게 셋업을 하니까 관객분들마다 좀 해석이 다르시잖아요. 감독님처럼 해석하신 분도 있고, 우기와 덕길의 관계를 에로스적으로 해석하시는 분도 계시고. 그리고 대안 가족의 형태로 해석하시는 분도 계셔서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해석에 따라 관계의 형태가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김진유: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이 자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변성빈: 감사합니다.
<공작새> 씨네토크
2024.11.19.
초청 : 변성빈 감독
진행 :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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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 반갑습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진유라고 하고요. 멀리서 와주신 감독님 모시고 씨네토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올해 봤던 영화들 중에 <공작새>가 제일 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과 배우의 합도 좋았던 것 같아요. 작년에 ‘댄스필름댄스’ 기획전에 이어서 신영극장에 두 번째 오셨잖아요. 다시 방문하신 소감과 소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변성빈 : 안녕하세요. <공작새> 연출한 변성빈입니다. 작년에 ‘댄스필름댄스’ 기획전 때 <공작새>랑 그전에 만들었던 <신의 딸은 춤을 춘다>라는 단편 영화를 신영극장에 상영했거든요. 그때 찾아뵙고 인사드렸었는데 또 이렇게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김진유 : 왁킹과 농악의 콜라보라고 할까요? 전혀 다른 요소들이 조화롭게 영화 안에서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성빈 : 방금 전에 말씀드린 <신의 딸은 춤을 춘다>라는 단편 영화에 해준 배우랑 김우겸 배우도 출연했어요. 단편 영화를 같이 만든 배우랑 스태프들이 모여서 장편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부터 장편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그게 21년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진유 : <공작새>가 개봉하기 전까지 62개국의 영화제에서 상영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외국 관객과 한국 관객의 반응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변성빈 : 물론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차이가 좀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2022년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을 때 저는 관객분들이 편안하게 보시길 바랐거든요. 근데 굉장히 진지하게 보시는 거예요. 내가 더 노력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이걸 영국이랑 미국에서 상영할 때 관객분들이 엄청 많이 웃으시면서 편안하게 보시더라고요. 그때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고요.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했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환대의 정도 차이인 것 같더라고요. 캄보디아도 한국이랑 비슷하게 진지하게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라마다 반응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김진유 : 이 영화가 왁킹도 선보여야 하고, 농악도 선보여야 하잖아요. 제가 알기로 김우겸 배우는 6개월 동안 농악을 연습했다고 하더라고요. 신명 역 맡은 해준 배우님은 원래 댄서여서 농악과 어우러지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 같아요. 관련해서 캐스팅이나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변성빈 : 해준 배우나 우겸 배우는 시나리오 초고를 보여줬는데 다들 바로 너무하고 싶다고 하면서 캐스팅이 시작됐고요. 굿이라는 설정을 가져오게 된 이유는 <공작새>가 제 첫 장편 영화인데, 저한테 되게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시나리오 쓸 때 만약 내가 지금 영화를 안 만들고 있으면 뭘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영화 속 우기처럼 꽹과리 상쇄를 했었거든요. 그때 너무 행복해서 어쩌면 굿을 치고 있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왁킹 댄서 트랜스젠더가 굿을 하는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서 동아시아 철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배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굿을 빌려서 말하기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굿을 선택한 게 왁킹과 굿이라는 이질적인 문화를 충돌시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저한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왁킹이라는 춤은 미국 LA의 LGBTQ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나온 춤이거든요. 그러니까 왁킹을 추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굿은 반대로 공동체의 번영을 빌어주는 행위예요. 왁킹 댄서 트랜스젠더가 굿을 하는 건 공동체나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인물이 오히려 공동체의 번영을 빌어주는 행위가 저한테는 뭐라고 해야 될까. 그게 제가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힘의 형태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왁킹과 굿을 매치했던 것 같아요.
