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페니키안 스킴> 리뷰 : 늦은 것은 없다, 그저 시작하지 않았을 뿐


<페니키안 스킴>

늦은 것은 없다, 그저 시작하지 않았을 뿐


 영화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거물 사업가 자자 코다(베니시오 델 토로)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 중 습격을 받는다. 그의 뒷자리에 타고 있던 비서는 반토막이 나버리고 비행기는 구멍이 뚫리며 추락한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액션신이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페니키안 스킴>은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듯 분명한 그만의 매력이 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어떤 수단이든 이용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악명 높은 사업가. 자자 코다는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렸지만 번번이 살아남았고, 이런 해프닝들은 그를 위협하지 못했다. 오프닝 항공사고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사방이 흑백으로 이뤄진 저세상을 목도한 자자는 안 하던 행동을 시작했다. 10년 전 집을 나간 딸 리즐(미아 트리플턴)을 상속자로 지정하고 그의 은빛 궁전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작품성과 예술성 모두 찬사를 받았으나 내용이 너무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을 받았던 전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달리 <페니키안 스킴>은 꽤 직관적이다. 큰 이야기 줄기는 자자 코다가 평생을 걸쳐 준비한 페니키안 스킴 프로젝트를 무사히 성공시키는 것이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아버지 자자와 딸 리즐의 화해 과정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술성 역시 그대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때 완성된 웨스 앤더슨 스타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지된다. 다만 정방향으로 움직이는 카메라, 쨍한 파스텔 색감, 연극적인 요소에서 비행기 추락씬이나 누바(베네딕트 컴버배치)와의 결투 장면 등 그간 보기 드물었던 액션신도 추가되었다.

 

 특히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예고편에도 잠깐 수록되었던 이 신은 자자가 욕조에서 슬로움 모션으로 연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슬로우 모션이 지루해지는 걸 막기 위해 음악과 안무, 촬영이 동시에 이루어져 모든 경험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독특한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2~30회의 재촬영을 거친 만큼 강렬한 오프닝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자자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맨 처음 비행기 추락사건은 시발점에 불과하다는 듯 비행기에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협상을 위해 들른 곳에서 무장 강도 단체를 맞닥뜨리거나 암살자들의 총격을 피하기도 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는 이름 모를 흑백의 세계로 가는데, 그때마다 당시 자자의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일들이 재판 내용으로 올라갔다. 리즐과 오랜만에 독대했을 때, 리즐은 엄마를 자자가 죽였다고 믿고 있었다. 그 대화 후 흑백의 세계에서는 부인을 죽인 혐의를 두고 재판을 받았고, 리즐을 버린 것이다, 아니다를 갖고 얘기한 후에는 어린 리즐이 나와 리즐, 부인, 자자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아이의 시점으로 독백하기도 했다.

 

 본래 자자는 본인의 감정을 부정하고 거짓말을 자주 하는 인물이었다. 극 중 가장 많이 한 대사 중 하나가 '난 불안하지 않아'일 정도다. 또한 말할 수 없다며 리즐에게 조차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말할 수 없다"는 말만 강조하며 본인의 속내, 행동의 의미 모든 것을 숨기려는 방어기제를 보였는데, 함께 사업을 위해 여행을 다니며 자자는 태도를 고쳤다. 흑백 공간에서 주마등을 볼 때마다 본인의 실수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인하며 리즐에게 진실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이는 출발하기 전 딱딱한 거짓말쟁이 사업가였던 모습과는 크게 대조된다.

 

처음엔 단순히 사업 성공을 위한 여행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알아가고 각자의 속내를 내비치며 그들은 점차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고독하게 돈을 부여잡은 채 살며 언제 암살당할지 불안하던 예전보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자자의 모습은 거짓이 아닌 진실로 편안해 보인다.

 

 '누가 이길지 궁금해서' 거는 싸움은 그만두고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찾은 이 이야기는 움직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공허하고 차가운 은빛궁전보다 비루하고 좁지만 훨씬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그들만의 아늑한 식당의 엔딩은 그 어느 시퀀스보다 행복해 보인다. 때로는 의미 없이 장대한 프로젝트보다 작은 식당의 목적이 더 의미 있는 법이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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