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영화]는 매주 화요일 관객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입니다.
이번 3기는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화양영화: 화요일에 영화를 즐기는 모임]
<우리의 일용할 양식> 토크 & ‘화양영화 3기’를 마치며
2021.05.25.
진행 이마리오 감독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더 블랙> 연출)
참가 몽상가, 슈나드, 시수, 에드만, 오대수, 찬실,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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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리오 : 지금까지 봤던 다큐멘터리와는 좀 다른 형식이었는데 어떠셨어요?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보여줘도 다큐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일종의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의 메시지가 모르는 내용은 아닌데 그 상황을 실제로 영상에 담아서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 받는 느낌이 텍스트로 보는 거랑은 달라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찬실 : 제목 그대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식물 같은 경우 어떻게 재배되고 동물들은 어떻게 기계적으로 사육되다가 해체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책으로만 봤었지, 실제로 제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식물 같은 경우 별 느낌은 없었는데 동물들이 해체되는 건 뭐랄까요? 예전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떠올랐고요. 사람들이 먹어야 하니까 그런 과정이 있는 건데 한편으로는 마음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슈나드 : 첫 장면이 양쪽에 동물이 쭉 늘어져서 걸려 있고, 그 사이로 남자가 지나가는 장면이었는데 그때부터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감은 오더라고요. 우리가 먹는 양식이 결국은 어떤 다른 생명을 우리가 맘대로 죽여서 얻는 거라고 말하는 영화라고 예상했는데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탄소 배출량이나 동물권에 대한 사람의 인터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이는 장면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시수 : 영화의 형식이나 내용 다 신선했던 거 같아요. 제가 원래 극영화에선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님의 영화처럼 대사가 많이 없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다큐멘터리에도 이런 형식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마리오 : 이런 형식을 가진 영화가 한국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요. 이따금 영화제에 나오는 영화 중 제가 봤던 작품은 <4원소>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4요소인 물, 불, 흙, 바람을 테마로 한 영화가 있었어요. 물은 원양어선에서 고기 잡는 행위를 쫙 보여주고, 불은 소방관, 흙은 땅속에서 탄 캐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바람은 비행사들이 훈련하는 걸 쭉 보여줘요. 이런 다큐들이 간혹가다가 제작되긴 해요.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사, 내레이션, 인터뷰 없이 전달되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봐요. 너무 과하게 돼서 문제지 이야기는 정확히 전달되는 거 같아요.
에드만 : 영화 중간부터 느낀 건 ‘소외’였어요. 화면을 보면 어떤 소실점을 향해있거나 소실점에서 나오는데요. 대량의 식량들이 달려있는데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1명인 거죠. 육류 작업장에서는 다들 소음방지용 헤드셋을 끼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어떤 소통 없이 서로 소외시키는 느낌을 받았고요. 훌륭한 거 같아요. 아무 대사나 설명도 없이 이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요. 원제도 이건가요?
이마리오 : 독일어인데 영어로 하면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에드만 : 다른 제목이면 어떨까 했어요. 저한테는 내용이 먹는 것과 연관되지 않은 거 같았거든요. 행위로는 이해하겠는데 그게 식량이랑 꼭 연결되진 않았어요.
이마리오 : 그래서 의도적으로 중간에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계속 넣은 거 같아요. 만약에 밥 먹는 장면 없이 기르고 자르고 해체하는 장면만 나오면 느낌이 다를 텐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람들도 밥을 먹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오대수 : 화면구도가 보통 정 가운데에 주로 배치하고, 카메라도 거의 다 고정하는 식이잖아요. 평면화된 구도로 기계화된 과정을 표현한 거 같고요, 저는 사실 동물을 도축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 잔혹함에 대한 건 없이 봤거든요. 제목 그대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어떻게 가공되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동물을 가둬놓고 해체하는 장면만 나왔으면 이 영화의 메시지가 동물권을 무시하는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제목에 맞춰서 봤을 때 보면 동물 말고도 식물도 나오니까요. 우리가 못 보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점에서 재밌었어요. 근데 확실히 폭력적이긴 하더라고요.