김진유 : 영화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라는 대사가 저는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시나리오 쓸 때부터 그 대사는 있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사고하거나 바라보는 세상과도 맞닿아 있을 것 같아서 영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변성빈 : 명이가 버스정류장에서 보석이한테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어떤 순간에 사람을 사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웃어라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뭐라고 해야 될까요? 본질은 같은데 형태가 달라서 본질이 가려지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본질이 가려진 사람들을 가끔씩 착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런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한 거고, 그것을 알게 되는 것도 너무 소중한 거고. 그래서 명이가 보석이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김진유 : 할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마지막에 사진으로 드러나는데요. 뜬쇠패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시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변성빈 : 뜬쇠패는 쉽게 생각하시면 <왕의 남자>의 ‘공길’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뜬쇠패의 다른 말이 남사당패이기도 한데요. 조선시대 후기에 뜬쇠패에서 굿을 치시던 분들이 남성분들이셨는데 굿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서 동성한테 몸을 파는 일들이 많았대요. 제가 뜬쇠패를 설정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영화 밖의 어떤 시선으로는 트랜스젠더나 성소자의 이슈를 유행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 속에서 늘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을 조선시대의 퀴어적인 시각으로 가져오고 싶었고요. 또 한 가지는, 명이가 덕길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그런데 저는 덕길이를 단순히 명이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덕길이가 명이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덕길에게도 자신만의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걸 통해 인물의 레이어를 입체적으로 쌓고 싶었고요. 영화가 전개되면서 덕길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자신의 뼛가루를 아버지의 나무에 뿌려달라고 했잖아요? 그건 덕길이도 명이와 같이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결국엔 용서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명이에게는, 덕길이에게 도전하는 하나의 어떤 제안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덕길이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은 이유 때문에 뜬쇠패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김진유 :이 영화가 감독님이 기사로 봤을 때 ‘어떤 용서에 대한 영화다’라는 이야기를 좀 봤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석이든 명이든 그리고 덕길이든, 모든 캐릭터가 어떤 용서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느 한 인물조차도 용서를 안 하는 사람들이 없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완성을 해 나가고 있었더라고요. 그거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성빈: 저도 놀랐어요.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 ‘내가 용서에 대해서 말할 거야. 그러니까 캐릭터들 다 용서하게 하자’ 이렇게 한 적이 없었고 그냥 써요. 시나리오를 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이야기로 써 나가요. 근데 ‘이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뭘까?’ 하면 그걸 제가 잘 몰라요. 계속 시나리오한테 물어가는 과정인 거죠. 근데 어느 순간 이 시나리오가 저한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순간이 있고, 그때 약간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 될까요? 영화가 나한테 도전하고 있는 거고, 영화의 메시지를 제가 정하고 가는 게 아니라 저한테 알려주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공작새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쓸 때 사실 미움이 너무 큰 상태였었어요.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너무 컸고,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미워할 때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글 쓸 때는 집중을 다른 곳에 둘 수 있으니까, 미워하는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싶어서 글을 썼었거든요.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도, 이 시나리오가 ‘미움과 용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계속 탈고하는 과정에서, ‘이 시나리오가 지금 나한테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용서해 내는 게, 제가 창작자로서 관객을 기만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영화를 단순히 잘 만들어내는 게 연출자의 영역을 넘어서, 제 개인적인 삶 안에서도 그 사람을 용서해 내는 여정을 영화가 도전하게끔 만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이 영화가 용서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김진유: 어쨌든 이 영화가 표현되는 방식을 이야기해 보자면, 제가 궁금했던 건 4대 3 촬영 방식을 선택했잖아요? 그리고 인물 중심으로 촬영이 계속되어 있고. 많은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들이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뭔가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랜만에 배우와 카메라가 가까운 느낌을 받는 영화였어요. 그걸 의도한 건가요?
변성빈: 감독님이 먼저 말씀하셨듯이, 요즘은 트렌드처럼 인물을 굉장히 멀리서 건조하게 바라보고 풍경을 많이 담아내는 영화들이 많고 저도 그런 영화를 너무 좋아해요. 근데 공작새를 기획할 때 핵심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트랜스젠더 주인공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장편 극영화가 너무 적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명이와 같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고요. 그렇다면 관객들에게 명이를 만나게 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 명이를 기억하게 하는 것에 영화의 성취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인물을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좁혀서 데려가고 싶었고요. 4대 3이나 극단적인 인물 클로즈를 많이 사용했고, 오프닝 중간과 엔딩의 카메라 워킹을 똑같이 대칭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명이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트래킹 하거나 줌하는 식으로 배치를 시켰죠. 그 이유가 뭐냐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처음 본 관객은 명이를 굉장히 불편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영화가 끝났을 때, 명이를 굉장히 친근하게 느끼고, 명이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같은 ‘우리’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최대한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좁히는 선택들을 한 것 같습니다.
김진유: 충분히 감독님이 의도한 대로 영화를 보게 된 것 같고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기주봉 배우님의 존재감이 되게 중요했어요. 영정 사진으로 첫 등장을 해서, 중간에 한 번 더 등장을 하는데, 그 지점들이 명이의 상태를 더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보여지고 있었어요. 그럼 기주봉 배우는 처음부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아니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얘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성빈: 기주봉 선생님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PD님 편으로 시나리오를 드리고, 선생님께서 만나자고 하셔서 만나게 되었어요.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암전된 화면에서 덕길이가 ‘나 이제 간다’ 이렇게 웃으면서 전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사실 선생님의 지인분의 이야기예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아서 선생님께 영화 첫 시작에 넣고 싶다고 하니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아이디어도 주시면서 같이 영화를 하게 됐습니다.
