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칙왕 몽키>
응원할 수밖에 없는 반칙
기후 위기와 경제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취업이라 불리는 생존 경쟁은 나날이 격화되는 요즘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부모의 기저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이전 세대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경쟁이 판을 치는 시대는 부모의 불안을 양분 삼아 세력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다. 나의 자식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은 자녀에게 되도록 이른 시기에 보다 많은 교육을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순회하는 것은 기본이고, 입시 전략에 맞추어 학교생활을 설계하느라 여유가 없는 판국에 가족과의 추억과 학창 시절의 낭만은 점차 사치가 되어간다. 이런 시국에 영화는 제목이 내뿜는 발칙한 기운처럼 시종일관 현시대의 고착된 가정과 교육 프로토콜에 대해 호기롭게 다음과 같은 반문을 던진다. 어째서 시대의 불안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몽키와 안나가 이룬 가정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에는 경이와 존경 그리고 약간의 염려가 뒤섞여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자식 네 명을 낳아 기르고 있고, 남성이 생계를 부양하는 것이 (아직은) 일반적인 시대에 아빠인 몽키가 전업주부의 역할을 담당한다. 게다가 사교육이 필수가 된 시대에 돈이 들지 않는 사적 교육이 일상인 집안이라니, 엄청난 반칙이 아닐 수 없다. 자식 하나도 키우기 벅찬 시대인데 넷을 키우려면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양육의 고충이 만만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필자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몽키와 안나의 집에는 웃음과 생기가 가득하다. 몽키가 찍어둔 스마트폰의 세로 영상들이 영화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몽키의 세로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가로 촬영본과 교차하면서 일차적으로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리고 몽키가 스마트폰으로 포착한 육아의 모든 순간은 사랑스러운 활력으로 가득하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유모차를 끌고 자녀들과 자전거를 타며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는 몽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하다.
부모의 행복은 자녀의 일상에 스며든다는 어느 글에서 본 문구가 몽키를 통해 현현한 느낌이다. 몽키의 일상이 생동감이 넘쳐나는 만큼 몽키네 사 남매의 일상도 활기가 넘쳐난다. 학교 운동장에서 온 가족이 물놀이를 하고 다 함께 유도를 배우러 가는 모습은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학원가를 전전하는 학생들의 피로에 젖은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몽키의 발랄한 육아 생활은 그들의 가정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몽키는 학교 내 학부모위원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고 지원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옛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님을 증명하듯 몽키와 함께하는 어른들은 그들을 울타리 삼아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성심을 다한다. 몽키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서로 돕고 함께 배우는 경험을 체득한다. 친구를 (보다 높은 곳을 선취하기 위해 짓밟고 올라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필자는 새삼 깨닫는다.
기세등등한 몽키네 가족의 남다른 일상 가운데 몽키와 안나의 대화는 시대의 고민을 관통한다. 몽키가 자녀들에게 대안학교를 넘어선 대안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확고한 신념을 보이는 반면, 안나는 만에 하나 자녀들이 남들과 뒤처지는 것을 두고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지 염려를 토로한다. 당장이라도 학원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안나에게 몽키는 우리와 함께 자란 자녀들을 믿어보자고 담대하게 말한다. 몽키의 믿음에 화답하듯 이어지는 장면에서 안나는 첫째 딸 세빈이 한 말을 몽키에게 전한다.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고 있으니 충분하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학원을 보내달라 말하겠다.’라는 딸의 말에 부모는 얼마나 뿌듯하고 든든했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물론 아직 자녀들이 초등학생이기에, 그들이 앞으로 중학교에 진학하면, 또 앞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얼마나 질풍노도의 시기인지 겪어본 자들은 알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럼에도 경쟁을 강요하고 모두가 같은 루트의 성장 코스를 밟아 나가길 종용하는 시대에 몽키와 안나의 가족들이 건강한 대안이 되어주길 응원하는 바이다.