이마리오 : 카메라 앵글이 굉장히 감정이 배제되어 있잖아요. 감정적인 건 최대한 억제하면서 장면을 촬영하고, 주관이 최대한 개입되는 걸 막는 카메라의 위치에서 앵글을 잡았어요, 컷도 어떤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진 않아요. 관객이 판단하게 한 거 같고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우화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노동자들도 큰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부분일 뿐이고 말 그대로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는 거지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 않죠. 하지만 전체를 보면 대량생산 시스템 안에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용되고 있는 지점을 드러낸 거라고 봅니다.
슈나드 : 소금 광산에서의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이 사회를 이루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정말 많이 사용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한밤중에 재배하는 하우스에 불이 늘 켜져 있고, 기계 소리가 내내 들려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기 위한 과정이라지만 너무 과잉생산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몽상가 : 이 다큐가 독일에서 만들었다고 하니까 갑자기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얘기 듣기로 독일에선 녹색당 활동이 활발하고, 생명권을 중요시한대요. 인구 중 85%나 노동조합에 가입할 정도로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고요. 한편으론 TV 프로그램을 거의 안 본대요. 한 편의 드라마가 10년째 방영되기도 하고요. 그만큼 영상을 재밌게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를 많이 따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독일이 충분히 이런 다큐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슈나드 : 제 손으로 직접 야채를 산 적이 정말 없었어요. 최근에 동료분께서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를 어쩌다 받아서 먹게 됐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 먹으려고 보니까 너무 비싼 거예요. 내가 귀한 걸 받았었다는 걸 마트에서 느끼는 순간이었죠. (웃음)
이마리오 : 꾸러미라고 강릉에서 1년 정도 운영했던 게 있어요. 대규모 농사가 아니라 지역에 있는 소농들이 모여서 신청한 사람들한테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모아 보내주는 방식이었어요. 저도 신청해서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2주에 한 번씩 오는 야채랑 먹거리를 먹었었는데 판매자 입장에서는 지속할 만큼 수익이 안 나는 거죠. 대량생산 하면 가격이 싸지니까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요.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다기보다 넘어서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에드만 : 돼지한테 사료로 먹이는 옥수수가 돼지에게 안 가면 아프리카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돼지를 먹기 위해서 인구의 절반은 굶고 있는 거죠.
시수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보면 네슬레의 사례가 나오는데 남는 분유가 있어도 굶주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절대 주지 않고 다 폐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과잉 생산하는 이 시스템에서 그 부가 어디로 축적되는지 생각하게 되죠.
파이 : 전에 우리 다큐 <내일>을 같이 봤었잖아요. 두 영화가 사실 어떤 문제들은 공동체의 시선으로 보면 해결될 수 있는데 ‘상품’,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문제해결이 막혀버리는 상황을 말하는 거 같아요. <내일>은 좀 더 따뜻하게 말했다면 이 영화는 날카롭게 말한다고 느꼈어요.
이마리오 : 딱 보면 독일스럽잖아요. <내일>은 프랑스답고요. 제작자들은 그런 의도가 없겠지만 만든 작품의 결이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옆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들이 굉장히 다르죠. 다큐멘터리가 그런 점이 특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르인 거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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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을 마치며
에드만 : 마지막이니까 저는 다들 걸고 있는 닉네임들이 궁금해요.
이마리오 : 모임에서 본 영화들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 어땠는지도 들어보고 싶네요.
시수 : 시수는 <라냐와 마지막 드래곤>이라고 디즈니영화인데 가장 최근에 봤던 영화 속 드래곤 이름이에요. 제가 모임에서 회의주의자적인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시수는 저랑 반대에요. (일동 웃음) 시수를 닮아보고자 해서 지었고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기회가 닿는 영화만 봐서 전문가분들이 선정해주는 다큐멘터리가 굉장히 재미있었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다 보러오지 못한 게 아쉬웠고요. 극영화만큼 다큐도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돼서 좋았습니다.
