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클라베>
확신이라는 이름의 악마
콘클라베(conclave). ‘열쇠로 잠그는 방’이라는 라틴어로 천주교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 선거와 그 장소를 의미한다. 콘클라베는 교황의 서거 혹은 사임 후 대략 3주 이내에 개최하는데, 이때 외부와의 접촉은 일절 차단된 채 3분의 2의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성스럽고 경건한 이 종교의식을 지켜보는 가운데 인간의 나약(懦弱)하고 추악(醜惡)한 본성을 마주하게 될 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본래 인간이라는 종족은 어느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불화와 대립을 일으켜왔다. 상반된 이념 속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는 맞고, 저들은 틀렸다’라는 융통성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다툼에 불을 지펴온 인간. 그들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전쟁과 살육도 불사한다. 필자는 인간의 본질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상하고 순결한 성품을 지닌 성직자들이라면 평범한 인간들이 조장하는 분란 따위에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콘클라베>는 필자가 외면하고 있었던 (성직자 또한 지니고 있을) 인간의 본성을 무기 삼아 필자의 희망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3일간의 콘클라베 동안 펼쳐지는 정쟁(政爭)은 모략과 음모가 판치는 일반 사회의 선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유력한 교황 후보를 둘러싸고 형성된 무리는 ‘신의 뜻’과 ‘교회의 안위’를 내세워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한 표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선거 유세에 열을 올린다.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라면 상대 진영의 약점을 공격하고 치부를 들춰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투표가 진행될수록 추기경들은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는데 진영 간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화와 첨예한 의견 충돌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과열되는 선거로 숨이 막히도록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들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추기경단 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이다. 영화는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로렌스의 시선에서 ‘누가 차기 교황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의제를 풀어나간다. 시스티나 경당에 모인 추기경들이 선거 승리와 권력 쟁취에 눈이 멀어 콘클라베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을 때, 로렌스만이 가톨릭 교회의 수장을 세우는 의미에 대해 고민을 이어 나간다.
콘클라베 첫째 날의 로렌스의 강론은 영화가 바라는 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교황의 자질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로렌스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복종하여라’라는 사도 바울이 남긴 말을 시작으로 ‘다양성의 가치’와 ‘확신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라 강변하는 로렌스를 보며 그가 교회의 분열과 부패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로렌스의 거침없는 언행만큼 적합한 교황 후보를 가려내기 위한 그의 행동도 과감한 구석이 있다. 유력한 후보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가 30년 전 성추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총괄 수녀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와 대립하는 장면부터 트랑블레(존 리스고)의 부정을 폭로하기 위해 식당의 추기경들 자리마다 조사 보고서를 배부하는 모습까지 로렌스의 행동에서 용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트랑블레의 부정을 조사하려 봉랍을 깨고 교황의 방에 들어서는 로렌스의 대범한 행동을 지켜보며 첩보물에서나 맛볼 수 있는 긴박함을 경험하게 된다.
시류가 점차 로렌스를 차기 교회의 대표로 내세우려고 할 때, 영화는 인간 로렌스의 불안을 조명한다. 기도에 대한 어려움이 생긴 로렌스는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랐으나, 선대 교황의 지시를 받아 콘클라베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은 상태이다. 홀로 남은 숙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관리자’의 무게에 불안해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로렌스의 모습은 공식 석상에서 보인 그의 기품과는 완연히 다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기에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사실 로렌스도 앞선 투표에서 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추기경들과 함께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강력히 추구하는 초(超) 보수주의의 수장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의 교황 선출을 제제하기 위해 자신의 표를 벨리니(스탠리 투치)에게 행사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교황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기꺼이 선거 국면에 균열을 낸 로렌스지만, 한편으로 관용과 화합을 주장한 강론이 무색하게 끝끝내 진영의 논리에 벗어나지 못한 그를 보며 자로 잰 듯 가를 수 없는 복합적인 인간의 한 면모를 깨닫는다.
