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소리들>
나한테 말 걸지 마라. 나한테 말 걸지 마라.
제주 4.3 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당하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이다. 그 무차별적이고 참혹한 학살 사건은 세월이 흐르고 이제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지만 당연하게도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후유장애자로 분류된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이 영화는 최초로 여성을 통해 조명해 본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주 표선면. 어두운 제주의 밤바다는 새벽을 기다린다. 어둠이 걷히고 영화는 제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제사는 한 사람을 위한 제사가 아니다. 다 함께 총살당한 날, 그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제사상이 차려진다. 그리고 그 제사상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이다. 그날 이후 살아 돌아온 여성의 존재,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 여성. 그들의 깊은 눈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인터뷰어의 궁금증은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여성들은 그날 잡혀가서 수용소에 있다가 죽었다. 그런데 왜 젊은 여자들만 죽었을까? 그 이유는 당시 그 잔인했던 학살의 주범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없던 일로 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 자신들이 범한 여성들을 죽이는 방법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제주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월등히 많이 남았다. 그 이후, 집안일로 점철되었던 여성의 삶은 남성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었다. 남성이 사라진 섬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자리를 억지로 메꿔야 했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담을 쌓으라면 쌓았고, 땅을 일구라면 일구었다. 그들의 수고로움은 누구에게 기억되고 있는가.
1948년 당시 14세였던 은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죽은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평생 마음에 담으며 살았다. 수십 년의 침묵을 깨고 흘러나온 그녀의 속마음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남자들을 보면 너무 무서워. 침묵 속에 숨겨진 그녀의 과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인권 유린의 끔찍한 경험뿐이었다. 과거의 그 사건은 그녀의 정신과 영혼까지 빼앗아 버렸다. 그녀를 평생 아픔에 신음하게 했다. 그녀는 참척의 고통에도 그 눈물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척박한 삶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고통은 그녀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현재까지 그녀를 아프게 한다. 그녀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70년도 더 넘은 과거에 유린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한 노부부는 그런 얘기는 들었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는 얘기이자 주제라고 고백한다. 할머니는 그 얘기만 나오면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서북청년단을 피하기 위해 조혼을 했다. 당시 부모들은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서둘러 조혼을 시켰고, 그 결과로 지금까지 몸도 마음도 아프다. 지금,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의 영속성과 지속성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해소되지 못한 개인적인 고통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사회적인 고통 때문에 더 가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은 사회로부터 한 번 더 깊은 골로 사장되어 버린다.
영화에서 인터뷰어가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는 점은 여성이라 이런 일을 당했다고 신고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은폐된 진실, 사라진 진실이다. 또한, 그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적인 발언은, 서북청년과 경찰이 가장 그리운 것이 여자라. 강간을 당해도 말을 못 해. 배고픈 개를 야산에 풀어놓은 격이었다. 당시 경찰들이 달빛에 비춰 예쁜 여자들만 데려갔다는 증언이다.
이 영화는 제주 4.3 사건의 여성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던 침묵이라는 삶의 방식, 삶의 태도에 대해 조명한다. 국가가 인정하는 피해자이자 희생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들. 이 여성들의 고통은 언제가 되어야 오롯이 드러날 수 있을까? 위령비에조차 새겨지지 못한 그들의 아픔은 언제가 되어야 온전히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을까?
관객이 직접 상영할 극장을 모은 이 작품의 향방을 볼 때, 그 시기는 좀 더 앞당겨질 거라 확신한다.
진실로, 그녀들의 아픔은 제주의 바다와 돌과 파도에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목소리들>
나한테 말 걸지 마라. 나한테 말 걸지 마라.
제주 4.3 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당하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이다. 그 무차별적이고 참혹한 학살 사건은 세월이 흐르고 이제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지만 당연하게도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후유장애자로 분류된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이 영화는 최초로 여성을 통해 조명해 본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주 표선면. 어두운 제주의 밤바다는 새벽을 기다린다. 어둠이 걷히고 영화는 제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제사는 한 사람을 위한 제사가 아니다. 다 함께 총살당한 날, 그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제사상이 차려진다. 그리고 그 제사상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이다. 그날 이후 살아 돌아온 여성의 존재,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 여성. 그들의 깊은 눈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인터뷰어의 궁금증은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여성들은 그날 잡혀가서 수용소에 있다가 죽었다. 그런데 왜 젊은 여자들만 죽었을까? 그 이유는 당시 그 잔인했던 학살의 주범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없던 일로 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 자신들이 범한 여성들을 죽이는 방법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제주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월등히 많이 남았다. 그 이후, 집안일로 점철되었던 여성의 삶은 남성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었다. 남성이 사라진 섬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자리를 억지로 메꿔야 했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담을 쌓으라면 쌓았고, 땅을 일구라면 일구었다. 그들의 수고로움은 누구에게 기억되고 있는가.
1948년 당시 14세였던 은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죽은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평생 마음에 담으며 살았다. 수십 년의 침묵을 깨고 흘러나온 그녀의 속마음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남자들을 보면 너무 무서워. 침묵 속에 숨겨진 그녀의 과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인권 유린의 끔찍한 경험뿐이었다. 과거의 그 사건은 그녀의 정신과 영혼까지 빼앗아 버렸다. 그녀를 평생 아픔에 신음하게 했다. 그녀는 참척의 고통에도 그 눈물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척박한 삶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고통은 그녀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현재까지 그녀를 아프게 한다. 그녀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70년도 더 넘은 과거에 유린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한 노부부는 그런 얘기는 들었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는 얘기이자 주제라고 고백한다. 할머니는 그 얘기만 나오면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서북청년단을 피하기 위해 조혼을 했다. 당시 부모들은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서둘러 조혼을 시켰고, 그 결과로 지금까지 몸도 마음도 아프다. 지금,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의 영속성과 지속성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해소되지 못한 개인적인 고통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사회적인 고통 때문에 더 가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은 사회로부터 한 번 더 깊은 골로 사장되어 버린다.
영화에서 인터뷰어가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는 점은 여성이라 이런 일을 당했다고 신고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은폐된 진실, 사라진 진실이다. 또한, 그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적인 발언은, 서북청년과 경찰이 가장 그리운 것이 여자라. 강간을 당해도 말을 못 해. 배고픈 개를 야산에 풀어놓은 격이었다. 당시 경찰들이 달빛에 비춰 예쁜 여자들만 데려갔다는 증언이다.
이 영화는 제주 4.3 사건의 여성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던 침묵이라는 삶의 방식, 삶의 태도에 대해 조명한다. 국가가 인정하는 피해자이자 희생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들. 이 여성들의 고통은 언제가 되어야 오롯이 드러날 수 있을까? 위령비에조차 새겨지지 못한 그들의 아픔은 언제가 되어야 온전히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을까?
관객이 직접 상영할 극장을 모은 이 작품의 향방을 볼 때, 그 시기는 좀 더 앞당겨질 거라 확신한다.
진실로, 그녀들의 아픔은 제주의 바다와 돌과 파도에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