에드만 : 저는 몇 년 전에 영화음악 방송에서 소개하는 걸 듣고 영화 <토니 에드만>을 혼자 봤거든요. 세 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맨 마지막에 이네스라는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끝까지 보다가 마지막에 눈물이 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에드만은 주인공의 아버지 역이었어요. 저는 처음 이런 모임에 참석해봤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자기 생각을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이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고요. 다음 기획이 기대됩니다.
슈나드 : 저는 뮤지컬 영화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영화 <렌트>에 엔젤이라는 인물이 있어요. 그 인물의 풀네임에서 성을 따왔습니다. 엔젤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매료돼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엔젤이 북을 막 치면서 무대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요. 저는 솔직히 이 모임의 장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는 영화가 마치고 나서 뒤풀이하는 자리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번 모임을 통해서 평소에 관심 없었던 다큐의 매력을 알게 돼서 좋았고, 누군가의 생각이 나랑 같을 때 동질감을 느끼고 나랑 다를 땐 갸우뚱하면서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그 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서칭 포 슈가맨>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정말 다큐가 재밌다고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버마 VJ>는 참 마음이 아픈 영화였어요. 다큐멘터리가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큰 도구라는 걸 느끼게 해줘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대수 : 올드보이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제가 이런 걸 잘 못 정해요. (웃음) 제가 본 영화 중에 유일하게 뚜렷하게 기억나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라서 이걸로 정했고요. 저도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모임을 찾다가 작년에도 알게 됐고요. 작년엔 참여하지 못했고 올해엔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한 대서 사실 저는 다큐멘터리를 거의 본 적이 없거든요.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했는데 굉장히 재밌었고 안 보던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서칭 포 슈가맨> 같은 류가 잘 맞는 거 같아요. 재밌더라고요.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알게 돼서 종종 찾아볼 거 같아요.
몽상가 : 프랑스 영화 <몽상가들>을 좋아합니다. 주인공들이 부모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이고 철없이 자유분방하게 사는 영화에요. 뭔가 그런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붙잡히지 않는 문화 같은 것들을 꿈꾸다 보니까 좋아합니다. 저도 토론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 독서 모임도 오랫동안 운영해왔었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토론하는 게 색달랐어요. 그동안 여러분들의 다양한 시선들을 들을 수 있어서 되게 좋았어요. 앞으로 꾸준히 또 했으면 좋겠습니다.
찬실 : 저는 영화<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굉장히 유쾌하게 봤어요. 맨 마지막에 OST의 유쾌한 가사와 리듬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서 배우 윤여정이 맡은 할머니께서 한 줄짜리 시를 썼었는데 그거 보고 마음이 많이 울컥했었거든요. 그래서 닉네임을 찬실이라 지었습니다. 저는 강릉에서 산 지 1년이 됐어요. 삶이 무료하기도 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청하게 됐고요. 여기 와서 얘기를 들으러 온다는 생각으로 오는데 확실히 삶의 활력소가 되더라고요. 매주 화요일이 기다려지고 다음 화요일부턴 뭐 하고 지내야 하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되게 좋았습니다.
이마리오 : 저는 매년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샵을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는 처음이었어요. 굉장히 재밌었고요. 틀고 싶은 영화가 많았지만, 이왕이면 다양한 다큐를 보셨으면 좋겠다는 기준으로 6편을 선정했습니다. 의외로 좋고 재밌는 다큐멘터리가 매우 많거든요. 서칭 포 슈가맨처럼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나 굉장히 철학적인 다큐도 많고 다큐도 극영화만큼 다양한데 볼 수 있는 기회들이 한정적이고 제한적이다 보니까 좀 재미없는 다큐들 밖에 알려지는 것 같아서 작업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도 다큐멘터리에 많은 관심 부탁 바랍니다. 두 달 정도 매주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곰곰
[화양영화]는 매주 화요일 관객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입니다.
