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나는보리> 리뷰 특집 : 자신을 사랑하는 힘은 사랑하는 이들의 인정으로부터 자라난다 - 박유나

지역 커뮤니티 시네마 : <나는보리> 리뷰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가 5월 21일에 개봉했습니다. 강릉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작은 마음을 모아 <나는보리>를 응원하고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 리뷰 활동가들에게 원고를 부탁하였습니다. 영화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애정과 깊이를 가지고 <나는보리>를 보고, 듣고, 썼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힘은 사랑하는 이들의 인정으로부터 자라난다

/ 박유나 (신영 관객리뷰단)

 

영화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대로 보리(김아송)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영화의 첫 장면은 푸른빛 하늘을 배경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보리를 담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어쩐지 쓸쓸하다. 보리의 눈빛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또한 하늘을 배경으로 보리를 비춘다. 그런데 마지막의 하늘은 그저 맑고 시원하다. 영화는 보리를 하늘의 빛깔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보리의 어두움이 맑음으로 정화되는 과정을 주문진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매개로 표현한다.

 

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를 가족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의사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하는 일을 도맡고 있다. 어쩌면 보리가 짊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전달자의 역할이 영화 안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책임감 때문에 떠안고 있는 의무라기보다 보리가 태어나 자라면서 자연스레 부여된 일상으로 느껴진다.

 

보리의 가족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음성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있는 장면에서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소리가 없지만 적막하지는 않다. 보리의 가족은 수화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짓과 풍부한 표정은 이들이 진정 화목한 가족임을 느끼게 한다. 보리는 이런 가족들의 대화를 지켜본다. 그리고 수화를 하며 가족들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보리가 그런 이름을 가진 이유는 보리가 대화를 ‘보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보리의 소원은 소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의 소원에는 ‘가족들처럼’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있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자신만 다르다는 사실은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소외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보리는 자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소리가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를 잡아 당겨보고 볼륨을 최대치로 올린 음악을 하루종일 듣기도 한다. 심지어 물속에 얼굴을 파묻기도 한다. 영화는 청각손실을 위한 보리의 기상천외한 노력들을 비추어 관객들에게 가족들과 같아지고픈 보리의 심정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소리를 잃은 보리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 정우와 각각 나누는 대화 장면들이다. 보리가 가족들과 나눈 세 번의 대화는 사랑이라는 유대감으로 묶여있다. 낚시를 하며 나눈 아빠와의 대화에서 보리는 아빠에게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은 존재임을 확인받는다. 수박을 나눠 먹으며 엄마에게 들은 과거 이야기를 통해 엄마도 자신과 같이 들을 수 있었다는 약간의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외당하고 있다는 정우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들이 짊어지고 있는 다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거짓말이긴 하지만 보리는 잠시나마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가족들과 지낸다. 그런데 보리의 가족들은 보리가 소리를 잃기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예전과 같이 보리와 일상을 보낼 뿐이다. 여느 날의 일상처럼 가족들과 마루에 둘러앉은 보리는 자신이 소리를 잃게 되어 좋으냐고 가족들에게 묻는다. 그녀의 질문에 동생 정우(이린하)는 짜장면과 피자를 시켜 먹을 수 없어 싫다고 한다. 엄마(허지나)는 처음에는 슬펐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곽진석)는 보리가 들리든 들리지 않든 변한 것은 없다며 보리는 그저 자신의 예쁜 딸이라고 한다.

 

보리가 사랑하는 가족은 있는 그대로의 보리를 사랑한다. 보리가 가족들에게 정우가 받게 될 인공와우 수술의 비밀을 입을 열어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보리가 가족들의 사랑을 확실하게 알았기에 가능했다. 다시 소리가 들리는 세계로 복귀하면서 흘린 보리의 눈물은 보리의 거짓말이 그동안 보리를 힘들게 했던 외로움을 씻어버리기에 필요한 고통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비추는 보리의 표정은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사랑이 돋아나고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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