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코니의 여자들>
이건 그냥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둘러싼 감상평들은 극과 극을 달린다. 너무 잔인하고 난해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모르겠다, 혹은 이것만큼 잘 만든 여성 서사는 없다. 영화를 직접 보고 온 필자가 생각하는 쪽은 후자다. 영화가 전하고자 메시지는 생각보다 간단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라는 것.
40도를 웃도는 한여름의 마르세유는 찜통과도 같다. 파스텔 색감의 샛노란 빌라와 그 안에서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어딘가 기묘한 배경음악이 잔잔히 깔려 폭풍전야의 느낌을 준다. 이 분위기는 발코니에 누워있던 여자를 비추면서 뚝 끊기게 되는데, 가정 폭력을 당하던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삽으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친다. 확실히 숨을 끊을 수 있도록 얼굴에 천을 얹고 엉덩이로 깔아뭉개기까지 한다. 일련의 과정 동안 여자의 얼굴에선 해방감이 피어오른다. 이 여자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도와 이야기를 그리고 싶으나 통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작가 지망생 니콜(산다 코드레아누)은 건너편 발코니의 훈남을 종종 구경했다, 은근히 보이는 그의 일상을 보며 생각한 로맨스 소설 하나로 룸메이트이자 친구인 루비와 장난치기도 했다. 성인 BJ 일을 하는 루비(수헤일라 야쿠브)는 자신의 직업에 꽤 만족하는 편이었다. 주체적으로 몸을 드러내는 것뿐이라며 사랑으로 남자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둘과 절친한 무명 배우 엘리즈(노에미 메를랑)는 처음 등장부터 주차되어 있던 앞집 발코니 남의 차를 들이받았다. 갑갑한 결혼 생활과 좀처럼 확 뜨지 않는 현실에 지쳐 친구들에게 피난을 오면서 사고를 낸 것이다. 엘리즈의 실수로 발코니 남과 인연이 닿은 셋은 그에게서 초대를 받아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저 유쾌할 것만 같은 이 영화는 발코니남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다시 한번 반전된다.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자를 밀쳤다가 얼떨결에 살인자가 된 루비는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더 이상 환하게 웃지 못했다. 늘 깔깔거리던 그들 사이에도 무거운 적막이 감돈다. 하지만 루비를 살인자로 둘 수 없었던 친구들은 모두 힘을 합쳐 남자의 시체를 숨기기로 결심한다.
포스터를 보면 이 영화에서 '여자'는 죽지 않는다고 나온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죽은 이들은 전부 남성이다. 여자를 강간하고, 괴롭힌 남자들은 모두 여자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죽어서 유령이 되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루비를 강간하려 했던 발코니남도 강간하려 한 적 없다며 되려 자신들을 볼 수 있는 니콜에게 억울하다고 소리친다. 이들 중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실제 현실을 여실히 반영한다. 그리고 끝내 "나는 여자를 강간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뒤 유령들이 사라졌을 때 퍼붓던 비가 그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와 더불어 강간 피해자인 루비는 내내 눈물 자국을 연상케 하는 글리터를 얼굴에 붙이고 다녔다. 처음엔 붉게 물든 파츠들만을 붙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며 점점 투명한 색으로 바뀌며 그의 눈에서 흐르던 피눈물도 그친 것 같은 연출 역시 은유적으로 피해자의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을 표현하며 여자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이곳에서의 여성은 대놓고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거나 노출이 있어도 전혀 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팔뚝이나 다리를 내놓는 것만큼이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관계를 암시하는 장면도 전혀 섹슈얼한 분위기가 아닌 불쾌와 혐오감을 준다. 특히 엘리즈의 남편이 갖은 떼를 써가며 관계를 갖는 장면은 텁텁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항상 관능적이며 자극적으로 묘사되어 온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의미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노에미 메를랑 감독이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 부르지 마세요. 그냥 영화일 뿐이에요."라고 언급한 대로 영화 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그냥 사람이다. 성적이고 가만히만 있어도 남자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 단지 똑같은 존재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 삼총사를 비롯한 여자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걷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위축되어 있지 않고 당당하고, 꼿꼿하게 앞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걷는다. 옷을 벗는 것도, 입는 것도, 걸음걸이도 누구 하나라도 그들의 모습을 품평하지 않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한 여름의 꿈처럼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엔딩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발코니의 여자들>
이건 그냥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둘러싼 감상평들은 극과 극을 달린다. 너무 잔인하고 난해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모르겠다, 혹은 이것만큼 잘 만든 여성 서사는 없다. 영화를 직접 보고 온 필자가 생각하는 쪽은 후자다. 영화가 전하고자 메시지는 생각보다 간단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라는 것.
