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없는 소녀>
닫혀 있던 문이 열린 건
코오트(캐서린 클린치)는 어딜 가든 외톨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괴짜라고 취급받으며 코오트가 대화할 상대는 없다. 도박에 술중독인 아버지는 애초에 자식들에게 큰 관심이 없고, 일과 육아에 치인 어머니는 코오트에게까지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새로 태어난 아기로 더 정신이 없어진 이 부모는 코오트를 먼 친척 집에 맡겨버리기로 한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말없는 소녀>는 2023년에 개봉했지만, 재개봉 성원에 힘입어 올해 2025년 다시 극장에 걸렸다. 크게 스토리가 자극적이거나 큰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끌렸을까.
198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한적하면서도 정다운 시골을 표현하는데 '여백'을 사용했다. 코오트를 맡은 아일린(캐리 크롤리)과 숀(앤드류 베넷) 부부는 돈이 많은 갑부도, 코오트에게 자신의 관심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코오트에게 필요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 또한 감독은 뛰어난 미장센이나 음악이 아닌 여백을 두었다.
아일린은 코오트의 긴 머리를 매일 손수 백 번씩 빗겨주고, 매일 따뜻한 음식과 코오트가 할 수 있는 일감을 주고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숀은 무뚝뚝하고 말수는 없어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행동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제 몫의 과자를 양보하고, 코오트가 우체통까지 뛰어갔다 오는 시간을 직접 재주며 그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가시적인 방법으로 알려주었다. 또한 함께 목장을 청소 경주를 할 땐 코오트가 까르르 웃으며 비로소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코오트가 마음을 여는 과정에는 거창하거나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단지 매일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보살펴 주고, 소일거리를 하며 같이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이 주는 안정감도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다. 푸르른 자연과 이따금 들리는 풀벌레, 새소리가 영화의 배경을 완벽하게 채웠다. 여백의 미가 글자 그대로 느껴지는 장소였다.
찰나 같은 여름방학이 지나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코오트는 이별의 순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 집보다 더 정답고 따뜻한 아일린&숀의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일린과 숀은 아무것도 없는 이곳보단 원래 있던 곳이 더 나을 거라며 코오트를 위로했지만 크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돌아간 집은 여전히 엉망이었고, 엄마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기에 바빴으며 자매들과 아빠는 코오트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코오트가 약한 감기에 걸렸다고 하자 ‘전적도 있으면서 조심하셨어야죠’라며 부부의 아픈 구석을 찌르기까지 했다.
씁쓸하게 자리를 뜨는 부부를 보던 코오트는 마지막에 아빠를 부르짖으며 숀에게 달려가 안긴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달려간 끝에 아일린과 숀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일린&숀 부부로부터 코오트가 받은 사랑은 진짜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컸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코오트는 앞으로 어디서 지내게 될까.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일린&숀 부부와 헤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다시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 90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여백이 가득한 이야기를 함께한 관객들은 가득 차 있는 여느 영화만큼이나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오트의 미래에 대한 상상과 코오트가 시간을 보낸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 하루하루 조금씩 사랑과 함께 성장하는 코오트의 이야기가 영화의 막이 내려진 후에도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말없는 소녀>
닫혀 있던 문이 열린 건
코오트(캐서린 클린치)는 어딜 가든 외톨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괴짜라고 취급받으며 코오트가 대화할 상대는 없다. 도박에 술중독인 아버지는 애초에 자식들에게 큰 관심이 없고, 일과 육아에 치인 어머니는 코오트에게까지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새로 태어난 아기로 더 정신이 없어진 이 부모는 코오트를 먼 친척 집에 맡겨버리기로 한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말없는 소녀>는 2023년에 개봉했지만, 재개봉 성원에 힘입어 올해 2025년 다시 극장에 걸렸다. 크게 스토리가 자극적이거나 큰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끌렸을까.
198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한적하면서도 정다운 시골을 표현하는데 '여백'을 사용했다. 코오트를 맡은 아일린(캐리 크롤리)과 숀(앤드류 베넷) 부부는 돈이 많은 갑부도, 코오트에게 자신의 관심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코오트에게 필요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 또한 감독은 뛰어난 미장센이나 음악이 아닌 여백을 두었다.
아일린은 코오트의 긴 머리를 매일 손수 백 번씩 빗겨주고, 매일 따뜻한 음식과 코오트가 할 수 있는 일감을 주고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숀은 무뚝뚝하고 말수는 없어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행동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제 몫의 과자를 양보하고, 코오트가 우체통까지 뛰어갔다 오는 시간을 직접 재주며 그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가시적인 방법으로 알려주었다. 또한 함께 목장을 청소 경주를 할 땐 코오트가 까르르 웃으며 비로소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코오트가 마음을 여는 과정에는 거창하거나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단지 매일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보살펴 주고, 소일거리를 하며 같이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이 주는 안정감도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다. 푸르른 자연과 이따금 들리는 풀벌레, 새소리가 영화의 배경을 완벽하게 채웠다. 여백의 미가 글자 그대로 느껴지는 장소였다.
찰나 같은 여름방학이 지나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코오트는 이별의 순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 집보다 더 정답고 따뜻한 아일린&숀의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일린과 숀은 아무것도 없는 이곳보단 원래 있던 곳이 더 나을 거라며 코오트를 위로했지만 크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돌아간 집은 여전히 엉망이었고, 엄마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기에 바빴으며 자매들과 아빠는 코오트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코오트가 약한 감기에 걸렸다고 하자 ‘전적도 있으면서 조심하셨어야죠’라며 부부의 아픈 구석을 찌르기까지 했다.
씁쓸하게 자리를 뜨는 부부를 보던 코오트는 마지막에 아빠를 부르짖으며 숀에게 달려가 안긴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달려간 끝에 아일린과 숀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일린&숀 부부로부터 코오트가 받은 사랑은 진짜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컸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코오트는 앞으로 어디서 지내게 될까.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일린&숀 부부와 헤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다시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 90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여백이 가득한 이야기를 함께한 관객들은 가득 차 있는 여느 영화만큼이나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오트의 미래에 대한 상상과 코오트가 시간을 보낸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 하루하루 조금씩 사랑과 함께 성장하는 코오트의 이야기가 영화의 막이 내려진 후에도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