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사토상과 사토상> / 끝내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이름

f083fec75561b.jpg


<사토상과 사토상>

끝내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이름


어그러진 관계에는 언제나 ‘만약’이라는 후회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따금 ‘그때 내가 너에게 이렇게 했더라면,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와 같은 소용없는 가정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와 생각을 지배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하루의 일과는 아쉬움과 서러움에 잠식되곤 한다. 그렇지만 예전과 같은 사이로 되돌릴 수 없는 걸 알기에 이러한 상상은 우리를 아프게도 쏘아댄다. 억지로 만회를 해보려 한들 서로에게 남긴 마음의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 법이다. 처음이 지닌 싱그럽고 풋풋함은 온데간데없이 누더기처럼 상흔만 덕지덕지 남은 채 겨우 끈만 이어가는 관계를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깔끔하게 끊어내고 더 이상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 쪽과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서로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 나가는 쪽. 어느 쪽의 길을 선택하던 수없이 많은 눈물과 갈등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은 같은 성을 가진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끝내 이별하는 과정을 15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조명한다. 영화는 함께 행복을 지켜내려 했지만, 서로가 바란 행복의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간을 관객에게 선사하여 관객들이 저마다 애써 움켜쥐고 있는 관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22살, 대학 동기인 사치(키시이 유키노)와 타모츠(미야자와 히오)는 커피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다. 아직 이름을 부를 정도로 가깝지는 않은 어색하고 풋풋한 호감을 품고 있는 사이에서 ‘사토상’, ‘사토상’하며 서로의 성을 부르는 장면이 참으로 싱그럽다. 사치와 타모츠는 아마도 서로의 다름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기농 원두를 골라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볼 시기를 감안하여 원두 분쇄를 계획하는 타모츠와는 달리 사치는 그날의 할인 제품을 구매하고 그 자리에서 분쇄해 버린다. 자전거 보관소 앞에서 썸을 타는 와중에 나눈 대화에서 두 사람의 성격이 은근히 묻어난다. 초반의 장면에서 유추하건대, 타모츠는 매사에 신중하고 자신이 정한 루틴을 고집하는 고지식한 면모가 두드러진, 고결한 이상을 지닌 사람이라면 사치는 사교성과 융통성이 높아 매사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로 주위를 부드럽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대비된 성격을 그들의 착장을 통해 은근하게 드러낸다. 다수의 장면에서 사치는 노랑 계열의 상의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노랑의 지닌 태양과 같은 밝고 명랑한 기운이 사치의 해사한 미소와 닮아있다. 동시에 노랑은 갓 태어난 병아리와 같은 미숙한 면모도 내포한다. 타모츠는 주로 검정 계열의 옷을 입고 나온다. 검정은 침착하고 차분한 타모츠의 성정과 함께 타모츠의 절망과 고립된 상황을 나타낸다. 사치의 노랑과 타모츠의 검정은 끝끝내 융화되지 못한 채 서로를 점점 더 먼 대척점으로 밀어내기만 한다.

 

처음에는 달라서 좋았던 것들이 나중에는 달라서 치가 떨리게 싫어진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 토라지고 화를 내는 시간들이 반복되는 동안 사치와 타모츠는 서로에게 지쳐가고 있다. 특히나 타모츠의 경우, 사치에게 자신의 꿈(변호사가 되는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타모츠는 번번이 사법시험에 낙방하면서도 독학을 고집한다. 학원 수강이나 공부모임에 가입하지 않으려는 타모츠를 위해 사치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다. 함께 공부하면서 타모츠의 합격을 도우려 했건만 정작 합격은 사치만 하게 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후, 장수생의 설움 속에 전업주부의 역할까지 떠안은 타모츠의 속에서는 억울함이 커져가고 있다. 고향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시험에 벌써 합격했을 것’이라는 타모츠의 넋두리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타모츠를 위한 사치의 헌신은 타모츠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요령껏 시험 대비를 할 수 있는 사치와 다르게 타모츠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학문을 체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10년의 독학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을 보면 타모츠의 방법이 느리지만 분명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리라. 상대를 위한 행동이 알고 보니 상대의 삶에 독이 되었음에 아프기만 할 뿐이다.

 

37살, 타모츠와 사치는 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결혼해도 사토, 이혼해도 사토’라며 사치가 내뱉은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어 씁쓸하다. 영화의 첫 장면과 이어진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유리창에 비친 사치를 조명한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영화에서 네다섯 차례 정도 등장한다) 거울이 아닌 유리창에 흐릿하게 보이는 사치의 실루엣이 어딘가 모르게 헛헛하게 느껴진다. 반짝반짝 빛났던 알맹이가 매우 작아진 느낌이랄까. 15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사치의 맑고 커다란 미소도 소심해진 모양이다. 이어진 장면에서 첫 장면에서 벌어진 자전거 보관소의 해프닝(도미노처럼 자전거들이 쓰러짐)이 반복된다. 난감해하는 사치 옆으로 타모츠가 등장한다. 썸 타던 22살 때처럼 함께 자전거를 세워 올리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의 질감은 그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타모츠는 어딘가 모르게 홀가분한 모습이다. 정장 차림 위에 멋들어진 붉은색 가방을 뒤로 멘 그의 모습은 세련되고 자신감 넘쳐 보인다. 사치는 그런 타모츠 앞에서 애써 웃음으로 무마하지만, 눈물 고인 얼굴은 숨기지 못한다. 그와의 이별을 원치 않았던 사치의 슬픔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분명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헤어졌을 두 사람인데,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차이는 어쩔 방도가 없는 모양이다. 다만, 끝내 지켜내지 못한 ‘우리’라는 이름을 회복하는 시간이 사치에게도 타모츠에게도 충분하게 주어지길 바랄 뿐이다. 사치와 타모츠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함께 부르던 노래는 이제 사치만이 홀로 부른다. 외로이 페달을 밟고 나아가는 사치가 부디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의 나날에 행복이 깃들길. 더불어 타모츠 역시 자신의 행복을 지켜나가길.


-관객리뷰단 박유나


강릉씨네마떼끄 |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25540)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강로 2100 (임당동, 신영빌딩2) 4층

대표자: 권정삼 

사업자등록번호: 226-82-61420

TEL: 033-645-7415 

FAX: 033-644-7415

E-MAIL: gncinematheque@gmail.com

Copyright©강릉씨네마떼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