콘클라베 셋째 날에 행해진 여섯 번째 투표에서 로렌스가 자신의 이름을 기표하고 투표함에 용지를 넣으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천장 벽이 무너지며 추기경들을 덮친다. 몸을 추스르고 사태를 파악한 로렌스는 대강당에 피신한 추기경들 앞에서 앞선 소란이 이슬람 세력의 테러로 인해 벌어진 사태임을 보고한다. 이에 테데스코(카를로스 디에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짐승들과 싸울 지도자’라며 극단적인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자유주의 진영과 전통주의 진영에서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뒷줄에 앉아 있던 베니테스가 조용히 일어나 입을 연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이다. 지금 당장 증오에 굴복하여 편 가르기를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과 남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연설에 그 공간을 채운 모든 추기경들이 감화한 듯 보인다. 특히, 앞줄에서 베니테스를 올려다보는 로렌스의 얼굴에서 비로소 예수를 찾은 세례 요한이 느꼈을지도 모를 감격과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격렬한 암투 끝에 논외의 인물 베니테스가 차기 교황으로 추대되며 콘클라베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콘클라베 직전 합류한 무명의 추기경 베니테스의 의료기록이 로렌스의 평안에 찬물을 끼얹는다. 알고 보니, 베니테스는 인터섹스(intersex, 간성(間性), 생식기난 성호르몬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였던 것. 곧 가톨릭의 주교에 오를 자가 신의 완벽한 피조물인 인간의 예외에 속해 있다는 걸 알게 된 로렌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지만, 그의 앞에 앉아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베니타스는 한없이 차분하고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자신은 ‘이 세상 속 확신들 사이에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베니타스의 얼굴에서 그가 선택한 교황 이름 인노첸시우스(순수하고 정결함을 의미)가 겹쳐 보이는 듯하다. 아데예미와 트랑블레 때와는 달리 로렌스는 베니타스의 비밀에 대해서는 묵과할 모양이다. 환호성을 뒤로한 채 홀로 정원에 남아 후련한 듯 아쉬운 듯 미소를 짓는 로렌스. 결국, 인간의 삶은 (확신이라는 이름의 악마에 휘둘리지 않고) 무수한 의심 속에서 내린 자신의 선택이 최선의 결정이기를 바라는 과정의 연속임을 그의 표정을 보며 또 한 번 깨달아보기로 한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콘클라베>
확신이라는 이름의 악마
콘클라베(conclave). ‘열쇠로 잠그는 방’이라는 라틴어로 천주교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 선거와 그 장소를 의미한다. 콘클라베는 교황의 서거 혹은 사임 후 대략 3주 이내에 개최하는데, 이때 외부와의 접촉은 일절 차단된 채 3분의 2의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성스럽고 경건한 이 종교의식을 지켜보는 가운데 인간의 나약(懦弱)하고 추악(醜惡)한 본성을 마주하게 될 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본래 인간이라는 종족은 어느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불화와 대립을 일으켜왔다. 상반된 이념 속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는 맞고, 저들은 틀렸다’라는 융통성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다툼에 불을 지펴온 인간. 그들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전쟁과 살육도 불사한다. 필자는 인간의 본질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상하고 순결한 성품을 지닌 성직자들이라면 평범한 인간들이 조장하는 분란 따위에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콘클라베>는 필자가 외면하고 있었던 (성직자 또한 지니고 있을) 인간의 본성을 무기 삼아 필자의 희망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3일간의 콘클라베 동안 펼쳐지는 정쟁(政爭)은 모략과 음모가 판치는 일반 사회의 선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유력한 교황 후보를 둘러싸고 형성된 무리는 ‘신의 뜻’과 ‘교회의 안위’를 내세워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한 표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선거 유세에 열을 올린다.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라면 상대 진영의 약점을 공격하고 치부를 들춰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투표가 진행될수록 추기경들은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는데 진영 간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화와 첨예한 의견 충돌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과열되는 선거로 숨이 막히도록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들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추기경단 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이다. 영화는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로렌스의 시선에서 ‘누가 차기 교황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의제를 풀어나간다. 시스티나 경당에 모인 추기경들이 선거 승리와 권력 쟁취에 눈이 멀어 콘클라베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을 때, 로렌스만이 가톨릭 교회의 수장을 세우는 의미에 대해 고민을 이어 나간다.
