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얼 페인>
내가 모르는 고통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에란 컬킨)는 사촌지간이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조우했다. 데이비드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동안 벤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의 낯을 가리는 듯한 데이비드와 달리 벤지는 바로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데이비드를 대한다. 여기까지 보면 MBTI E와 I의 좌충우돌 여행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에 도착해서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영화가 단순한 여행기에서 좀 더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홀로코스트 투어다. 대부분의 러닝 타임을 실제 유대인들이 겪은 참극과 고통이 남은 장소를 돌아보는 데 쓴다. 그렇다고 마냥 암울하고 어둡지도 않다. 영화는 흔히 생각하는 경건히 추모하거나 그들의 아픔을 같이 슬퍼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그냥, 다른 투어 고객들과 함께 그 장소를 바라보고,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리얼 페인>은 무엇이 진짜 고통인지에 관해 묻는다.
벤지의 말투는 직설적이고 무례하다.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강하게 어필하고, 그로 인해 투어 일행들은 벤지의 행동으로 여러 번 당혹스러워했다. 반면 데이비드는 소극적이고 세심하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일행들 사이에 쉽게 스며든 벤지와 달리 혼자 있길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편도 아니었다. 투어 내내 벤지의 언행을 대신 사과하고 다니며 감정적인 벤지의 행동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연락 없이 숙소에 들어오지 않는 벤지를 걱정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고, 마약을 하자는 등 벤지의 불편한 부탁에 곤란해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봤을 때 벤지가 느낀 고통보단 데이비드의 고통에 더 공감이 간다. 눈에 보이는 데이비드의 불편함과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그 원인인 벤지에게 관객들 역시 불편한 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벤지의 행동이 이유 없는 억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벤지는 여행 내내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감하고 싶다며 여러 차례 언급했고, 가이드에게 이 투어엔 경험이 부족하다고 피드백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겪었던 일들을 느끼고 이해하며 그가 살았던 곳을 직접 보기 위해 왔다고.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 만찬 때 데이비드는 벤지가 자살 시도를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전부 표출하고, 솔직하게 표현해 온 벤지지만 우리는 그의 고통을 전혀 알 수 없다. 영화는 벤지와 데이비드의 고통을 동시에 보여줬지만, 벤지의 속사정을 알려주진 않았다. 데이비드와 재회하기 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그 죽음이 벤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그저 짐작밖에 할 수 없다.
데이비드는 벤지가 죽을 만큼 밉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부럽다고 한다. 같이 있으면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방을 환하게 만드는 불빛과 같은 벤지의 매력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벤지는 이런 데이비드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영화 전반부 동안 계속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비치던 벤지는 정작 은밀한 본인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는 영화 내내 인물들이 다닌 홀로코스트 투어가 연상케 한다.
인물들을 포함해 관객들은 홀로코스트의 흔적이 묻어 있는 유적들을 살펴봤지만, 그들의 고통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벤지와 데이비드가 할머니가 살았던 집에 가서 가족이 시작된 곳이란 흔적을 남기기 위해 돌을 올려놓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이다. 그러나 그곳의 주민들은 이 전통을 알아도 그 의미를 전부 이해할 수 없고, 때문에 그 집에 사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돌을 치워달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벤지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더라도 우리는 그의 “진짜 고통”을 모른다. 그런 우리가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데이비드는 벤지와의 여행의 마지막에서 본인의 뉴욕 집으로 벤지를 초대하지만 벤지는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첫 장면과 똑같이 공항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끝이 난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할 때와 달리 지금은 벤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공동체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 관객리뷰단 서수민
<리얼 페인>
내가 모르는 고통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에란 컬킨)는 사촌지간이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조우했다. 데이비드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동안 벤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의 낯을 가리는 듯한 데이비드와 달리 벤지는 바로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데이비드를 대한다. 여기까지 보면 MBTI E와 I의 좌충우돌 여행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에 도착해서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영화가 단순한 여행기에서 좀 더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홀로코스트 투어다. 대부분의 러닝 타임을 실제 유대인들이 겪은 참극과 고통이 남은 장소를 돌아보는 데 쓴다. 그렇다고 마냥 암울하고 어둡지도 않다. 영화는 흔히 생각하는 경건히 추모하거나 그들의 아픔을 같이 슬퍼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그냥, 다른 투어 고객들과 함께 그 장소를 바라보고,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리얼 페인>은 무엇이 진짜 고통인지에 관해 묻는다.
벤지의 말투는 직설적이고 무례하다.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강하게 어필하고, 그로 인해 투어 일행들은 벤지의 행동으로 여러 번 당혹스러워했다. 반면 데이비드는 소극적이고 세심하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일행들 사이에 쉽게 스며든 벤지와 달리 혼자 있길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편도 아니었다. 투어 내내 벤지의 언행을 대신 사과하고 다니며 감정적인 벤지의 행동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연락 없이 숙소에 들어오지 않는 벤지를 걱정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고, 마약을 하자는 등 벤지의 불편한 부탁에 곤란해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봤을 때 벤지가 느낀 고통보단 데이비드의 고통에 더 공감이 간다. 눈에 보이는 데이비드의 불편함과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그 원인인 벤지에게 관객들 역시 불편한 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벤지의 행동이 이유 없는 억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벤지는 여행 내내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감하고 싶다며 여러 차례 언급했고, 가이드에게 이 투어엔 경험이 부족하다고 피드백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겪었던 일들을 느끼고 이해하며 그가 살았던 곳을 직접 보기 위해 왔다고.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 만찬 때 데이비드는 벤지가 자살 시도를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전부 표출하고, 솔직하게 표현해 온 벤지지만 우리는 그의 고통을 전혀 알 수 없다. 영화는 벤지와 데이비드의 고통을 동시에 보여줬지만, 벤지의 속사정을 알려주진 않았다. 데이비드와 재회하기 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그 죽음이 벤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그저 짐작밖에 할 수 없다.
데이비드는 벤지가 죽을 만큼 밉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부럽다고 한다. 같이 있으면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방을 환하게 만드는 불빛과 같은 벤지의 매력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벤지는 이런 데이비드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영화 전반부 동안 계속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비치던 벤지는 정작 은밀한 본인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는 영화 내내 인물들이 다닌 홀로코스트 투어가 연상케 한다.
인물들을 포함해 관객들은 홀로코스트의 흔적이 묻어 있는 유적들을 살펴봤지만, 그들의 고통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벤지와 데이비드가 할머니가 살았던 집에 가서 가족이 시작된 곳이란 흔적을 남기기 위해 돌을 올려놓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이다. 그러나 그곳의 주민들은 이 전통을 알아도 그 의미를 전부 이해할 수 없고, 때문에 그 집에 사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돌을 치워달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벤지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더라도 우리는 그의 “진짜 고통”을 모른다. 그런 우리가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데이비드는 벤지와의 여행의 마지막에서 본인의 뉴욕 집으로 벤지를 초대하지만 벤지는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첫 장면과 똑같이 공항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끝이 난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할 때와 달리 지금은 벤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공동체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