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마작> 리뷰 : 고루할지 몰라도, 결국엔 사랑이었다

 

<마작>

고루할지 몰라도, 결국엔 사랑이었다


 1990년대. ‘세기말’이라는 표현에 가장 적합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나날이 부흥하는 경제에 발맞추어 도시는 밤낮없이 화려한 치장과 요란한 소음으로 들썩이던 시절이었다. 술과 유흥에 취해있던 도시는 새벽의 스산한 기운이 몰려올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폭발할 듯 차오른 흥분을 감쪽같이 치워 버린다. 한 세기의 끝자락에 부여되는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감정에 걸맞게 그 시절 타이베이는 격동과 급변의 사회상과 경제 성장을 지렛대 삼아 무던히도 요동치고 있었나 보다.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 에드워드 양은 영화 <마작>을 통해 차갑고도 뜨거운, 오묘한 도시의 불빛 아래 일렁이는 청춘들의 궤적을 비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버블 경제 말엽 자유와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청년들의 좌충우돌은 어떤 감흥을 자아낼지 불현듯 호기심이 밀려온다.

 

 영화의 이야기는 홍어(당종성), 홍콩(장첸), 소부처(왕계찬), 룬룬(가우륜)으로 구성된 청년 집단의 비행과 범죄 행각을 골조에 두고 있다. 사기꾼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홍어와 용한 법사로 위장한 소부처가 유려한 언변으로 표적을 구워삶으면 홍콩은 그의 수려한 외모를 앞세워 표적을 유혹한다. 룬룬은 표적이 홍어의 농간에 넘어갈 수 있도록 표적이 당할 뻔한 사고를 일으키는 일종의 행동대장이다. 영화는 네 사람이 범죄에 가담하게 된 연유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네 사람의 일상은 시비를 가릴 새도 없이 곁에 있는 친구의 행동에 쉽게 물들어가는 치기 어린 시절의 한 대목을 비추는 듯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기를 치며 네온이 불타는 거리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클럽 ‘하드 록’으로 들어선 네 사람 앞에 사고처럼 프랑스 여인 마르트(비르지니 르두아앵)가 나타난다. 영국인 애인 마커스(닉 에릭슨)를 찾아 무작정 타이베이로 건너온 이 대책 없는 여인의 등장은 방향타를 잡지 않은 채 흘러가고만 있던 룬룬과 친구들의 일상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마르타가 하드 록에 등장한 다음 날 아침, 네 사람의 근거지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는 너무도 충격적인 광경이다.(장면이 이어지는 내내 필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전날 밤의 소동에서 마커스의 현재 애인인 엘리슨을 꾀어낸 홍콩은 그녀와 자신의 방에서 정사를 나눈 모양이다. 이를 알아챈 소부처는 자신들의 규칙에 따라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며 엘리슨을 덮치려고 한다. 당황한 엘리슨에게 홍콩은 자신과 정을 나눈 여인을 지켜주기는커녕 체면을 운운하며 외려 동료들과 관계하라는 듯 엘리슨의 등을 떠민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이들의 대화 속에서 여인은 그저 성욕 해소를 위한 노리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슨이 입을 맞추었다며 길길이 화를 내는 소부처를 보며 필자의 예감은 확신으로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야 만다. 영화는 마르트를 계기로 네 명의 청년에게 각양각색의 형태와 질감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것의 가치에 대한 고뇌를 탐색하려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그들이 무지했던(혹은 외면했던) 지구상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황홀경을 알아차리게 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영화가 네 사람에게 부여한 사랑을 일깨우는 관문은 스치기만 해도 베일만큼 날이 잔뜩 서 있다. 홍어는 빚쟁이에게 쫓기며 몸을 숨긴 아버지가 예전의 멋진 (사기꾼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염원하고 있다. 아버지의 복귀를 위해 자식으로서 계책을 세우고 아버지를 회유하지만, 홍어의 아비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며 아들의 간언을 듣지 않는다. 분노한 홍어는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는 무뢰배들과 함께 아버지의 은신처에 들이닥쳤을 때, 홍어의 눈앞에는 정인과 함께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평안한 얼굴이 가득 채운다. 홍콩은 안젤라(오가려)라는 마성의 여인에게 홀려 몸과 마음을 빼앗기지만, 안젤라는 이전에 홍콩이 다른 여인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홍콩을 성 노리개 정도로 여긴다. 둘만의 은밀하고 농염한 밤을 기대했던 홍콩이 안젤라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희롱당하는 장면에서 홍콩에게 매달리던 엘리슨이 겹쳐 보인다. 사랑을 목도한 충격으로 분노에 휩싸인 홍어와 수치심에 오열을 토하는 홍콩. 소부처의 말처럼 사랑 따위에 쉽게 붕괴한 이들은 결코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에게 사랑에 덴 상처를 회복할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사랑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무지(無知)의 대가로 네 사람 안에 공고했던 ‘공유’의 규칙은 무너져 내린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는 약속이 무력해지고서야 비로소 네 사람은 각자의 고유한 내면과 마주하고 자신의 감정을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어쩌면 이런 좌절의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홀로 서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룬룬을 통해 절망을 딛고 자립하려는 청춘의 분투를 그려보려는 듯 보인다. 룬룬은 마르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탓에 한 차례 마르타를 떠나보낸다. 하지만 마르타를 향한 마음을 알아차린 룬룬은 마르타를 놓치지 않으려 그녀를 찾아 나선다. 홍어의 말에만 움직이던 룬룬이, 마르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저하던 룬룬이 드디어 자기 마음을 따르는 순간이다. 거리를 헤매던 룬룬이 마침내 마르타와 마주 섰을 때,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듯 입을 맞추었을 때, 이 무미건조한 도시 위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사랑의 기운에 또다시 희망을 보고야 만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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