콘클라베 첫째 날의 로렌스의 강론은 영화가 바라는 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교황의 자질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로렌스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복종하여라’라는 사도 바울이 남긴 말을 시작으로 ‘다양성의 가치’와 ‘확신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라 강변하는 로렌스를 보며 그가 교회의 분열과 부패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로렌스의 거침없는 언행만큼 적합한 교황 후보를 가려내기 위한 그의 행동도 과감한 구석이 있다. 유력한 후보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가 30년 전 성추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총괄 수녀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와 대립하는 장면부터 트랑블레(존 리스고)의 부정을 폭로하기 위해 식당의 추기경들 자리마다 조사 보고서를 배부하는 모습까지 로렌스의 행동에서 용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트랑블레의 부정을 조사하려 봉랍을 깨고 교황의 방에 들어서는 로렌스의 대범한 행동을 지켜보며 첩보물에서나 맛볼 수 있는 긴박함을 경험하게 된다.
시류가 점차 로렌스를 차기 교회의 대표로 내세우려고 할 때, 영화는 인간 로렌스의 불안을 조명한다. 기도에 대한 어려움이 생긴 로렌스는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랐으나, 선대 교황의 지시를 받아 콘클라베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은 상태이다. 홀로 남은 숙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관리자’의 무게에 불안해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로렌스의 모습은 공식 석상에서 보인 그의 기품과는 완연히 다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기에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사실 로렌스도 앞선 투표에서 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추기경들과 함께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강력히 추구하는 초(超) 보수주의의 수장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의 교황 선출을 제제하기 위해 자신의 표를 벨리니(스탠리 투치)에게 행사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교황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기꺼이 선거 국면에 균열을 낸 로렌스지만, 한편으로 관용과 화합을 주장한 강론이 무색하게 끝끝내 진영의 논리에 벗어나지 못한 그를 보며 자로 잰 듯 가를 수 없는 복합적인 인간의 한 면모를 깨닫는다.
콘클라베 셋째 날에 행해진 여섯 번째 투표에서 로렌스가 자신의 이름을 기표하고 투표함에 용지를 넣으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천장 벽이 무너지며 추기경들을 덮친다. 몸을 추스르고 사태를 파악한 로렌스는 대강당에 피신한 추기경들 앞에서 앞선 소란이 이슬람 세력의 테러로 인해 벌어진 사태임을 보고한다. 이에 테데스코(카를로스 디에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짐승들과 싸울 지도자’라며 극단적인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자유주의 진영과 전통주의 진영에서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뒷줄에 앉아 있던 베니테스가 조용히 일어나 입을 연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이다. 지금 당장 증오에 굴복하여 편 가르기를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과 남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연설에 그 공간을 채운 모든 추기경들이 감화한 듯 보인다. 특히, 앞줄에서 베니테스를 올려다보는 로렌스의 얼굴에서 비로소 예수를 찾은 세례 요한이 느꼈을지도 모를 감격과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격렬한 암투 끝에 논외의 인물 베니테스가 차기 교황으로 추대되며 콘클라베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콘클라베 직전 합류한 무명의 추기경 베니테스의 의료기록이 로렌스의 평안에 찬물을 끼얹는다. 알고 보니, 베니테스는 인터섹스(intersex, 간성(間性), 생식기난 성호르몬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였던 것. 곧 가톨릭의 주교에 오를 자가 신의 완벽한 피조물인 인간의 예외에 속해 있다는 걸 알게 된 로렌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지만, 그의 앞에 앉아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베니타스는 한없이 차분하고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자신은 ‘이 세상 속 확신들 사이에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베니타스의 얼굴에서 그가 선택한 교황 이름 인노첸시우스(순수하고 정결함을 의미)가 겹쳐 보이는 듯하다. 아데예미와 트랑블레 때와는 달리 로렌스는 베니타스의 비밀에 대해서는 묵과할 모양이다. 환호성을 뒤로한 채 홀로 정원에 남아 후련한 듯 아쉬운 듯 미소를 짓는 로렌스. 결국, 인간의 삶은 (확신이라는 이름의 악마에 휘둘리지 않고) 무수한 의심 속에서 내린 자신의 선택이 최선의 결정이기를 바라는 과정의 연속임을 그의 표정을 보며 또 한 번 깨달아보기로 한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