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베일리와 버드> 리뷰 : 왜 항상 ‘새’로 비유되는가?

<베일리와 버드>

 왜 항상 ‘새’로 비유되는가?


 영화 <베일리와 버드>의 힘은 상징보다 질감, 은유보다 몸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어떤 영화라고 특정 짓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는 수식어를 가진 베일리(니키야 애덤스)는 이제 막 첫 생리를 시작한 상태이다. 베일리의 아빠 버그(배리 키오건)는 딸의 인생보다는 아직까지 본인의 감정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이미 거의 다 큰 아들과 딸을 가진 아빠인 버그는 새로운 여자 친구와의 결혼을 앞서 들뜬 상태이다. 이는 그의 딸 베일리의 상태와 대조를 이룬다. 베일리는 뭐든 혼자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실제로 자신이 결정한 대로 해버리고 마는 청소년이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그녀의 이러한 독립성은 철없는 아빠인 버그보다 그녀가 더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은 청소년. 자신감, 독립심을 키우기에는 좋은 나이이지만 현실에는 넘어져 봐야만 알 수 있는 진실들이 너무 많이 포진해 있다.

 

 이 영화의 현실주의는 바로 이 간극에서 출발한다. 어른이라고 불리지만 자기감정에 얽매여 있는 버그, 어른이 되려 애쓰는 중에 몸이 먼저 변화를 먼저 겪게 되는 베일리. 하지만 여기서 이 영화는 일반적인 성장영화처럼 대단한 사건들의 깃발을 가지고 그녀의 삶을 묘사하지 않는다. 영국 하층민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왔던 이 영화의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화장실의 차가운 타일, 어정쩡한 휴지 조각, 매트리트에 묻은 피의 이미지를 통해 ‘혼자 해결한다.’라는 말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서툶과 민망함을 통과해야 성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카메라는 설명 대신 체감할 수 있는 샷을 보여주고, 영화 속 음악은 감정을 밀어 올리기보다 숨을 들이쉬는 간격을 남긴다. 이러한 절제된 묘사는 베일리의 자기 결정이 영웅적 포즈가 아니라 생활의 반복 속에서 다져지는 삶의 ‘기술’ 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에서 묘사된 ‘가족’은 혈연의 완성체가 아니라 끝맺지 못한 목록처럼 보인다.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각각이고, 일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어른들의 말과 행동은 항상 끝이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된다. 그러한 가족 사이의 빈틈 속에 들어온 버드(프란츠 로고브스키)는 베일리에게 구원의 장치라기보다, 관계의 리듬을 가르치는 타자이다. “당신 떠날 거예요?”, “응, 때가 된 것 같아” / “난 작별 인사 싫어요.” 이 간단한 대사의 교환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가 아니라, 함께 있던 시간이 끝날 수밖에 없는 인간 세계의 법칙을 연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더하여, 새가 흘리는 눈물은 상징의 해설이 아니라 떠남이 곧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성장하는 베일리에서 조심스레 알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는 꼭 서로를 소유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도 말이다.

 

 철없는 아빠와 딸 사이의 긴장감, 성장하는 베일리의 서사로 진행되던 영화는 후반부로 진입하면서 조금씩 변화해 가는 서로의 내면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심에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가르쳐주는 버드의 인생이 있다.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는 버드 내면의 생김새는 베일리에서 ‘조율’하는 삶의 발견을 이루게 한다. 철없는 아빠의 결혼식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드레스를 입어주고, 머리를 땋고, 타인의 리듬에 잠시 몸을 맞춰보는 것. 그 베일리의 양보는 굴복이 아니라 더 넓은 형태의 자립으로 이어진다. 베일리는 그 과정을 거친 뒤에야 ‘삶은 공허하지 않아’라고 외칠 수 있을지 모른다. 삶의 공허를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게 아마 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일지 모른다.

 

형식 역시 현실의 감각을 보여준다. 핸드폰 세로 화면으로 기록된 파편들이 셋이 나란히 놓였다가 하나의 와이드샷으로 이어질 때, 사적인 시선이 공동의 프레임으로 확정되는 경험이 생긴다. 이는 소셜 네트워크에 쓰이는 영상의 즉흥성과 영화적인 관찰의 지속 시간을 억지로 합치지 않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면서 공존을 해내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그 화면과 영상이 해석을 강요하지 않기에 관객들은 저 자유로워진다.

 

 버그는 변하지 않은 채 머무르지 않고, 베일리는 단번에 성숙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나아지는 법을 묵묵히 보여준다. 떠남은 실패가 아니고, 양보는 패배가 아니며, 성장은 선언이 아니고 몸에 새겨지는 습관 같은 것. 버드의 눈물과 떠남은 우리에게 삶이라는 긴 여정에 조용한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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