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리뷰 : 흐릿한 시선으로 대면하는 모호하지만 직설적인 진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흐릿한 시선으로 대면하는 모호하지만 직설적인 진실.

 

 “제목이 좋잖아, 제목이.” 친구들에게 홍상수 영화가 좋다고 말하면 “왜 하필 홍상수냐”는 질문을 듣게 된다. 질문에 대답하려 애써 논리를 세우면 되레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래서 이젠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게 속 편하다. “제목이 좋잖아, 제목이.”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라는 제목 또한 그렇다. 단순하면서도 시적인 울림이 있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말을 잃고, 때론 눈물을 흘린다. 그게 자연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원제 역시 ‘What Does That Nature Say to You’로 번역되어, 그 시적 함의가 영문에서도 잘 살아 있다. 이번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33번째 장편영화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익숙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각본, 각색, 촬영, 편집, 음악, 심지어 제작까지 모두 홍상수의 손을 거쳐 완성된 이 영화는, 그가 자신의 세계를 더욱 좁고도 깊게 파고드는 작가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우선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한참을 스크린에 비친 영상의 퀄리티를 관찰하게 된다. 지나치게 낮은 해상도, 흐릿한 색감, 무심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 누구나 4K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니는 시대에, 이토록 거칠고 탁한 저화질의 이미지는 마치 시간을 역행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하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시각적 선택이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주인공 동화(하성국)의 내면세계를 반영한 의도적인 장치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 중반, 동화가 시력이 나쁘다는 대사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이 흐릿한 화면이 그의 시선(더 정확히는 그의 세계 인식 방식)을 반영한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는 시인이며, 명확하고 뾰족한 언어(또는 해석)보다는 모호하고 느슨한 감수성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화면의 흐릿함은 곧 인물의 존재 방식이 된다.

 

 줄거리는 한없이 소박하다. 30대 중반의 시인 동화가 연인 준희(강소이)를 데려다주던 중 그녀 부모님의 집에 들르게 되며 벌어지는 단 하루의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가족 만남이지만, 대화 속에 스며든 긴장과 미묘한 갈등은 점차 표면으로 드러나며, 관객은 이들이 나누는 말 너머에 숨겨진 감정의 굴곡을 느끼게 된다. 특히 준희의 언니 능희(박미소)가 반복적으로 동화의 ‘하 변호사’ 아버지를 언급하며 그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배경과 품격을 암시하는 장면들은, 홍상수 영화 특유의 ‘예의 바른 폭력’을 연상케 한다. 한없이 정중하고 사려 깊은 언어로 포장된 이 의심과 간섭은 결국 동화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마침내 그는 울분을 터뜨린다. "내가 느끼는 걸 당신이 느낄 수 있냐"라고 일갈하며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항변을 넘어 존재를 향한 절규처럼 들린다.

 

 이후의 전개는 홍상수 영화에서 자주 목격되는 구조로 이어진다. 술이 오가고, 시가 낭독되며, 긴장과 화해 사이에서 인물들은 웃고 울고, 끝내 무엇도 분명히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오며, 동화는 홀로 달을 보러 산에 올라가고, 내려오다가 팔을 다친다. 아침이 밝자 그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집을 떠난다. 그가 귀가하던 도중 자랑스러워하던 자가용이 멈추자, “이 차도 이제 바꿔야겠구나…”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야기의 외형만 보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흐릿한 하루 속에 쌓인 감정의 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영화는 자연과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서 말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자연과 집은 흐릿하게, 불분명하게 그려진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주인공의 태도와 감정의 반영이다. 그는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그것은 그의 시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과 타인, 사랑과 가족, 예술과 삶 사이의 거리감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떠도는 자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과 모호함 속에서 관객은 홍상수 영화 특유의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가 실제 배우들의 사적인 인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이야기와 공간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는 점은, 홍상수 감독이 얼마나 우연과 일상, 그리고 사적인 삶을 창작의 중심에 두고 작업하는지를 보여준다. 하성국과 강소이 배우는 실제 연인 사이이며, 강소이 배우의 실제 부모님 댁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리얼리티와 자연스러움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 영화는 어떤 극적인 서사도 없이, 단 하루의 흐릿한 만남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억압과 충돌, 그리고 회피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그 자연이, 그 침묵이, 그 흐릿한 장면들이 우리에게 진짜로 말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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