김진유: 캐치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오프닝에 들렸던 목소리가 기주봉 배우님 목소리거든요. 그래서 두 번 보시면 또 남다르다. 그래서 한 번 더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김진수 배우님을 얘기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김진수 배우님을 어떻게 이렇게 정극을 할 수 있는 배우로 만드셨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리고 ‘김진수 배우님은 앞으로 영화를 하시는 건가?’ 이런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변성빈: 저는 김진수 선배님이랑 일면식도 없긴 했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통해서 시나리오를 드렸어요. 근데 회사에서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계속 연락하고 이럴 때마다 회사가 자꾸 말을 돌리더라고요. 그러다 촬영이 가까워져 오면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배우들한테 시나리오가 갔어요. 알고 보니까 회사에서 촬영 2~3주 전에 선배님한테 시나리오를 넘긴 거예요. 그래서 선배님이 보자마자 그날 바로 연락을 주셨어요. 너무 하고 싶다고. 저희는 그제야 그 후의 사정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같이 하게 됐고요. 저는 물론 개그맨으로서 선배님을 더 인지하겠지만 억도랑 잘 어울릴 것 같은 선배님만의 그런 모습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안을 드렸고 바로 같이 하게 됐습니다.
김진유: ‘너무 탁월한 배우였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석의 엄마 역할을 했던 황정민 배우도 ‘보석을 감싸는 엄마의 마음’과 그리고 명이를 위하는 마음, 하지만 또 보석을 더 지키고 싶은 마음을 잘 드러낸 인물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 안에서보다 더 드러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일단 ‘정말 연기를 너무너무 잘하시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배우분들은 촬영 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되게 많잖아요. 그 감정선을 유지하려고 준비 중이신데도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나시다’ 이 생각을 했고. 사실 정민 선배님은 미혼이시고 아이가 없으신데도 저랑 이제 이야기 나누면서 감정을 잡으시고 되게 좋게 표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청 많은 디렉션을 드리지 않아도 되게 많은 것을 소화해 주시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김진유: 저는 이 영화가 배우들의 합이 너무 훌륭한 영화라고 계속 느끼면서 봤어요. 그런 부분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혹시 관객분들 중에 질문이 있으실까요?
관객 1: 네, 안녕하세요.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영화를 봤어요. 영화 포스터 보고 ‘이런 공작새인가 봐’ 하면서 봤거든요.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 파란색 공작새가 등장하는데, 남자 배우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존재 같은 역할을 하고, 화려한 춤을 추잖아요. 또 공작새의 경우 수컷일수록 더 화려하고 예쁜 데다가 구애를 할 때 춤을 추는 특징이 있고. 그런 특징들과 주인공이 연결돼서 공작새의 이미지가 계속 나왔던 건지 그게 되게 궁금했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안고 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게 실제 공작새를 안아 주셨던 건지 궁금했어요.
변성빈: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작새는 다 실제 공작새고요. 동물을 담당해 주시는 전문가 선생님과 함께 안전하게 잘 촬영했어요. 공작새를 설정했던 이유는 먼저 굿에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를 ‘새’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새’라는 상징을 영화에 되게 가져오고 싶었었어요. 그럼 어떤 새를 가져오느냐 했을 때, 공작새를 가져온 이유는 억도의 대사처럼 ‘공작새의 깃털 모양이 사람의 눈 같았다’ 이 말 때문이었어요. 제가 영화에 ‘눈’이라는 오브제를 좀 가져왔거든요. 명이의 사건을 일으키는 목걸이도 눈 모양을 하고 있고, 명이의 집에서도 눈 모양의 오브제도 많이 배치를 했어요. 그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살면서 트랜스젠더를 마주칠 일이 정말 없어요. 저는 ‘이게 참 이상한 일 같은, 우리는 왜 이것조차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함께 살아가는 것의 시작이 대단한 걸 뭘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쳤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눈이라는 오브제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공작새의 깃털모양과 비슷해서 공작새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2: 어쨌든 영화 제목이 공작새잖아요. 근데 공작새라는 제목을 처음부터 짓고 영화를 시작하신 걸까요? 또 다른 제목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변성빈: 초고는 지금이랑 다른 얘기라 제목이 달랐고, 이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처음부터 공작새로 하긴 했는데 되게 고민이 많았어요. 왜 공작새로 검색을 하면 진짜 공작새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공작새와 춤’ 이런 식으로 여러 개를 더해봤는데 결국 공작새가 되게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공작새로 하게 됐습니다.
