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
끝내 그가 품은 거대한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독한 악연으로 얽힌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구원이 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는 어느샌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복수로 시작된 마음이 연민으로 변화하는 동안 원수지간에 오고 가는 복잡한 감정들이 선사하는 박진감은 분명 관객에게 일정 부분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영화 <파란>에서 태화(이수혁)와 미지(하윤경)의 만남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도 두 사람이 원한으로 얽혀있다는 설정이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숨 막히도록 힘겹고 버거운 관계를 지켜보면서 이상하리만큼 두 사람의 서사에 그다지 큰 자극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동안 필자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 지겨울 만큼 노출당해 와서 감각이 둔감해진 탓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파란>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들의 행동에 아쉬움이 많았기에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폐섬유증을 앓는 자신을 위해 폐 한쪽을 내어준 아버지가 이식 수술 중에 사망하였고, 그런 아버지가 수술 전에 뺑소니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을 유기하였다는 사실 앞에 절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범죄자의 아들이 되었고, 범죄자의 목숨을 이어받아 살아남았다는 현실을 태화는 분노로 이겨내고 있는 모양이다. 이식받은 폐가 망가지든 말든 태화는 줄담배를 펴 대며 처방전을 태워버린다. 아비가 남기고 간 폐가, 그 폐를 남겨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태화의 일상을 어그러트린다. 태화가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 중 방아쇠의 녹슨 자국을 닦아내려는 태화를 비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얼룩을 지우려 집요하게 수건을 문질러대는 태화에게서 그가 품은 화가 절실히 느껴진다. 그런데 태화의 분노는 폭발적인 여운을 남기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내내 화를 숨기지 않는 태화에게 익숙해져서일까. 폭행과 비행이 되어 주야장천 고개를 드미는 태화의 분노는 높낮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화내는 사람을 보며 지겨움을 느끼는 게 참 미안하지만, 태화의 화가 끝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지 못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태화의 과도한 분노 때문은 아닐까 싶다.
무너진 태화의 일상만큼 미지의 삶도 고달프다. 아비의 사망과 어미의 행방불명으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미지는 가출팸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절도를 일삼는다. 노련한 포교 활동가들의 꾐을 되받아쳐 금은방에서 목걸이를 훔쳐나가는 미지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과 동시에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어린 소녀가 너무도 일찍 책임지게 된 인생의 무게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힐 따름이다. 눈썹 칼로 자기 허벅지를 톡톡 찔러대던 미지의 피곤함에 찌든 얼굴은 태화를 마주하고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생기가 감돈다. 필자는 다짜고짜 태화를 찾아가서는 같이 엄마를 찾으러 가자는 미지를 보며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미지는 이 영화 속 인물 중에서 가장 큰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진실을 알아야 할 당사자(태화)와 만나게 되었을 때 미지는 비밀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어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태화와 미지에게 고통을 안긴 비밀이 지닌 무게에 비해 진실(뺑소니 사고의 전모)이 밝혀지는 과정은 너무도 싱겁게 전개된다.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미지의 엄마가 미지의 아빠를 죽인 진범이고, 사고로 위장하려 도로에 눕혀둔 시신을 태화의 아버지가 몰고 온 차가 밟은 순간,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라는 중요한 반전을 영화는 태화가 모는 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은 미지의 입을 빌려 실토한다. 진실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태화의 모습이나 비밀이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미지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채 사건의 진상은 너무도 가볍게 공개되어 버린다. 미지의 입을 통해 진실을 전한 창작진 나름의 의도가 있겠지만, 창작진의 결정으로 인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태화가 아쉬울 따름이다. 진실을 파헤쳐 본 적도 없이 스스로 고통 속에 파묻히고는 성만 내는 태화에게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지 또한 불안한 비밀에 싸인 매력적인 인물에서 한순간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 같아 속상함이 밀려온다.
태화와 미지 앞에 몰려온 파란(波瀾)을 딛고 두 사람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존재(破卵)처럼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었길 바라건만, 끝끝내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분노와 그녀의 고백이 마음에 걸리는 건 어찌할 방도가 없다.
