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리뷰 :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원래부터 그러하다는 말만큼 난공불락의 이유를 필자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다. 변화와 개선을 위해 이전과는 다른 의견을 아무리 쏟아내어도 원래(元來)부터라는 서두로 세워진 두터운 수비벽을 깨부수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불합리한 관습 앞에 저항하는 마음은 생각만큼 여물지 못하여 권위와 전통으로 억누르는 지배 집단의 만류에 쉽사리 허물어지곤 한다. 하지만 한때의 치기로 격하되는 여리디 여린 반항은 이상하게도 누군가와 함께 행동할 때, 전에 없는 강렬한 기세를 내뿜는다. 우유부단하고 겁만 가득 집어먹은 마음일지라도 기꺼이 곁에서 함께 하겠다는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 완전하지는 않지만 충만하게 채워진 자신감은 흐물흐물 늘어진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방랑음악가를 꿈꾸는 곰 어네스트에게는 생쥐 셀레스틴이 두려움에 맞서 나아갈 힘을 북돋는 존재이다. 곰과 생쥐라는 이종(異種)의 동물이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고 우정을 쌓아가는 전작으로부터 이어진 신작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대소동>은 또 한 번 어네스트가 셀레스틴과 함께 갈등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처음은 어네스트의 꿈속을 비춘다. 군중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어네스트와 이윽고 그의 음악에 호응하며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 그들의 공간을 축제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낸다. 모두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흥에 겨워할 때 어디선가 경찰부대가 들이닥친다. 경찰들이 연주자의 악기를 빼앗고 마을 주민들을 통제하는 가운데 음악에 심취해 있던 어네스트는 경찰들이 자신을 촘촘히 둘러싼 그제야 자기에게 닥친 위기를 알아차린다. 경찰들을 피해 도주하는 순간, 어네스트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따뜻하지만 스산했던 어네스트의 꿈은 앞으로 그에게 닥칠 사건의 전주곡처럼 느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예상을 적중한다. 먹을거리를 찾느라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지는 가운데 셀레스틴이 그만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망가뜨린다. 거리의 음악가 어네스트가 바이올린 없이는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무엇보다 어네스트의 소중한 악기를 망가뜨렸다는 미안함에 셀레스틴은 그의 악기를 꼭 고쳐주고 싶어 한다.

 

 어네스트의 악기는 그의 고향 샤라비의 악기 장인만이 수리할 수 있다. 해결책을 알아낸 셀레스틴은 어네스트에게 샤라비에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어네스트는 곧 죽어도 샤라비에 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침대로 들어가 버린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는 어네스트의 속사정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관객의 궁금함은 셀레스틴의 저돌적인 행동력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해소된다. 셀레스틴이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메고 샤라비를 찾아 나선다. 잠에서 깬 어네스트는 뒤늦게 셀레스틴을 찾아 차를 몰아 샤라비를 향한다. 영화에서 그린 샤라비까지의 여정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산 넘고 물 건너 심지어 폭설까지 뚫고 나아가야 하는 매우 고생스러운 길이다. 그런 길을 셀레스틴은 어네스트를 위해 기꺼이 샤라비로 나아갔고, 어네스트는 셀레스틴과 함께여서 길을 되돌리지 않는다. 삶의 어느 순간은 곁에서 등 떠밀어주는 힘에 못 이겨 흘러갈 필요도 있다는 걸 셀레스틴에 이끌려 샤라비로 입성하는 어네스트의 어색함이 가득 뭉친 뒷덜미를 보며 깨닫는다.

 

그런데 샤라비는 어네스트가 추억하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으로 변해있다. 어네스트의 부친인 판사 나부코프가 제정한 ‘어네스트 법’으로 음악이 사라졌다. 음악 되찾기 운동가들은 지명 수배되어 몽타주가 광장 이곳저곳에 붙어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도 음악단속경찰들이 쫓아와 새들을 내쫓는다. 샤라비에서 음악은 ‘도’ 음계로만 이루어져야 하고, 샤라비에서 자식은 부모의 직업을 따라야 한다. 샤라비에 돌아온 어네스트가 느꼈을 절망과 좌절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여전히 건재한 직업세습의 관습과 (자신 때문에 발의된) 음악을 단속하는 악법이 망가뜨린 고향의 아름다운 모습을 목도한 어네스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자포자기의 심정인지 속죄하는 마음인지 어네스트는 나부코프의 뒤를 이어 판사가 되겠노라 마음을 다잡는다. 어네스트의 판사 임관식이 열리는 날, 판사봉을 세 번 치면 어네스트는 샤라비의 숙명 앞에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 어네스트가 세 번째 판사봉을 내리치기 직전, 어디선가 ‘짜잔!’하고 셀레스틴이 나타나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셀레스틴은 샤라비를 전혀 모르는 외부인이다. 그렇기에 샤라비의 관습에서 잘못된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다. 셀레스틴은 나아가 샤라비를 지배하는 오랜 관습과 악법을 깨부수기 위해 행동한다. 몸을 사리던 음악 되찾기 운동가들과 그들의 수장 미파솔은 셀레스틴 덕분에 한 번 더 저항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셀레스틴이 어네스트에게 수리된 바이올린을 건네는 순간, 엄숙함은 일순 사라지고 경쾌한 음악이 회장을 지배한다. 그리고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고친 장본인이 그의 아버지 나부코프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어네스트는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추억을 떠올리고 나부코프는 아들의 아름다운 연주에 자신의 고집을 기꺼이 꺾어 버린다. 나부코프의 선언으로 샤라비에서 ‘어네스트 법’이 폐지되는 순간, 회장의 갤러리들은 서로 눈치 보느라 말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꿈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고백하기 시작한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샤라비는 어네스트의 꿈처럼 음악과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 샤라비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서로가 함께라면 무엇이든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두 존재가 여기에 있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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