관객 2: 저는 이제 영화에서 ‘마지막에 한 번쯤은 공작새가 펼쳐진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를 기대하면서 보긴 했거든요. 근데 그거를 끝까지 안 보여주시더라고요. 명이의 캐릭터로서 더 보여주려고 하는 마음들이 느껴졌는데, 어떤 의도한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의도한 바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사실 날개를 폈어야 됐는데, 공작새가 안 피더라고요. 허락을 안 해주셔서. (웃음)
김진유: ‘만약 날개를 폈으면 이야기적으로 뻔한 느낌인데, 그 모습이 없어서 상상의 영역으로 간 것이 오히려 더 영화를 살리지 않았나’라고 포장을 한번 해볼게요. (웃음) 혹시 또 질문 있으세요?
관객 3: 영화 미술이 좋다는 후기를 봐서 기대를 하면서 봤는데, 예상한 기대만큼 너무 좋았고요. 신명의 직업이 왁킹 댄서인데, 왁킹 특징이 이제 화려한 만큼 춤을 추는 댄스 배틀 장소에서의 조명이 엄청 화려하잖아요. 근데 반대로 고향으로 내려갈 때는 분위기는 좀 차분한데 귀걸이나 옷이 화려하고, 특히 조명 대신 신명의 아이섀도가 조명처럼 좀 화려하고요. 영화에서 보면 조명이나 아이섀도 같은 컬러를 굉장히 잘 쓰신 것 같고 저도 좋게 봤거든요.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감독님이 미술적인 부분에서 신경 쓰시고 싶었거나 강조하고 싶었던 숨은 비하인드 같은 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변성빈: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 미술, 의상을 제가 정말 가장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집요하게 하긴 했었어요. 그 이유가, 명이가 서울에 있을 때 검은색 아닌 누드톤의 옷을 입고 있는데 호창에 오면서부터 옷이 굉장히 화려해지고 머리에 컬도 되게 심해지고 그래요 저는 그 이유가 단순히 명이를 예쁘게 보이게 하려는 게 아니라 명이에게는 그게 투쟁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명이가 있는 모습 그대로 포창에 갔을 때, 포창에 있는 사람들이 명이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명이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떤 투쟁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더 페미닌한 의상들, 그리고 더 화려한 색깔, 강렬한 분장 같은 요소들을 선택을 한 거죠. 근데 중간에 명이가 굿을 치고 난 다음 이후부터, 의상들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해요. 머리 컬들도 점점 풀어지기 시작하고. 저는 명이의 이런 겉모습을 통해서 명희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요. 그래서 지인 스타일리스트랑 의상 착장을 먼저 디자인하고, 공간에 맞춰서 색감 대비를 맞춰서 디자인도 하고, 디자인에 맞춰서 조명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해서 조명 컬러도 정하고, 이런 식으로 디벨롭이 됐던 것 같습니다.
김진유: 저는 영화가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형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촬영 감독님이랑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촬영을 하다 보면 하다 보면 대부분 아웃포커싱 시키는 방식으로 최대한 배경을 가려서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방식들을 선택을 하잖아요. 오히려 백을 더 열고 보여주고, 미술도 보여주는 여러 방식으로 촬영이 되어서 ‘어떤 자신감이 있으셨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저예산이다 보니까, 특성상 최대한 믿게 해야 되고 감춰야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가린다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는 방식으로 더 계속해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더 좋게 본 영화입니다. 혹시 또 질문이 있을까요? 그러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시면서 마무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하고 싶은 얘기 하셔도 되고요.
변성빈: 영화 속에서 명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려고 한다’ 이 말을 하는데, 사실 제가 저한테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정말 용서라는 건 한 번 했다고 쉬운 건 아니고, 또다시 다음의 과제처럼 또 오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용서해 내는 그 여정이, 그리고 타인을 수용해 수용한다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거잖아요. ‘엄청난 수용을 해내는 것이 굉장히 힘들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꿔 나갔던 것 같다’라고 믿는 편이에요. 너무 어렵지만 저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을 나름대로 하면서 살고 있고요. 저는 솔직하게 사는 게 나다운 것 같지는 잘 모르겠고, 나답게 살아갔을 때 나타나는 징표가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것 같거든요. 만약 나 자신도, 그리고 타인도 나답게 살아갈 때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웃을 일이 많아지고 나도 편안해지는 거. 이게 나답게 살아가는 거에 대한 징표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서요. 이 영화를 통해서, 명이와 만난 2시간을 통해서 관객분들도 ‘나답게 살아가는 여정’에 대한 용기와 응원을 받았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진유: 들으면서 생각이 난 건데, 아까 시나리오 쓸 때 어떤 미움의 감정으로 출발했잖아요. 그 미움의 감정은 해소가 됐을까요? 용서하셨나요?