-관객리뷰단 박유나
<파란>
끝내 그가 품은 거대한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독한 악연으로 얽힌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구원이 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는 어느샌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복수로 시작된 마음이 연민으로 변화하는 동안 원수지간에 오고 가는 복잡한 감정들이 선사하는 박진감은 분명 관객에게 일정 부분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영화 <파란>에서 태화(이수혁)와 미지(하윤경)의 만남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도 두 사람이 원한으로 얽혀있다는 설정이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숨 막히도록 힘겹고 버거운 관계를 지켜보면서 이상하리만큼 두 사람의 서사에 그다지 큰 자극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동안 필자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 지겨울 만큼 노출당해 와서 감각이 둔감해진 탓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파란>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들의 행동에 아쉬움이 많았기에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폐섬유증을 앓는 자신을 위해 폐 한쪽을 내어준 아버지가 이식 수술 중에 사망하였고, 그런 아버지가 수술 전에 뺑소니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을 유기하였다는 사실 앞에 절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범죄자의 아들이 되었고, 범죄자의 목숨을 이어받아 살아남았다는 현실을 태화는 분노로 이겨내고 있는 모양이다. 이식받은 폐가 망가지든 말든 태화는 줄담배를 펴 대며 처방전을 태워버린다. 아비가 남기고 간 폐가, 그 폐를 남겨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태화의 일상을 어그러트린다. 태화가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 중 방아쇠의 녹슨 자국을 닦아내려는 태화를 비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얼룩을 지우려 집요하게 수건을 문질러대는 태화에게서 그가 품은 화가 절실히 느껴진다. 그런데 태화의 분노는 폭발적인 여운을 남기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내내 화를 숨기지 않는 태화에게 익숙해져서일까. 폭행과 비행이 되어 주야장천 고개를 드미는 태화의 분노는 높낮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화내는 사람을 보며 지겨움을 느끼는 게 참 미안하지만, 태화의 화가 끝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지 못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태화의 과도한 분노 때문은 아닐까 싶다.
무너진 태화의 일상만큼 미지의 삶도 고달프다. 아비의 사망과 어미의 행방불명으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미지는 가출팸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절도를 일삼는다. 노련한 포교 활동가들의 꾐을 되받아쳐 금은방에서 목걸이를 훔쳐나가는 미지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과 동시에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어린 소녀가 너무도 일찍 책임지게 된 인생의 무게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힐 따름이다. 눈썹 칼로 자기 허벅지를 톡톡 찔러대던 미지의 피곤함에 찌든 얼굴은 태화를 마주하고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생기가 감돈다. 필자는 다짜고짜 태화를 찾아가서는 같이 엄마를 찾으러 가자는 미지를 보며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미지는 이 영화 속 인물 중에서 가장 큰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진실을 알아야 할 당사자(태화)와 만나게 되었을 때 미지는 비밀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어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태화와 미지에게 고통을 안긴 비밀이 지닌 무게에 비해 진실(뺑소니 사고의 전모)이 밝혀지는 과정은 너무도 싱겁게 전개된다.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미지의 엄마가 미지의 아빠를 죽인 진범이고, 사고로 위장하려 도로에 눕혀둔 시신을 태화의 아버지가 몰고 온 차가 밟은 순간,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라는 중요한 반전을 영화는 태화가 모는 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은 미지의 입을 빌려 실토한다. 진실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태화의 모습이나 비밀이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미지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채 사건의 진상은 너무도 가볍게 공개되어 버린다. 미지의 입을 통해 진실을 전한 창작진 나름의 의도가 있겠지만, 창작진의 결정으로 인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태화가 아쉬울 따름이다. 진실을 파헤쳐 본 적도 없이 스스로 고통 속에 파묻히고는 성만 내는 태화에게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지 또한 불안한 비밀에 싸인 매력적인 인물에서 한순간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 같아 속상함이 밀려온다.
태화와 미지 앞에 몰려온 파란(波瀾)을 딛고 두 사람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존재(破卵)처럼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었길 바라건만, 끝끝내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분노와 그녀의 고백이 마음에 걸리는 건 어찌할 방도가 없다.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