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바람이 전하는 말> 리뷰 : 이어지고 다시 흘러가는 것은


<바람이 전하는 말>

이어지고 다시 흘러가는 것은


  현대에 들어서 대중가요는 대개 가수만 기억될 뿐 노래를 만들어낸 이에게는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적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20세기 후반을 살아온 이들에게 '김희갑'이라는 석 자는 선명하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향수>, <알고 싶어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만큼 대중에게도, 가요계에도 김희갑이란 작곡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런 김희갑의 곁에서 10년 동안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대체 무얼 담고 있을까. <바람이 전하는 말>은 조용필의 2023년 콘서트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가 일흔이 넘어가는 가수지만 여전히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꽉 채우는 조용필의 콘서트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전주부터 이미 직감했다는 듯 큰 함성을 보내고, 평론가들은 노래에 감탄한다. 이토록 연극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를 담은 대중가요는 전무후무하다는 극찬을 내놓기도 한다. 영화는 김희갑을 모르는 세대도 그의 음악과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잘 알려진 음악을 먼저 틀어주며 그의 삶을 소개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1936년 평양 출생이었던 김희갑은 1.4 후퇴 때 대구로 피난을 와 미군 위문 공연단인 미 8군 쇼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미 8군 쇼는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음악인 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를 시작으로 한국 대중음악 선구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당시 김희갑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서 키보이스 밴드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 무대까지 서며 유행을 이끌었다.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등 21세기에도 여전히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60년대에 발매한 것이다.

 

 영화는 김희갑 작곡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지만 오로지 김희갑의 시점으로만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의 곡을 부른 가수, 그를 존경하는 후배들, 여러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의견을 함께 뒤섞어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이 불리기까지 그가 지나온 내면의 층위들을 드러낸다. 단순히 그의 곡이 위대하다,라고 찬양만 하는 것이 아닌 당시 유행하던 곡 스타일과 김희갑의 곡의 차별점, 그 노래를 만들 때 작업 현장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본인과 제3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며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물론 단순히 김희갑의 전성기를 추억하고 그리워만 하는 내용은 아니다. 그를 모르는 세대가 갖고 있는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곡의 구조나 음악적 기술 보다, 그 곡들이 탄생한 순간의 공기와 정서를 차분히 풀어내면서 이들로 하여금 그 시대의 감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전달한다. <바람이 전하는 말>의 의의는 바로 이 '전승의 감각'을 구성하는 데 있다. 특정한 감상 방향을 강요하는 게 아닌 개인적 회상과 실제 정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긴 시간 활동한 음악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김희갑 작곡가 본인 역시 안주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양인자라는 최고의 동업자이자 아내를 만나 그의 노래에 완벽한 가사가 붙은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꾸준히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현재 음악 트렌드를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 덕에 트렌드에 탑승한 노래를 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김희갑만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창조하며 오랜 시간 한국 대중가요의 유행을 선도했다. 정지용 시인의 시로 만든 노래 <향수>는 가곡과 대중가요의 합작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뮤지컬 <명성황후>의 넘버 제작 요청을 수락한 후 5년 간의 공부 끝에 써낸 넘버는 <명성황후>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위대한 작곡가란 이름 이면에는 늘 새로운 멜로디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의 시간이 있음을, 영화는 김희갑의 흔적을 가감 없이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한 사람이 전부 일궈낸 것이 아닌 그 곁의 수많은 가수와 조력자 역시 조명하며 한국의 대중음악이 어떻게 기억되고 변주되었으며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노래가 존재하는 한, 그의 열정과 작품은 기억과 기억을 거쳐 언제까지나 세대를 막론하고 이어지고 흘러갈 것이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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