-관객리뷰단 박유나
<반칙왕 몽키>
응원할 수밖에 없는 반칙
기후 위기와 경제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취업이라 불리는 생존 경쟁은 나날이 격화되는 요즘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부모의 기저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이전 세대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경쟁이 판을 치는 시대는 부모의 불안을 양분 삼아 세력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다. 나의 자식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은 자녀에게 되도록 이른 시기에 보다 많은 교육을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순회하는 것은 기본이고, 입시 전략에 맞추어 학교생활을 설계하느라 여유가 없는 판국에 가족과의 추억과 학창 시절의 낭만은 점차 사치가 되어간다. 이런 시국에 영화는 제목이 내뿜는 발칙한 기운처럼 시종일관 현시대의 고착된 가정과 교육 프로토콜에 대해 호기롭게 다음과 같은 반문을 던진다. 어째서 시대의 불안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몽키와 안나가 이룬 가정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에는 경이와 존경 그리고 약간의 염려가 뒤섞여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자식 네 명을 낳아 기르고 있고, 남성이 생계를 부양하는 것이 (아직은) 일반적인 시대에 아빠인 몽키가 전업주부의 역할을 담당한다. 게다가 사교육이 필수가 된 시대에 돈이 들지 않는 사적 교육이 일상인 집안이라니, 엄청난 반칙이 아닐 수 없다. 자식 하나도 키우기 벅찬 시대인데 넷을 키우려면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양육의 고충이 만만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필자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몽키와 안나의 집에는 웃음과 생기가 가득하다. 몽키가 찍어둔 스마트폰의 세로 영상들이 영화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몽키의 세로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가로 촬영본과 교차하면서 일차적으로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리고 몽키가 스마트폰으로 포착한 육아의 모든 순간은 사랑스러운 활력으로 가득하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유모차를 끌고 자녀들과 자전거를 타며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는 몽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하다.
부모의 행복은 자녀의 일상에 스며든다는 어느 글에서 본 문구가 몽키를 통해 현현한 느낌이다. 몽키의 일상이 생동감이 넘쳐나는 만큼 몽키네 사 남매의 일상도 활기가 넘쳐난다. 학교 운동장에서 온 가족이 물놀이를 하고 다 함께 유도를 배우러 가는 모습은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학원가를 전전하는 학생들의 피로에 젖은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몽키의 발랄한 육아 생활은 그들의 가정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몽키는 학교 내 학부모위원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고 지원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옛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님을 증명하듯 몽키와 함께하는 어른들은 그들을 울타리 삼아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성심을 다한다. 몽키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서로 돕고 함께 배우는 경험을 체득한다. 친구를 (보다 높은 곳을 선취하기 위해 짓밟고 올라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필자는 새삼 깨닫는다.
기세등등한 몽키네 가족의 남다른 일상 가운데 몽키와 안나의 대화는 시대의 고민을 관통한다. 몽키가 자녀들에게 대안학교를 넘어선 대안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확고한 신념을 보이는 반면, 안나는 만에 하나 자녀들이 남들과 뒤처지는 것을 두고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지 염려를 토로한다. 당장이라도 학원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안나에게 몽키는 우리와 함께 자란 자녀들을 믿어보자고 담대하게 말한다. 몽키의 믿음에 화답하듯 이어지는 장면에서 안나는 첫째 딸 세빈이 한 말을 몽키에게 전한다.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고 있으니 충분하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학원을 보내달라 말하겠다.’라는 딸의 말에 부모는 얼마나 뿌듯하고 든든했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물론 아직 자녀들이 초등학생이기에, 그들이 앞으로 중학교에 진학하면, 또 앞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얼마나 질풍노도의 시기인지 겪어본 자들은 알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럼에도 경쟁을 강요하고 모두가 같은 루트의 성장 코스를 밟아 나가길 종용하는 시대에 몽키와 안나의 가족들이 건강한 대안이 되어주길 응원하는 바이다.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