40도를 웃도는 한여름의 마르세유는 찜통과도 같다. 파스텔 색감의 샛노란 빌라와 그 안에서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어딘가 기묘한 배경음악이 잔잔히 깔려 폭풍전야의 느낌을 준다. 이 분위기는 발코니에 누워있던 여자를 비추면서 뚝 끊기게 되는데, 가정 폭력을 당하던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삽으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친다. 확실히 숨을 끊을 수 있도록 얼굴에 천을 얹고 엉덩이로 깔아뭉개기까지 한다. 일련의 과정 동안 여자의 얼굴에선 해방감이 피어오른다. 이 여자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도와 이야기를 그리고 싶으나 통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작가 지망생 니콜(산다 코드레아누)은 건너편 발코니의 훈남을 종종 구경했다, 은근히 보이는 그의 일상을 보며 생각한 로맨스 소설 하나로 룸메이트이자 친구인 루비와 장난치기도 했다. 성인 BJ 일을 하는 루비(수헤일라 야쿠브)는 자신의 직업에 꽤 만족하는 편이었다. 주체적으로 몸을 드러내는 것뿐이라며 사랑으로 남자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둘과 절친한 무명 배우 엘리즈(노에미 메를랑)는 처음 등장부터 주차되어 있던 앞집 발코니 남의 차를 들이받았다. 갑갑한 결혼 생활과 좀처럼 확 뜨지 않는 현실에 지쳐 친구들에게 피난을 오면서 사고를 낸 것이다. 엘리즈의 실수로 발코니 남과 인연이 닿은 셋은 그에게서 초대를 받아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저 유쾌할 것만 같은 이 영화는 발코니남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다시 한번 반전된다.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자를 밀쳤다가 얼떨결에 살인자가 된 루비는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더 이상 환하게 웃지 못했다. 늘 깔깔거리던 그들 사이에도 무거운 적막이 감돈다. 하지만 루비를 살인자로 둘 수 없었던 친구들은 모두 힘을 합쳐 남자의 시체를 숨기기로 결심한다.
포스터를 보면 이 영화에서 '여자'는 죽지 않는다고 나온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죽은 이들은 전부 남성이다. 여자를 강간하고, 괴롭힌 남자들은 모두 여자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죽어서 유령이 되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루비를 강간하려 했던 발코니남도 강간하려 한 적 없다며 되려 자신들을 볼 수 있는 니콜에게 억울하다고 소리친다. 이들 중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실제 현실을 여실히 반영한다. 그리고 끝내 "나는 여자를 강간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뒤 유령들이 사라졌을 때 퍼붓던 비가 그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와 더불어 강간 피해자인 루비는 내내 눈물 자국을 연상케 하는 글리터를 얼굴에 붙이고 다녔다. 처음엔 붉게 물든 파츠들만을 붙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며 점점 투명한 색으로 바뀌며 그의 눈에서 흐르던 피눈물도 그친 것 같은 연출 역시 은유적으로 피해자의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을 표현하며 여자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이곳에서의 여성은 대놓고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거나 노출이 있어도 전혀 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팔뚝이나 다리를 내놓는 것만큼이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관계를 암시하는 장면도 전혀 섹슈얼한 분위기가 아닌 불쾌와 혐오감을 준다. 특히 엘리즈의 남편이 갖은 떼를 써가며 관계를 갖는 장면은 텁텁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항상 관능적이며 자극적으로 묘사되어 온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의미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노에미 메를랑 감독이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 부르지 마세요. 그냥 영화일 뿐이에요."라고 언급한 대로 영화 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그냥 사람이다. 성적이고 가만히만 있어도 남자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 단지 똑같은 존재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 삼총사를 비롯한 여자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걷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위축되어 있지 않고 당당하고, 꼿꼿하게 앞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걷는다. 옷을 벗는 것도, 입는 것도, 걸음걸이도 누구 하나라도 그들의 모습을 품평하지 않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한 여름의 꿈처럼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엔딩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