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자키 하야오 : 자연의 영혼>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로
‘시성비’라는 신조어가 요새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작년부터 주요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 개념은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하는데, 우리가 소비하는 데 들이는 시간의 효율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소비 기준이다. 그러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기존의 가격(가성비)이나 심리적인 만족도(가심비)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참 뭐든 손쉬운 세상이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기기 하나로 온갖 업무(연락, 구매, 기록, 촬영 등)를 처리하고 있고, 최근에는 AI(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어 명령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창작물을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궁금함을 해소하거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적이나 검색엔진을 찾아보는 수고는 전부 챗GPT에게 내맡기고, 내밀한 고민마저 인간의 조언이 아닌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신뢰한다. 디지털 지능이 자연 지능보다 우세한 지금,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편리함으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시간을 들이는 정성’은 빠르게 빛이 바래며 구시대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40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의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반세기가 넘는 시간 쌓아온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다. 영화는 삶의 철학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장인(匠人)으로서 보이는 면모에 우선 집중한다. 2014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여받은 미야자키는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시대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수상 소감을 남겼다.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수년을 걸쳐 이야기를 구상하고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수만 장에 이르는 그림을 일일이 검수하는 미야자키의 일상에서 요즘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성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컴퓨터 그래픽 대신 손으로 직접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고수하는 그의 하루는 성실하고 단조롭다. 지브리 스튜디오 근처에 자리한 작업실에 하늘색 시트로엥 2CV를 몰고 출근하는 미야자키의 모습을 그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보인다. 사무실 구석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문 채 스케치에 골몰하는 그의 앞에 널브러진 종이 위로 눈에 익은 캐릭터들에 반가움이 밀려온다. 미완의 그림을 보며 우리가 그동안 즐겨온 미야자키의 작품이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체감한다. 오래전 어느 드라마의 유행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장인이 한 땀 한 땀 지은’ 정성으로 빗어낸 작품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조명함과 동시에 영화는 후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어른 미야자키 하야오의 궤적을 따라간다. 기후 위기를 넘어선 기후 재앙의 시대, 그칠 줄 모르는 전쟁 그리고 인간의 예상을 압도하는 자연재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예견하는 미야자키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21세기는 불확실한 시대예요. 미래가 보이지 않죠.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인류와 문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요.”
영화는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벼랑 위의 포뇨>(2008)를 순차적으로 분석하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시선의 변화 과정을 정리한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더 이상 자연과 화합할 수 없는 인간의 우매한 욕심을 비판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만성적인 소비주의와 환경오염을 경고하며 후대들이 짊어질 책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내비친다.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가 일상이 될지 모를 어린이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가는 행복이 있으리라는 희망찬 전망을 보여준다. 지구라는 행성에 살아가는 무수한 생물종 중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욕망의 본성에 잠식되어 전쟁과 침략을 일삼으며 동족과 자연을 파괴해 왔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각들은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이자 그가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인류를 향한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남아있는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없는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필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오랜만에 감상하며 찾아보려고 한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미야자키 하야오 : 자연의 영혼>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로
‘시성비’라는 신조어가 요새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작년부터 주요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 개념은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하는데, 우리가 소비하는 데 들이는 시간의 효율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소비 기준이다. 그러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기존의 가격(가성비)이나 심리적인 만족도(가심비)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참 뭐든 손쉬운 세상이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기기 하나로 온갖 업무(연락, 구매, 기록, 촬영 등)를 처리하고 있고, 최근에는 AI(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어 명령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창작물을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궁금함을 해소하거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적이나 검색엔진을 찾아보는 수고는 전부 챗GPT에게 내맡기고, 내밀한 고민마저 인간의 조언이 아닌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신뢰한다. 디지털 지능이 자연 지능보다 우세한 지금,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편리함으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시간을 들이는 정성’은 빠르게 빛이 바래며 구시대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40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의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반세기가 넘는 시간 쌓아온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다. 영화는 삶의 철학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장인(匠人)으로서 보이는 면모에 우선 집중한다. 2014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여받은 미야자키는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시대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수상 소감을 남겼다.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수년을 걸쳐 이야기를 구상하고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수만 장에 이르는 그림을 일일이 검수하는 미야자키의 일상에서 요즘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성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컴퓨터 그래픽 대신 손으로 직접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고수하는 그의 하루는 성실하고 단조롭다. 지브리 스튜디오 근처에 자리한 작업실에 하늘색 시트로엥 2CV를 몰고 출근하는 미야자키의 모습을 그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보인다. 사무실 구석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문 채 스케치에 골몰하는 그의 앞에 널브러진 종이 위로 눈에 익은 캐릭터들에 반가움이 밀려온다. 미완의 그림을 보며 우리가 그동안 즐겨온 미야자키의 작품이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체감한다. 오래전 어느 드라마의 유행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장인이 한 땀 한 땀 지은’ 정성으로 빗어낸 작품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조명함과 동시에 영화는 후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어른 미야자키 하야오의 궤적을 따라간다. 기후 위기를 넘어선 기후 재앙의 시대, 그칠 줄 모르는 전쟁 그리고 인간의 예상을 압도하는 자연재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예견하는 미야자키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21세기는 불확실한 시대예요. 미래가 보이지 않죠.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인류와 문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요.”
영화는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벼랑 위의 포뇨>(2008)를 순차적으로 분석하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시선의 변화 과정을 정리한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더 이상 자연과 화합할 수 없는 인간의 우매한 욕심을 비판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만성적인 소비주의와 환경오염을 경고하며 후대들이 짊어질 책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내비친다.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가 일상이 될지 모를 어린이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가는 행복이 있으리라는 희망찬 전망을 보여준다. 지구라는 행성에 살아가는 무수한 생물종 중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욕망의 본성에 잠식되어 전쟁과 침략을 일삼으며 동족과 자연을 파괴해 왔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각들은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이자 그가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인류를 향한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남아있는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없는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필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오랜만에 감상하며 찾아보려고 한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