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틀 아멜리>
그 시절, 순수했던 우리에게
(믿기지 않겠지만) 모체의 태궁에서 벗어나 지상에 당도하던 때의 장면이 필자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있다. 희미한 잔상뿐이지만 흐릿한 시야를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백색광과 그 밑으로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실루엣을 필자는 여태껏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그날, 필자의 인생은 이 지구라는 행성에 첫걸음을 내디뎠으리라.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작고 연약한 존재가 살아내기 위해 꼬물거리는 모양을 떠올려 보라. 생명력이라는 게 여간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제아무리 삶이 고난의 연속도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경이로움 앞에서는 누구나 진실한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리틀 아멜리>는 탄생의 축복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알아가는 어린 소녀 아멜리의 시선을 담아낸다. 아멜리의 성장 속에서 포착된 세상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아름답고도 아프다. 아멜리의 시선에 담긴 장면들을 통해 관객은 저마다가 지나쳐온 시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시절의 찬란하고 서글펐던 자신을 추억할 수 있으리라.
1960년대 말, 아멜리는 일본 주재의 벨기에 영사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다. 그녀는 태어나고 3년이 지날 때까지 스스로를 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인간들이 자아내는, 시끄럽고 요란한 일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갓 태어난 아이의 몸에 깃든 아멜리의 영혼은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한다. 아멜리를 감싼 투명한 막이 아멜리 본인과 그녀의 주변에 경계를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장면 효과는 주변과 구분 지으려는 아멜리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덧붙여 일본에서는 세 살 전까지의 아이를 신격화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러한 풍습이 영화에서 표현된 아멜리의 모습에 녹아들어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감각하고 무감정한 상태로 흘려보낸 천일에 가까운 시간 끝에 드디어, 아멜리가 인간의 삶에 발을 내딛게 도움을 주는 이가 나타난다. 첫 번째는 아멜리에게 화이트초콜릿의 달콤함을 통해 아멜리에게 ‘기쁨’을 알게 해 준 아멜리의 할머니. 두 번째는 아멜리 가족의 집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 일본인 가정부 니시오. 아멜리는 이 두 여성과 함께 나눈 시간으로부터 인간으로 살아갈 준비를 천천히 시작한다.
그 시절, 아멜리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마도 니시오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멜리를 생애 처음으로 반응하게 도운 아멜리의 할머니는 잠시간의 만남 이후 생을 마감한다) 아멜리의 시선에서 니시오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니시오가 읽어주는 괴물 책, 연못 앞에서 운동하는 니시오의 몸짓, 음식 재료로 팽이를 만들어내는 니시오의 솜씨. 무엇보다 자신을 철없는 어린아이로만 대하지 않는 니시오의 태도가 아멜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일까. 니시오와의 첫 만남부터 아멜리는 니시오의 곁을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한다. 니시오도 아멜리를 시종일관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살핀다. 아멜리와 니시오가 함께 빚어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중 아멜리가 니시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해변으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니시오에게 해변의 숨결을 담은 병을 선물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병의 입구를 여는 순간, 니시오는 행복했던 어린 날을 떠올린다. 어린 니시오와 아멜리가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은 정말이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의 동행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고 영화는 만남 뒤에는 언제나 헤어짐이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의 삶에서 이별이란 외면할 수 없는 관문과도 같다.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 끝에 다다랐을 때, 인간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긴 만큼 슬픔을 겪는다. 영화의 초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멜리의 아버지는 아내의 품에 안겨 애통한 눈물을 흘린다. 그때의 아멜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며 그저 벨기에로 간 할머니를 왜 다시는 볼 수 없는지 궁금해하기만 한다. 그랬던 아멜리는 소중한 니시오와 헤어져야 할 때가 오자, 비로소 이별 앞에 슬픈 눈물을 보인다. 그렇게 아멜리는 인간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생과 사, 그 사이를 메운 인간의 생애란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일 것이다. 무수한 이별 속에 슬픔만 쌓여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너무 속상할 것이다. 아멜리는 이별이 곧 슬픔이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소중한 이와 보낸 시간을 있는 힘껏 추억하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 살아낼 나날임을 아멜리는 니시오와의 마지막 포옹을 통해 보여준다. 아멜리가 니시오와 함께 날려 보낸 풍등처럼, 소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삶을 또다시 만끽하겠노라고, 그 시절 순수했던 우리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리틀 아멜리>
그 시절, 순수했던 우리에게
(믿기지 않겠지만) 모체의 태궁에서 벗어나 지상에 당도하던 때의 장면이 필자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있다. 희미한 잔상뿐이지만 흐릿한 시야를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백색광과 그 밑으로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실루엣을 필자는 여태껏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그날, 필자의 인생은 이 지구라는 행성에 첫걸음을 내디뎠으리라.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작고 연약한 존재가 살아내기 위해 꼬물거리는 모양을 떠올려 보라. 생명력이라는 게 여간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제아무리 삶이 고난의 연속도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경이로움 앞에서는 누구나 진실한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리틀 아멜리>는 탄생의 축복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알아가는 어린 소녀 아멜리의 시선을 담아낸다. 아멜리의 성장 속에서 포착된 세상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아름답고도 아프다. 아멜리의 시선에 담긴 장면들을 통해 관객은 저마다가 지나쳐온 시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시절의 찬란하고 서글펐던 자신을 추억할 수 있으리라.
