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엔조> / 방황, 그리고 마주해야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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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

방황, 그리고 마주해야 하는 현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 엔조(엘로이 포후)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이 있을까. <데미안> 속 싱클레어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15살 소년 엔조는 지금 자신을 둘러싼 알에 있는 힘껏 부딪치고 있다. 부유한 가정 속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던 둘째 아들이 돌연 벽돌공을 한다고 하니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유도 해보고, 응원도 해보고, 해줄 수 있는 건 다해보지만 엔조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이리 뻗대고 저리 반항한다. 그러나 그의 반항을 단순히 사춘기 시절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숨겨진 이유가 있어 보인다. 엔조의 진짜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천천히 그의 일상을 지켜봐야 한다.


엔조는 정규 교육을 따라가는 대신 벽돌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이곳에서의 일도 그에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관리 소장에게는 욕을 얻어먹고 같이 일하는 블라드(막심 슬리빈스키)는 그런 그를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챙기지만 때때로 엔조를 답답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엔조는 계속 벽돌공 일을 해 나간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설령 폭격이 떨어져 모든 게 사라져도 그가 세운 벽만은 남아 있을 거란 이유에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아름다운 영상미와 퀴어 서사가 전면에 내세워진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엔조는 단순히 성적 지향성을 고민하기만 하는 소년은 아니다. 그가 좋아하는 블라드의 고향 우크라이나는 지금 약 4년째 러시아와 전쟁 중이다. 가족들과 함께 싸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국에 돌아갈 결심을 하는 형을 보며 엔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안락함이 그저 무의미하고 떼어버리고 싶은 짐 덩이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의 가족이 여름휴가를 고민하는 동안 블라드의 가족들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고, 휴대폰과 노트북 너머로 보이는 전쟁의 참혹함과 달리 엔조의 집과 일터는 위협 하나 없는 안전한 공간인 것이 엔조에겐 모순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전쟁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내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하고, 자신과 같은 가족들에게는 계속 선을 그으며 반항한다. 마치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형에게 닿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문제가 있다면 15살의 어설픈 발버둥은 가족들에게, 나아가 그의 소중한 블라드에게도 피해를 미친다는 점이다.


이야기 내내 엔조는 좀처럼 솔직하게 굴지 못한다. 아버지에겐 물론 자상히 물어보는 어머니에게조차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버리고, 조금이라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마치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블라드에게 스킨십을 거절당한 후 싸우는 장면이나, 친형의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장난감 총으로 한바탕 소란을 벌이는 모습에선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격렬한 움직임 끝에 세계를 깨뜨리고 멍투성이가 된 엔조는 새로운 길을 걷는다. 블라드와마음이 통했는지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블라드는 전화로 엔조의 사랑에 대해 기뻤다며 답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름으로 잠깐 전화기에서 귀를 뗀 사이 블라드의 목소리가 끊긴 채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엔조의 새로운 세계는 과연 그에게 어떤 것을 보일지, 그 세계에 여전히 블라드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알을 깨고 나온 이가 맞이할 세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또다시 직접 부딪치며 직시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미완의 결말이 엔조가 맞은 진짜 현실과 다름없다. 어쩌면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잃고서야 성장했듯, 엔조의 이야기도 블라드의 부재에서 비로소 시작될지도 모른다. 알을 깨고 나온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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