이번 3기는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화양영화: 화요일에 영화를 즐기는 모임]
<우리의 일용할 양식> 토크 & ‘화양영화 3기’를 마치며
2021.05.25.
진행 이마리오 감독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더 블랙> 연출)
참가 몽상가, 슈나드, 시수, 에드만, 오대수, 찬실,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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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리오 : 지금까지 봤던 다큐멘터리와는 좀 다른 형식이었는데 어떠셨어요?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보여줘도 다큐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일종의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의 메시지가 모르는 내용은 아닌데 그 상황을 실제로 영상에 담아서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 받는 느낌이 텍스트로 보는 거랑은 달라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찬실 : 제목 그대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식물 같은 경우 어떻게 재배되고 동물들은 어떻게 기계적으로 사육되다가 해체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책으로만 봤었지, 실제로 제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식물 같은 경우 별 느낌은 없었는데 동물들이 해체되는 건 뭐랄까요? 예전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떠올랐고요. 사람들이 먹어야 하니까 그런 과정이 있는 건데 한편으로는 마음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슈나드 : 첫 장면이 양쪽에 동물이 쭉 늘어져서 걸려 있고, 그 사이로 남자가 지나가는 장면이었는데 그때부터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감은 오더라고요. 우리가 먹는 양식이 결국은 어떤 다른 생명을 우리가 맘대로 죽여서 얻는 거라고 말하는 영화라고 예상했는데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탄소 배출량이나 동물권에 대한 사람의 인터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이는 장면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시수 : 영화의 형식이나 내용 다 신선했던 거 같아요. 제가 원래 극영화에선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님의 영화처럼 대사가 많이 없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다큐멘터리에도 이런 형식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마리오 : 이런 형식을 가진 영화가 한국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요. 이따금 영화제에 나오는 영화 중 제가 봤던 작품은 <4원소>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4요소인 물, 불, 흙, 바람을 테마로 한 영화가 있었어요. 물은 원양어선에서 고기 잡는 행위를 쫙 보여주고, 불은 소방관, 흙은 땅속에서 탄 캐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바람은 비행사들이 훈련하는 걸 쭉 보여줘요. 이런 다큐들이 간혹가다가 제작되긴 해요.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사, 내레이션, 인터뷰 없이 전달되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봐요. 너무 과하게 돼서 문제지 이야기는 정확히 전달되는 거 같아요.
에드만 : 영화 중간부터 느낀 건 ‘소외’였어요. 화면을 보면 어떤 소실점을 향해있거나 소실점에서 나오는데요. 대량의 식량들이 달려있는데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1명인 거죠. 육류 작업장에서는 다들 소음방지용 헤드셋을 끼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어떤 소통 없이 서로 소외시키는 느낌을 받았고요. 훌륭한 거 같아요. 아무 대사나 설명도 없이 이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요. 원제도 이건가요?
이마리오 : 독일어인데 영어로 하면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에드만 : 다른 제목이면 어떨까 했어요. 저한테는 내용이 먹는 것과 연관되지 않은 거 같았거든요. 행위로는 이해하겠는데 그게 식량이랑 꼭 연결되진 않았어요.
이마리오 : 그래서 의도적으로 중간에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계속 넣은 거 같아요. 만약에 밥 먹는 장면 없이 기르고 자르고 해체하는 장면만 나오면 느낌이 다를 텐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람들도 밥을 먹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오대수 : 화면구도가 보통 정 가운데에 주로 배치하고, 카메라도 거의 다 고정하는 식이잖아요. 평면화된 구도로 기계화된 과정을 표현한 거 같고요, 저는 사실 동물을 도축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 잔혹함에 대한 건 없이 봤거든요. 제목 그대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어떻게 가공되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동물을 가둬놓고 해체하는 장면만 나왔으면 이 영화의 메시지가 동물권을 무시하는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제목에 맞춰서 봤을 때 보면 동물 말고도 식물도 나오니까요. 우리가 못 보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점에서 재밌었어요. 근데 확실히 폭력적이긴 하더라고요.
