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끝, 새로운 시작> 리뷰 : The End We Start From? We stay together.

<끝, 새로운 시작>

The End We Start From? We stay together.


 임신을 한 여성은 가장 희망과 근접한 상태이다. 니체가 한 말이다. 이 영화는 임신을 한 여성이 남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된다.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누워 자신의 뱃속 생명에게 미리 인사를 건네는 예비 엄마(조디 코머)의 모습 뒤로는 계속 비가 내린다. 하지만 그 비의 사운드는 축복과 축하의 사운드가 아닌, 긴장과 공포, 다가올 시련에 대한 복선의 사운드로 느껴진다. 영국을 강타한 폭풍우로 물난리를 겪게 되고, 이에 따라 일상의 공간들은 물에 잠기고, 그 순간 새 생명이 탄생한다.

 

희망과 가장 근접한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홍수라는 재앙은 우리가 희망을 추구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쳤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재앙의 원인도 목적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재앙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감정만을 깊게 다룬다. 또한 영화 속 환경은 시각적으로 종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도시 전체는 잠겼고, 사람들은 모두 생존을 첫 번째 목적으로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출산 이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극 중 설정은 이제 갓 출산을 한 젊은 부부에게는 하나의 핵심적인 모험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영국을 강타한 대재앙인 홍수로 은유된 이 모험은, 작게는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로서의 모험이고, 크게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목숨을 건 모험처럼 보인다. 새 생명을 품에 안은 부모로서 이 거대한 재앙을 그 자체로서 이 부부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질문한다. 집은 새로 지으면 그만, 이라고 대답하는 아기의 엄마는 점점 더 생명에 대한 강한 끈기와 집착을 가지게 된다.

 

 거대한 폭풍우, 물난리, 홍수의 특징은 동일성을 없앤다는 것이다. 삶에서 일상적으로 누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모두 동일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의 삶은 자연재해라는 재앙 앞에 고유한 각자의 삶의 색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이때, 재앙 중에 태어난 새 생명인 아기는 실존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위치를 점한다. 일반적인 어른들은 재앙 이전의 삶을 경험적으로 소유하고 있지만, 재앙 중에 태어난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재해 상황에 놓여 있었으므로 이 상황이 디폴트 값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생명의 영원성과 유일성을 드러내고, 동일성의 지옥에 맞선 유일한 존재로서 홍수 중에 태어난 아기라는 설명을 해준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AB(베네딕트 컴버배치 분, 그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다.)는 갓난아기를 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칠대로 지친 엄마에게 심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선사한다. 그는 탈출을 제때 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탓하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핵심적인 대사는 바로 “난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다.


 각자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며 아픔을 간직한 채 잠시동안 춤을 추며 즐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춤을 추고 그 뒤에는 여전히 별이 떠 있다. AB(베네틱드 컴버배치)의 고향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들은 이후 주인공 여성(조디 코머)은 자신도 집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인공 여성(조디 코머)은 처음 남편을 만났던 아름다운 기억이 현재의 아픔과 상실을 더 뚜렷하게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아파한다. 바로 지금, 남편의 부재는 끊임없이 과거의 아름다웠던 첫 기억을 끌어낸다. 과거의 기억은 아름다울수록 현재의 아픔은 점점 고통스럽게 묘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더 간절하고 끈질기게 희망을 찾고 집으로 되돌아가려는 선택을 고수한다. 당신은 허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다른 사람의 일갈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끈질기게 희망을 찾아 전진한다.

 

 이제 정말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려는 여정에 앞서, 그녀(조디 코머)는 차가운 물 속에 알몸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본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허상이 아님을 찾기 위해 찬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내가 소유했던 아름다웠던 과거는, 그 아름다움이 허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그녀를 살게 만든다.

 

 그녀와 함께 했던 극 중 다른 사람들은 아직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왜 떠났을까? 그녀는 죄책감에 울었던 것이 아닌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 앞에 너무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나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데 대체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결국 일상으로 돌아온다. 집 그리고 일상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최후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영화는 소설의 원작을 가지고 있다. 원작의 제목은 대표적인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T.S. 엘리엇의 장시에서 가져왔다. 이 제목은 곧 질문과 답이 함께 제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시작하는 끝(The End We Start From)

"시작이란 곧 끝이며 끝이란 새로운 시작이다. 끝에서 우리는 처음 시작했다."

-T.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

“What we call the beginning is often the end. And to make an end is to make a beginning. The end is where we start from.”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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