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비밀일 수밖에> 리뷰 : 비밀의 K-윤리학


<비밀일 수밖에>

비밀의 K-윤리학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은 없다. 하지만 비밀은 내밀하고 예민한 주제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많은 작가들은 비밀을 사랑한다. 비밀은 곧 갈등을 만들고 인간 내면을 파헤치고,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쥐고 있다. 유독 영화 시나리오에서 캐릭터들이 비밀이 많은 까닭이다. <비밀일 수밖에>도 '비밀'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와서 천천히 우리 앞으로 들이민다.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변주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전달된다. 엄마와 아들 사이의 비밀, 연인 사이의 비밀, 처음 보는 사돈 사이의 비밀. 당신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그 비밀은 누구에게까지만 용인될 수 있는 비밀인가? 이 질문이 영화 내내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영화의 무대는 강원도 춘천. 식사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교사 정하(장영남)는 남편과 아들을 식탁으로 부른다. 아들의 학업을 채근하는 아버지와 사춘기의 아들, 그리고 성적표.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뭔가 지나치다. 춘천에서 나고 자란 우등생이라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춘고, 그곳에 입학할 성적이 안 되는 아들에게 화를 내고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 아버지는 그날 밤 사고를 당해 세상을 뜬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극은 시작된다. 남편의 사고 뒤, 정하(장영남)의 나름 평온했던 일상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캐나다로 유학 중인 아들 진우가 여자친구 제니와 함께 예고도 없이 나타나고, 곧이어 캐나다에 있어야 할 제니의 부모까지 갑작스럽게 춘천에 도착한다. 숙소 예약 문제로 벌어진 소동 끝에 제니의 부모님까지 정하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두 가족의 낯설고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사건의 발단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만들어진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에 최적화된 카메라 앵글은 한판의 시원한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현실과 밀착된 가족드라마인 이 영화는 더 깊이 몰입시키는 동시에 관객들 가슴속 답답한 무언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시끄러운 음악 대신 숨이 고르는 소리, 밥숟가락이 허공에서 잠깐 멈추는 순간, 눈을 피하는 아주 짧은 시선과 같은 것들이 장면의 윤리가 된다. 어느 순간 갈등은 조금씩 해소되고 캐릭터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비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가 말하는 위로는 단번에 상처를 지우는 마법이 아니라, “다시 식탁에 함께 앉아 보자”는 조심스러운 제안에 가깝다. 그 어느 캐릭터도 악역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분명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경직된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가족과 개인의 문제는, 악역은 없지만 모두가 고통받는 이 상황을 통해 우화처럼 관객에게 전달된다. “우리 집안일”이라는 말이 얼마나 배타적인가? 말할 권리와 말하지 않을 권리는 조율당할 틈도 없이 영화 속에서 캐릭터 각자에게 침범당한다. 그래서 질문은 바뀐다. “왜 이제야 말하니?”가 아니라 “우리는 그동안 왜 네 입을 다물게 했을까?”로. 영화는 그 질문을 급하게 소비하지 않고, 불편함과 함께 앉아 있는 쪽을 택한다. 그 태도는 관객들에게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태도를 준비시키다. 한국에서의 현실은 보통 그렇게 움직이니까.

 

  아쉬움도 있다. 뜬금없이 갑자기 아웃팅 되는 듯 보이는 어머니와 이모의 관계는 각본상의 빈틈처럼 느껴진다. 상처가 서사적 추진력을 위해 급히 호출되는 순간들은, 인물에게 더 많은 준비운동과 숨 쉴 시간을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을 남긴다. 학대당하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도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까지 붙드는 건 장면의 태도이다. 요란한 폭로 이후 관계가 다시 어떻게 설계되고 자리 잡는지, 어떻게 서로를 용서하는지, 남아있는 숙제는 무엇인지 관객에게 내보이는 태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일 때도 있고, 통제의 다른 이름일 때도 있다. 내 비밀은 누구까지 허락되고, 누구 앞에서는 침묵할 권리를 지켜야 할까. 누군가의 닫힌 서랍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할까.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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