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시작
헤어짐을 기념한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의 종식, 더 이상 관계가 발전할 수 없는 것을 축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알레(잇사소 아리나)와 알렉스(비토 산스)의 이별식은 조금 다르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어거스트 버진>의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이 여름의 끝자락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속 알레와 알렉스 커플은 본인들의 이별을 기념하고자 이별식을 치르기로 한다. 날짜는 9월 22일, 여름이 끝나는 날이다. 친구들에게도 하나하나 직접 연락을 돌리며 본인들의 이별 소식을 전하는 모습에는 전혀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
괜찮다, 둘이 합의 하에 이별하는 것이고 이 파티는 매우 즐거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서로 짜맞춘 것처럼 똑같은 말을 전하는 장면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 그리고 친구들은 어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이런 일은 늘 끝이 같다" 라며 둘은 재결합할 거라 말을 얹는다. 둘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이별식이 생소하고 이상해 보이는 리액션도 빠지지 않는다.
트루에바 감독은 반복이 정체가 아닌 움직임이라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큰 줄거리란 이별식을 공표하는 커플과 이를 접하는 주변인들의 대화가 끝이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익숙해지고, 종국에는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기묘한 감각이 영화를 보는 이에게까지 전달된다. 특히 쇠렌 키르케고르의 <반복>이 영화 전체에 계속 등장하며 영화의 전신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흥미롭다.
또한 영화는 내용을 한 차례 뒤섞는다. 관객이 처음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은 알렉스가 홀로 다리 위를 걷는 장면, 해당 장면에 갑자기 말소리가 얹어지더니 곧 알레가 이 장면에 대한 편집 피드백을 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곧 알레가 만드는 영화인 것이다. 여기서 내용이 조금 헷갈릴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보면 영화 우리의 삶은 별다른 것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영화를 편집하며 알레는 계속 좌절하고, 의심한다. 본인의 이 방향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화면 속 알렉스 역시 그림 교실에서 작업 중인 그림에 정체기가 온다. 어떻게 하면 그림 속 피사체를 더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캔버스를 뒤집어 마저 작업한다. 평범한 방법이 아닌 관점을 뒤바꾸는 선택을 한 그의 그림은 비로소 다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보는 관점을 아예 다르게 한다, 이 말을 한 번 깨달은 순간 영화 내내 계속되는 "반복"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닌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저 지루하게 똑같은 내용을 복사 붙여 넣는 게 아닌 헤어지기로 결심한 후 둘의 감정 변화, 함께 보낸 시간이 모이니 이야기도, 인물도 조금씩 달라진다.
알레는 알렉스의 연기 영상을 컴퓨터에 정리하다 둘의 십여 년 전의 영상을 발견해 알렉스와 함께 감상한다. 화면 속 둘은 즐겁게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눴다. 영상에서 "왜 키스하지 않아?"라고 던진 알레의 물음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다시 영상 밖, 한참의 시간이 흐른 둘은 영상 속 사이좋던 자신들처럼 다시 키스한다. 몸을 섞고 함께 쇠렌 키르케고르의 <반복>을 읽는다.
"반복의 사랑은 순간의 행복한 안정감이 있다"는 <반복>의 구절처럼, 둘은 다시 한 번 사랑을 한다. 그들의 이별식 당일, 그 이별식은 결국 이별이 주제가 아니게 됐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작이 아니게 되었는가? 그것 역시 아니다. 서로의 존재와 자신의 감정을 "반복"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다. 엔딩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처럼, 여름의 끝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 사이로 비치는 둘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시작
헤어짐을 기념한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의 종식, 더 이상 관계가 발전할 수 없는 것을 축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알레(잇사소 아리나)와 알렉스(비토 산스)의 이별식은 조금 다르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어거스트 버진>의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이 여름의 끝자락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속 알레와 알렉스 커플은 본인들의 이별을 기념하고자 이별식을 치르기로 한다. 날짜는 9월 22일, 여름이 끝나는 날이다. 친구들에게도 하나하나 직접 연락을 돌리며 본인들의 이별 소식을 전하는 모습에는 전혀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
괜찮다, 둘이 합의 하에 이별하는 것이고 이 파티는 매우 즐거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서로 짜맞춘 것처럼 똑같은 말을 전하는 장면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 그리고 친구들은 어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이런 일은 늘 끝이 같다" 라며 둘은 재결합할 거라 말을 얹는다. 둘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이별식이 생소하고 이상해 보이는 리액션도 빠지지 않는다.
트루에바 감독은 반복이 정체가 아닌 움직임이라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큰 줄거리란 이별식을 공표하는 커플과 이를 접하는 주변인들의 대화가 끝이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익숙해지고, 종국에는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기묘한 감각이 영화를 보는 이에게까지 전달된다. 특히 쇠렌 키르케고르의 <반복>이 영화 전체에 계속 등장하며 영화의 전신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흥미롭다.
또한 영화는 내용을 한 차례 뒤섞는다. 관객이 처음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은 알렉스가 홀로 다리 위를 걷는 장면, 해당 장면에 갑자기 말소리가 얹어지더니 곧 알레가 이 장면에 대한 편집 피드백을 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곧 알레가 만드는 영화인 것이다. 여기서 내용이 조금 헷갈릴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보면 영화 우리의 삶은 별다른 것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영화를 편집하며 알레는 계속 좌절하고, 의심한다. 본인의 이 방향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화면 속 알렉스 역시 그림 교실에서 작업 중인 그림에 정체기가 온다. 어떻게 하면 그림 속 피사체를 더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캔버스를 뒤집어 마저 작업한다. 평범한 방법이 아닌 관점을 뒤바꾸는 선택을 한 그의 그림은 비로소 다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보는 관점을 아예 다르게 한다, 이 말을 한 번 깨달은 순간 영화 내내 계속되는 "반복"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닌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저 지루하게 똑같은 내용을 복사 붙여 넣는 게 아닌 헤어지기로 결심한 후 둘의 감정 변화, 함께 보낸 시간이 모이니 이야기도, 인물도 조금씩 달라진다.
알레는 알렉스의 연기 영상을 컴퓨터에 정리하다 둘의 십여 년 전의 영상을 발견해 알렉스와 함께 감상한다. 화면 속 둘은 즐겁게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눴다. 영상에서 "왜 키스하지 않아?"라고 던진 알레의 물음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다시 영상 밖, 한참의 시간이 흐른 둘은 영상 속 사이좋던 자신들처럼 다시 키스한다. 몸을 섞고 함께 쇠렌 키르케고르의 <반복>을 읽는다.
"반복의 사랑은 순간의 행복한 안정감이 있다"는 <반복>의 구절처럼, 둘은 다시 한 번 사랑을 한다. 그들의 이별식 당일, 그 이별식은 결국 이별이 주제가 아니게 됐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작이 아니게 되었는가? 그것 역시 아니다. 서로의 존재와 자신의 감정을 "반복"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다. 엔딩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처럼, 여름의 끝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 사이로 비치는 둘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