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리뷰 : 어둠 속에서 그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어둠 속에서 그 무엇을 상상하든.


파얄 카파디야(Payal Kapadia)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All We Imagine as Light>은 뭄바이의 세 여성의 삶을 통해 현대 인도사회의 억압과 연대, 그리고 희망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24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Grand Prix)를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이 영화는, 도시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도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빛을 찾아가는지를 사려 깊은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뭄바이의 새벽 풍경으로 시작된다. 그 풍경은 강렬한 색채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짙고 탁한 푸른빛. 뭄바이의 도시 풍경은 시각적으로 암울하고 가라앉아있다. 그 탁한 색은 인도 사회가 가진 구조적 어둠, 여성의 삶을 옭아매는 억압, 그리고 내면화된 우울을 은유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단지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도시가 인물들의 삶에 얼마나 깊은 그늘을 드리우는지를 섬세하게 그린다. 거리의 상인들, 출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담겨진다. 이러한 풍경은 도시의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개인들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뭄바이는 꿈의 도시로 불리지만, 영화 속에서는 착각의 도시로 그려진다. 이곳에서 특히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기며 살아가야 한다.

 

프라바는 30대 간호사로, 결혼 후 독일로 떠난 남편과 사실상 단절된 채 뭄바이에서 살아간다. 얼굴조차 제대로 모른 채 결혼했던 그 남자는 이제 오래된 액자 속 빛바랜 사진처럼 그녀의 삶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발신자 없는 소포 하나가 그녀 앞으로 도착한다. 그것은 그 남편으로부터 온 것이며, 프라바는 그 존재를 통해 또다시 과거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프라바의 이야기는 한 여성의 억압된 존재감을 조명한다.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는 또 다른 한 남자는 그녀에게 시를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프라바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 ‘사랑’은 감히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상상의 빛일 뿐이다.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라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허락받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과거에 묶여 있다.

 

이런 프라바와는 달리 이미 빛을 소유하고 품고 있는 여자가 있다. 프라바의 룸메이트 아누는 이미 그 빛을 누리며 사랑을 실현 중인 인물이다. 그녀는 무슬림 남성과 사랑에 빠졌고, 이는 힌두교 중심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다. 아누는 그 사랑을 감추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 가족의 기대, 종교적 긴장감, 직장 내 편견. 이 모든 것이 그녀를 꿈꾸지 못하게 하지만, 그녀가 소유한 금지된 사랑의 빛은 오히려 그것들을 뚫고 더 강하게 빛난다. 아누는 밤거리를 걷고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사랑을 나눈다. 자유로워 보이는 그녀의 사랑은 저항이자 동시에 자유에 대한 선언이다. 때때로 삽입되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장면의 전환은 아누의 마음을 더욱 부드럽게 그려낸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무엇도 억누를 수 없는 본능이며, 아누는 그 본능을 부정하지 않고 살아내는 법을 천천히 터득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현실로 끌어온 인물이다.


영화는 프라바, 아누, 그리고 병원 요리사 파르바티 세 여성의 여정을 따라간다. 파르바티는 거주하던 집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 고향 라트나기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프라바와 아누는 그녀를 돕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세 여성의 내면적인 해방과 치유의 과정이자 감정의 탈출이다. 뭄바이라는 억압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기와 풍경을 마주하며, 그들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라트나기리에서 이들이 함께 나누는 술, 춤, 대화는 억눌린 그들의 삶을 해방시킨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 각자가 품고 있던 고통과 외로움이 녹아버린다. 그들의 춤은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몸짓이며, 여성 간의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그들을 버티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세 여성은 라트나기리의 해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프라바는 익사 위기의 남성을 구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남편과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이 장면은 현실과 환상의 교차로, 그녀 내면의 해방을 상징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시적이고 관념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빛’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작고 구체적인 순간들(누군가의 작은 손길, 따뜻한 말 한마디, 밤길을 함께 걸어주는 존재)로 실현된다. 빛은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현실의 어둠을 단숨에 지우지는 못하나 잠시나마 그 어둠을 잊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결국 이 영화는 말없이 우리를 깨운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빛을 상상할 수 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낼 수 있다.” 이렇게.

 

 영화는 거대한 서사나 극적 반전을 의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고 조용한 호흡으로 인물들의 작고 사적인 진실만을 따라간다. 그 진실이 관객에게 가닿는 방식은 다를 수 있으나, 하나는 분명하다. 빛을 상상할 수 있는 존재는 아직 절망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의 문구가 영화관을 나와서도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이 영화는 인도사회, 그리고 뭄바이라는 도시의 어둠 속에서 세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빛을 찾아가는지 섬세하게 묘사하고, 동시에 현실의 억압과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찬찬히 조명하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려는 몸짓. 그것은 결국 ‘빛’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깊고 울림이 큰 대답이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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