이마리오 : 카메라 앵글이 굉장히 감정이 배제되어 있잖아요. 감정적인 건 최대한 억제하면서 장면을 촬영하고, 주관이 최대한 개입되는 걸 막는 카메라의 위치에서 앵글을 잡았어요, 컷도 어떤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진 않아요. 관객이 판단하게 한 거 같고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우화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노동자들도 큰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부분일 뿐이고 말 그대로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는 거지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 않죠. 하지만 전체를 보면 대량생산 시스템 안에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용되고 있는 지점을 드러낸 거라고 봅니다.
슈나드 : 소금 광산에서의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이 사회를 이루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정말 많이 사용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한밤중에 재배하는 하우스에 불이 늘 켜져 있고, 기계 소리가 내내 들려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기 위한 과정이라지만 너무 과잉생산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몽상가 : 이 다큐가 독일에서 만들었다고 하니까 갑자기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얘기 듣기로 독일에선 녹색당 활동이 활발하고, 생명권을 중요시한대요. 인구 중 85%나 노동조합에 가입할 정도로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고요. 한편으론 TV 프로그램을 거의 안 본대요. 한 편의 드라마가 10년째 방영되기도 하고요. 그만큼 영상을 재밌게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를 많이 따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독일이 충분히 이런 다큐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슈나드 : 제 손으로 직접 야채를 산 적이 정말 없었어요. 최근에 동료분께서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를 어쩌다 받아서 먹게 됐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 먹으려고 보니까 너무 비싼 거예요. 내가 귀한 걸 받았었다는 걸 마트에서 느끼는 순간이었죠. (웃음)
이마리오 : 꾸러미라고 강릉에서 1년 정도 운영했던 게 있어요. 대규모 농사가 아니라 지역에 있는 소농들이 모여서 신청한 사람들한테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모아 보내주는 방식이었어요. 저도 신청해서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2주에 한 번씩 오는 야채랑 먹거리를 먹었었는데 판매자 입장에서는 지속할 만큼 수익이 안 나는 거죠. 대량생산 하면 가격이 싸지니까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요.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다기보다 넘어서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에드만 : 돼지한테 사료로 먹이는 옥수수가 돼지에게 안 가면 아프리카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돼지를 먹기 위해서 인구의 절반은 굶고 있는 거죠.
시수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보면 네슬레의 사례가 나오는데 남는 분유가 있어도 굶주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절대 주지 않고 다 폐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과잉 생산하는 이 시스템에서 그 부가 어디로 축적되는지 생각하게 되죠.
파이 : 전에 우리 다큐 <내일>을 같이 봤었잖아요. 두 영화가 사실 어떤 문제들은 공동체의 시선으로 보면 해결될 수 있는데 ‘상품’,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문제해결이 막혀버리는 상황을 말하는 거 같아요. <내일>은 좀 더 따뜻하게 말했다면 이 영화는 날카롭게 말한다고 느꼈어요.
이마리오 : 딱 보면 독일스럽잖아요. <내일>은 프랑스답고요. 제작자들은 그런 의도가 없겠지만 만든 작품의 결이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옆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들이 굉장히 다르죠. 다큐멘터리가 그런 점이 특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르인 거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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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을 마치며
에드만 : 마지막이니까 저는 다들 걸고 있는 닉네임들이 궁금해요.
이마리오 : 모임에서 본 영화들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 어땠는지도 들어보고 싶네요.
시수 : 시수는 <라냐와 마지막 드래곤>이라고 디즈니영화인데 가장 최근에 봤던 영화 속 드래곤 이름이에요. 제가 모임에서 회의주의자적인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시수는 저랑 반대에요. (일동 웃음) 시수를 닮아보고자 해서 지었고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기회가 닿는 영화만 봐서 전문가분들이 선정해주는 다큐멘터리가 굉장히 재미있었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다 보러오지 못한 게 아쉬웠고요. 극영화만큼 다큐도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돼서 좋았습니다.