1960년대 말, 아멜리는 일본 주재의 벨기에 영사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다. 그녀는 태어나고 3년이 지날 때까지 스스로를 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인간들이 자아내는, 시끄럽고 요란한 일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갓 태어난 아이의 몸에 깃든 아멜리의 영혼은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한다. 아멜리를 감싼 투명한 막이 아멜리 본인과 그녀의 주변에 경계를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장면 효과는 주변과 구분 지으려는 아멜리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덧붙여 일본에서는 세 살 전까지의 아이를 신격화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러한 풍습이 영화에서 표현된 아멜리의 모습에 녹아들어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감각하고 무감정한 상태로 흘려보낸 천일에 가까운 시간 끝에 드디어, 아멜리가 인간의 삶에 발을 내딛게 도움을 주는 이가 나타난다. 첫 번째는 아멜리에게 화이트초콜릿의 달콤함을 통해 아멜리에게 ‘기쁨’을 알게 해 준 아멜리의 할머니. 두 번째는 아멜리 가족의 집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 일본인 가정부 니시오. 아멜리는 이 두 여성과 함께 나눈 시간으로부터 인간으로 살아갈 준비를 천천히 시작한다.
그 시절, 아멜리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마도 니시오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멜리를 생애 처음으로 반응하게 도운 아멜리의 할머니는 잠시간의 만남 이후 생을 마감한다) 아멜리의 시선에서 니시오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니시오가 읽어주는 괴물 책, 연못 앞에서 운동하는 니시오의 몸짓, 음식 재료로 팽이를 만들어내는 니시오의 솜씨. 무엇보다 자신을 철없는 어린아이로만 대하지 않는 니시오의 태도가 아멜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일까. 니시오와의 첫 만남부터 아멜리는 니시오의 곁을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한다. 니시오도 아멜리를 시종일관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살핀다. 아멜리와 니시오가 함께 빚어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중 아멜리가 니시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해변으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니시오에게 해변의 숨결을 담은 병을 선물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병의 입구를 여는 순간, 니시오는 행복했던 어린 날을 떠올린다. 어린 니시오와 아멜리가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은 정말이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의 동행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고 영화는 만남 뒤에는 언제나 헤어짐이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의 삶에서 이별이란 외면할 수 없는 관문과도 같다.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 끝에 다다랐을 때, 인간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긴 만큼 슬픔을 겪는다. 영화의 초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멜리의 아버지는 아내의 품에 안겨 애통한 눈물을 흘린다. 그때의 아멜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며 그저 벨기에로 간 할머니를 왜 다시는 볼 수 없는지 궁금해하기만 한다. 그랬던 아멜리는 소중한 니시오와 헤어져야 할 때가 오자, 비로소 이별 앞에 슬픈 눈물을 보인다. 그렇게 아멜리는 인간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생과 사, 그 사이를 메운 인간의 생애란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일 것이다. 무수한 이별 속에 슬픔만 쌓여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너무 속상할 것이다. 아멜리는 이별이 곧 슬픔이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소중한 이와 보낸 시간을 있는 힘껏 추억하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 살아낼 나날임을 아멜리는 니시오와의 마지막 포옹을 통해 보여준다. 아멜리가 니시오와 함께 날려 보낸 풍등처럼, 소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삶을 또다시 만끽하겠노라고, 그 시절 순수했던 우리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