변성빈: 영화를 만들고 난 다음에 만날 일이 생겼어요. 만날 줄 몰랐는데 만나게 됐어요. 그분은 저를 피하는데 제가 가서 안아드렸어요. 그리고 ‘잘 지내셨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풀어지는 게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됐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김진유: 마지막으로 차기작이나 앞으로의 계획 얘기하면서 마무리 한번 해보겠습니다.
변성빈: 다양한 장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근데 이렇게 계속 시나리오 쓰고 하다 보니까, 저만의 어떤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런 공통점이 있구나. 이런 것을 발견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고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중에 뭐가 되는 대로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진유: 이창동 감독님과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하신 명언이 있습니다. ‘한 감독은, 한 이야기밖에 못한다.’ 그래서 감독님은 아마 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이 영화를 미워하는 사람한테 추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오늘자로 세 번째 봤는데 그전에 본 것보다 세 번째가 좋더라고요. 오늘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보면 더 읽히는 것도 있으니까 한번 더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10월 22일에 개봉을 해서 지금까지의 일정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주변에 추천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신영극장도 많이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수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객 4: 죄송한데 갑자기 질문이 하나 생각나서요. 일단 질문드리기 전에, 아까 영화를 좀 편히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또 딱딱하게 봤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영화장면 중에서 나무가 딱 잘려 있었는데 그 순간에 번개가 치면서 명이의 표정이 약간 비급 영화의 한 장면같이 보였어요. 그래서 ‘이거를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이 들었어요. 웃긴데 왠지 웃으면 안 되는 분위기라서 좀 못 웃었는데, ‘웃어도 됐겠다. 감독님이 약간 그런 걸 의도하셨나?’ 약간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건, 우기의 캐릭터가 추모굿을 명이가 해야 한다는 집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진짜 유언이 아닐 수도 있고 이거는 우기만 아는 사실이고. 집착을 하는 게 진짜 유언이라서인지, 아니면 명이에 대한 감정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에도 명이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때도 우기는 왜 명이한테 미안했던 것인지, 명이의 진심을 믿지 못해서인지 혹은 다른 감정이 있어서 미안하다고 한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우기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한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진유: 첫 번째로는 B급 코미디 같은 거를 노리셨는지, 어떤 순간들이 있을까요?
변성빈: 명이가 노동하러 다녔던 장면에서의 연출 방식이나, 홍시를 더럽게 발라먹는 하트 장면 같은 것들이요. 사실 번개 치는 장면도, 외국 관객들은 엄청 웃는데 한국 관객들은 안 웃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렇게 설정한 게, 물론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이 덕길의 음성과도 연결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굉장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번개를 맞은 나무는 불씨를 품고 있다가 자연발화를 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그런 식의 셋업들을 했던 거고, 그냥 편하게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우기의 캐릭터에 관해서도 질문을 많이 주시는데, 사실은 다른 캐릭터들은 좀 이해가 되잖아요. 사실 마지막 완고에 우기랑 명이랑 둘이 대화하는 신이 하나가 더 있어요. 거기에서 우기가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제 나오는데, 우기 역할을 한 우겸 배우가 이 씬은 없애자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설명하지 말고 자기가 연기를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그러자’ 그러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사실 우기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관객분들의 상상에 맡겨도 상관이 없었거든요. 다만 우기가 그렇게까지 명이로 하여금 추모굿을 하게 하려는 것은, 명이에 대한 질투심과 덕길에 대한 엄청난 애증 같은 감정만으로 명이를 끌고 오는 거죠. 그리고 우기가 왜 저렇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됐죠.
김진유: 저는 우기가 전통을 이어가는 캐릭터로 인식을 해서, ‘그래도 아빠의 추모는 자신이 하는 것으로 가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하면서 봤습니다.
변성빈: 근데 너무 재밌는 게, 우기 캐릭터를 그렇게 셋업을 하니까 관객분들마다 좀 해석이 다르시잖아요. 감독님처럼 해석하신 분도 있고, 우기와 덕길의 관계를 에로스적으로 해석하시는 분도 계시고. 그리고 대안 가족의 형태로 해석하시는 분도 계셔서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해석에 따라 관계의 형태가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김진유: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이 자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변성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