에드만 : 저는 몇 년 전에 영화음악 방송에서 소개하는 걸 듣고 영화 <토니 에드만>을 혼자 봤거든요. 세 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맨 마지막에 이네스라는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끝까지 보다가 마지막에 눈물이 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에드만은 주인공의 아버지 역이었어요. 저는 처음 이런 모임에 참석해봤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자기 생각을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이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고요. 다음 기획이 기대됩니다.
슈나드 : 저는 뮤지컬 영화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영화 <렌트>에 엔젤이라는 인물이 있어요. 그 인물의 풀네임에서 성을 따왔습니다. 엔젤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매료돼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엔젤이 북을 막 치면서 무대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요. 저는 솔직히 이 모임의 장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는 영화가 마치고 나서 뒤풀이하는 자리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번 모임을 통해서 평소에 관심 없었던 다큐의 매력을 알게 돼서 좋았고, 누군가의 생각이 나랑 같을 때 동질감을 느끼고 나랑 다를 땐 갸우뚱하면서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그 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서칭 포 슈가맨>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정말 다큐가 재밌다고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버마 VJ>는 참 마음이 아픈 영화였어요. 다큐멘터리가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큰 도구라는 걸 느끼게 해줘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대수 : 올드보이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제가 이런 걸 잘 못 정해요. (웃음) 제가 본 영화 중에 유일하게 뚜렷하게 기억나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라서 이걸로 정했고요. 저도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모임을 찾다가 작년에도 알게 됐고요. 작년엔 참여하지 못했고 올해엔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한 대서 사실 저는 다큐멘터리를 거의 본 적이 없거든요.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했는데 굉장히 재밌었고 안 보던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서칭 포 슈가맨> 같은 류가 잘 맞는 거 같아요. 재밌더라고요.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알게 돼서 종종 찾아볼 거 같아요.
몽상가 : 프랑스 영화 <몽상가들>을 좋아합니다. 주인공들이 부모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이고 철없이 자유분방하게 사는 영화에요. 뭔가 그런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붙잡히지 않는 문화 같은 것들을 꿈꾸다 보니까 좋아합니다. 저도 토론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 독서 모임도 오랫동안 운영해왔었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토론하는 게 색달랐어요. 그동안 여러분들의 다양한 시선들을 들을 수 있어서 되게 좋았어요. 앞으로 꾸준히 또 했으면 좋겠습니다.
찬실 : 저는 영화<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굉장히 유쾌하게 봤어요. 맨 마지막에 OST의 유쾌한 가사와 리듬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서 배우 윤여정이 맡은 할머니께서 한 줄짜리 시를 썼었는데 그거 보고 마음이 많이 울컥했었거든요. 그래서 닉네임을 찬실이라 지었습니다. 저는 강릉에서 산 지 1년이 됐어요. 삶이 무료하기도 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청하게 됐고요. 여기 와서 얘기를 들으러 온다는 생각으로 오는데 확실히 삶의 활력소가 되더라고요. 매주 화요일이 기다려지고 다음 화요일부턴 뭐 하고 지내야 하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되게 좋았습니다.
이마리오 : 저는 매년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샵을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는 처음이었어요. 굉장히 재밌었고요. 틀고 싶은 영화가 많았지만, 이왕이면 다양한 다큐를 보셨으면 좋겠다는 기준으로 6편을 선정했습니다. 의외로 좋고 재밌는 다큐멘터리가 매우 많거든요. 서칭 포 슈가맨처럼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나 굉장히 철학적인 다큐도 많고 다큐도 극영화만큼 다양한데 볼 수 있는 기회들이 한정적이고 제한적이다 보니까 좀 재미없는 다큐들 밖에 알려지는 것 같아서 작업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도 다큐멘터리에 많은 관심 부탁 바랍니다. 두 달 정도 매주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곰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