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지긋지긋한 폭력의 역사
어느 도시의 이름 모를 서점에서 신간(新刊)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서점 내부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관객들 앞에서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마이크를 건네받는 한 남자. 그는 바로 관객들을 불러 모은 신간의 저자 제프 해리스이다. 본래 보사노바 황금기를 엮은 책을 출간할 계획이던 제프는 자료를 수집하던 중 60년대 발표된 한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에 매료된다. 제프를 사로잡은 연주가의 이름은 ‘테노리오 주니오르(Tenório Júnior)’. 그런데 테노리오는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마이너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나 보다. 테노리오의 활동은 제프가 발굴한 한 장의 음반 말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남긴 음악가를 좀 더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제프의 호기심은 탐사를 위한 추진력으로 뻗어나간다. 그렇게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제프의 육성을 통해 테노리오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찬찬히 조명한다.
제프의 취재 과정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연상케 한다. 두 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진 전설적인 가수 ‘슈가맨’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열성팬 두 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알고 싶다’라는 그들의 욕망에 마음이 동하여 몰입하여 영화를 감상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의 출발은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가 2004년에 우연히 들은 테노리오의 앨범에서 시작된다. 제프처럼 테노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감동한 감독은 그가 3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을 듣고선 약 2년간 테노리오와 관계를 맺었던 1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애정이라는 지지대에서 발현된 호기심이라는 게 이토록 끈질기다는 걸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새삼 깨닫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트루에바 감독은 처음에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을 선회하여 하비에르 마리스칼 감독과 의기투합해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 이후 두 번째 애니메이션 극영화로 테노리오의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테노리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을 그릇으로 애니메이션을 고른 것은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실제 살아 숨 쉬는 사람들과 그들의 기록물이 등장하지 않아 사실감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되는 화면들로부터 예술가의 자유로움이 한껏 묻어 나온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증언자의 회고에 기초한) 테노리오의 연주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테노리오의 피아노 연주를 필두로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재즈클럽의 공연과 황홀경에 빠지듯 도취되는 음반 스튜디오에서의 녹음 현장은 형형색색의 빛깔을 들이는 물감으로 덧칠된 삽화들의 향연이 더해져 생기와 활력을 자아낸다. 테노리오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동료들과의 협연을 즐거워했는지를 증명하는 매개물이 (대부분 흑백으로 인화된) 사진 자료나 대역을 내세운 재연극으로 반복되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지루하고 밋밋한 기운에 사로잡혀 테노리오의 생애에 대한 궁금함이 반감되었을 것 같다. 보사노바가 무엇인지 삼바 재즈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장면들 덕분에 남미 음악의 강렬함과 재즈의 풍부함을 더욱 깊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슈가맨의 기분 좋은 반전과는 달리 테노리오의 실종에는 어두운 시대의 잔혹함만이 남아 있다. 1976년 3월 18일, 아르헨티나 투어 중 테노리오가 사라진 그날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군부 쿠데타에 잠식된 폭력적인 국가의 만행이 쏟아져 나온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되려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며 위협하던 그 시대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진술자들의 얼굴을 공포로 일그러져 간다. 그날에 대한 진술을 종합하여 본 결과, 테노리오는 콘도르 작전에 휘말려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를 장악한 군부 정권들이 연합하여 좌파 인사를 색출하기 위해 자행한 콘토르 작전으로 현재까지 10만여 명이 사망하고 40만여 명이 고문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전도유망한 예술가의 삶 아니, 그저 귀한 한 사람의 생명을 깡그리 짓밟은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하여 분노만이 피어오른다.
테노리오 실종 사건의 전말이 모두 풀리고 무거운 진실 앞에 마음이 가라앉을 무렵, 그제야 서점 안팎에 진열된 제프의 신간 제목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목은 영화의 것과 같은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이다. ‘그들’이 휘두른 무자비한 철퇴에 스러져간 아까운 목숨이 어찌 테노리오 하나뿐이겠는가. 무엇보다 섬뜩한 건 테노리오가 희생된 시대가 우리의 1970~80년대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 그리고 폭력집단의 잔재가 아직까지도 위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글프게도 역사의 변곡점 위에서 형색과 명칭을 달리 한 ‘그들’의 폭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극장에 울려 퍼지는 테노리오의 기려(綺麗)한 피아노 선율에서 이제는 폭력의 연쇄를 끊어내야 한다는 경고가 느껴지는 건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지긋지긋한 폭력의 역사
어느 도시의 이름 모를 서점에서 신간(新刊)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서점 내부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관객들 앞에서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마이크를 건네받는 한 남자. 그는 바로 관객들을 불러 모은 신간의 저자 제프 해리스이다. 본래 보사노바 황금기를 엮은 책을 출간할 계획이던 제프는 자료를 수집하던 중 60년대 발표된 한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에 매료된다. 제프를 사로잡은 연주가의 이름은 ‘테노리오 주니오르(Tenório Júnior)’. 그런데 테노리오는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마이너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나 보다. 테노리오의 활동은 제프가 발굴한 한 장의 음반 말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남긴 음악가를 좀 더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제프의 호기심은 탐사를 위한 추진력으로 뻗어나간다. 그렇게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제프의 육성을 통해 테노리오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찬찬히 조명한다.
제프의 취재 과정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연상케 한다. 두 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진 전설적인 가수 ‘슈가맨’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열성팬 두 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알고 싶다’라는 그들의 욕망에 마음이 동하여 몰입하여 영화를 감상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의 출발은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가 2004년에 우연히 들은 테노리오의 앨범에서 시작된다. 제프처럼 테노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감동한 감독은 그가 3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을 듣고선 약 2년간 테노리오와 관계를 맺었던 1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애정이라는 지지대에서 발현된 호기심이라는 게 이토록 끈질기다는 걸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새삼 깨닫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트루에바 감독은 처음에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을 선회하여 하비에르 마리스칼 감독과 의기투합해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 이후 두 번째 애니메이션 극영화로 테노리오의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테노리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을 그릇으로 애니메이션을 고른 것은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실제 살아 숨 쉬는 사람들과 그들의 기록물이 등장하지 않아 사실감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되는 화면들로부터 예술가의 자유로움이 한껏 묻어 나온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증언자의 회고에 기초한) 테노리오의 연주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테노리오의 피아노 연주를 필두로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재즈클럽의 공연과 황홀경에 빠지듯 도취되는 음반 스튜디오에서의 녹음 현장은 형형색색의 빛깔을 들이는 물감으로 덧칠된 삽화들의 향연이 더해져 생기와 활력을 자아낸다. 테노리오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동료들과의 협연을 즐거워했는지를 증명하는 매개물이 (대부분 흑백으로 인화된) 사진 자료나 대역을 내세운 재연극으로 반복되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지루하고 밋밋한 기운에 사로잡혀 테노리오의 생애에 대한 궁금함이 반감되었을 것 같다. 보사노바가 무엇인지 삼바 재즈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장면들 덕분에 남미 음악의 강렬함과 재즈의 풍부함을 더욱 깊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슈가맨의 기분 좋은 반전과는 달리 테노리오의 실종에는 어두운 시대의 잔혹함만이 남아 있다. 1976년 3월 18일, 아르헨티나 투어 중 테노리오가 사라진 그날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군부 쿠데타에 잠식된 폭력적인 국가의 만행이 쏟아져 나온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되려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며 위협하던 그 시대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진술자들의 얼굴을 공포로 일그러져 간다. 그날에 대한 진술을 종합하여 본 결과, 테노리오는 콘도르 작전에 휘말려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를 장악한 군부 정권들이 연합하여 좌파 인사를 색출하기 위해 자행한 콘토르 작전으로 현재까지 10만여 명이 사망하고 40만여 명이 고문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전도유망한 예술가의 삶 아니, 그저 귀한 한 사람의 생명을 깡그리 짓밟은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하여 분노만이 피어오른다.
테노리오 실종 사건의 전말이 모두 풀리고 무거운 진실 앞에 마음이 가라앉을 무렵, 그제야 서점 안팎에 진열된 제프의 신간 제목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목은 영화의 것과 같은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이다. ‘그들’이 휘두른 무자비한 철퇴에 스러져간 아까운 목숨이 어찌 테노리오 하나뿐이겠는가. 무엇보다 섬뜩한 건 테노리오가 희생된 시대가 우리의 1970~80년대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 그리고 폭력집단의 잔재가 아직까지도 위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글프게도 역사의 변곡점 위에서 형색과 명칭을 달리 한 ‘그들’의 폭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극장에 울려 퍼지는 테노리오의 기려(綺麗)한 피아노 선율에서 이제는 폭력의 연쇄를 끊어내야 한다는 경고가 느껴지는 건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