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기(少年期). 찬란하고 싱그러운 삶의 한 시절은 눈 깜박할 새도 없이 빠르게도 지나가 버린다. 어린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꿈이라는 이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성장이라는 과정을 겪어나가며 거대하던 몸체가 얄팍하게도 메말라간다. 그러고 보면 꿈이라는 게 참 허망한 구석이 있다. 뭐가 돼도 될 것만 같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출처 없는 자신감에 힘을 북돋아 줄 때는 언제고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가장 빠르게 종적을 감추곤 한다. 온 마음을 바쳐 믿었건만 꿈은 그것을 품은 자의 신의를 너무도 쉽게 저버린다. 그런 점에서 <보이 인 더 풀>은 찰나에 스러져간 꿈의 잔상을 딛고 서야만 했던 지난날의 청춘을 향한 송가처럼 느껴진다. 한때 꿈을 먹고 자란 어린 자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했을 절망과 좌절을 위로하는 듯한 시선을 카메라가 담은 장면들에서부터 헤아려보게 된다. 비록 푸릇푸릇했던 시기에 고대하던 열매를 맺지 못했을지라도 괜찮다, 그대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잔뜩 위축된 존재의 등허리를 토닥여주는 감각을 필자는 이 영화를 보는 시간을 통해 경험하였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원치 않는 전학을 가야 하는 어린 석영(이예원)은 잔뜩 뿔이 난 모양이다. 자동차 뒷좌석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거칠게 유리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이사한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 쿵쿵 발을 구르며 석영은 자신의 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아무래도 석영은 이사 때문에 좋아하는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큰 모양이다. 성질을 부리는 중에도 한 손에 든 수영대회 트로피를 챙기는 걸 보면 어린 석영에게 수영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자랑거리처럼 보인다. 그런 창창한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석영이 어린 우주(양희원)를 만난 것은 그녀 인생 최초이자 최대의 전환점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석영에게도 생애 최초이자 최대의 전환점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석영이 우주에게 처음 품은 감정은 호기심일 것이다. 수영장 구석 웅크리고 있는 저 작은 남자아이가 누구인지, 그 소년이 어떻게 수영을 잘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소년은 수영장에서 양말을 벗지 않는지. 석영이 우주에 대해 궁금해한 덕분에 소년과 소녀의 만남으로부터 의미가 발현한다. 그 의미가 마냥 달콤하고 따뜻하면 좋았으련만 우주와 석영은 서로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긴다.
석영의 집요한 관심을 받는 동안 의심과 경계로 꽝꽝 얼어붙은 우주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나 보다. 우주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기 발에 물갈퀴가 있다는) 비밀을 석영에게만 터놓는다. 우주의 특별함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석영은 처음에는 마냥 행복해 보인다. 우주와 이곳에서 평생 함께 유영할 생각에 들뜬 마음이 석영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보면 절로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석영은 우주가 지닌 특별함에 불안함을 느낀다. 우주의 몸놀림을 눈여겨보는 수영부 코치의 시선에는 석영이 담기지 않는다. 석영과 우주의 수영 강사가 석영의 잠재력에 대해 피력해 보지만 코치는 성장기 여학생의 신체 변화를 이유로 석영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석영의 꿈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다. 자기 꿈이 무너져가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석영은 다짜고짜 우주에게 수영 시합을 제안한다. 석영의 발악은 물살을 가르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우주의 헤엄에 처연하게도 물거품처럼 사그라든다. 수영하는 우주를 멍하니 바라보는 물 안에 선 석영 위로 수영대회 신기록을 경신한 청소년 우주(이민재)가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그 뒤로 등장한 우주의 뉴스 클립 영상을 지켜보는 청소년 석영(효우)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석영은 주변의 존재들이 그들의 특별한 재능을 키워나가기 위해 그녀와 일상을 공유하던 공간에서 이탈하는 동안 덩그러니 그 공간에 남겨진다.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떠난 우주가 그러하였고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석영의 여동생도 배움을 위해 집을 떠나 상경했다. 고3이 된 석영은 보통의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을 쓰게 삼키고 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눌러보기도 하고 물 근처에 어슬렁대기도 하지만 무엇 하나 석영의 손에 꽉 잡히지는 않는 모양이다. 밤길을 오가는 석영의 발걸음에 힘이 없어 보이는 건 지레짐작만은 아닐 거라고 본다. 홀로 남은 석영에게 갑작스레 고향에 돌아온 우주의 등장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을지 필자는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물갈퀴가 옅어지고 있다는 우주의 고백이 석영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을지 복에 겨운 소리라며 성이 났을지 지금도 궁금할 따름이다. 평생 함께 수영하자던, 비밀을 꼭 지켜달라던 석영과 우주가 나눈 어린 날의 약속은 참 가벼이도 흩어졌다. 허나, 수년이 흘러 성인이 된 석영과 우주가 물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만났음에 약간의 희망을 느낀다. 석영이 우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우주가 석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빛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함께 나눈 유년의 특별한 순간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그 시간을 양분 삼아 석영과 우주는 평범한 어른의 일상에 발 딛고 설 수 있었으리라.
<보이 인 더 풀>
특별함이 가라앉은 자리에서 평범함을 딛고 일어서기
소년기(少年期). 찬란하고 싱그러운 삶의 한 시절은 눈 깜박할 새도 없이 빠르게도 지나가 버린다. 어린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꿈이라는 이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성장이라는 과정을 겪어나가며 거대하던 몸체가 얄팍하게도 메말라간다. 그러고 보면 꿈이라는 게 참 허망한 구석이 있다. 뭐가 돼도 될 것만 같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출처 없는 자신감에 힘을 북돋아 줄 때는 언제고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가장 빠르게 종적을 감추곤 한다. 온 마음을 바쳐 믿었건만 꿈은 그것을 품은 자의 신의를 너무도 쉽게 저버린다. 그런 점에서 <보이 인 더 풀>은 찰나에 스러져간 꿈의 잔상을 딛고 서야만 했던 지난날의 청춘을 향한 송가처럼 느껴진다. 한때 꿈을 먹고 자란 어린 자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했을 절망과 좌절을 위로하는 듯한 시선을 카메라가 담은 장면들에서부터 헤아려보게 된다. 비록 푸릇푸릇했던 시기에 고대하던 열매를 맺지 못했을지라도 괜찮다, 그대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잔뜩 위축된 존재의 등허리를 토닥여주는 감각을 필자는 이 영화를 보는 시간을 통해 경험하였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원치 않는 전학을 가야 하는 어린 석영(이예원)은 잔뜩 뿔이 난 모양이다. 자동차 뒷좌석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거칠게 유리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이사한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 쿵쿵 발을 구르며 석영은 자신의 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아무래도 석영은 이사 때문에 좋아하는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큰 모양이다. 성질을 부리는 중에도 한 손에 든 수영대회 트로피를 챙기는 걸 보면 어린 석영에게 수영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자랑거리처럼 보인다. 그런 창창한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석영이 어린 우주(양희원)를 만난 것은 그녀 인생 최초이자 최대의 전환점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석영에게도 생애 최초이자 최대의 전환점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석영이 우주에게 처음 품은 감정은 호기심일 것이다. 수영장 구석 웅크리고 있는 저 작은 남자아이가 누구인지, 그 소년이 어떻게 수영을 잘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소년은 수영장에서 양말을 벗지 않는지. 석영이 우주에 대해 궁금해한 덕분에 소년과 소녀의 만남으로부터 의미가 발현한다. 그 의미가 마냥 달콤하고 따뜻하면 좋았으련만 우주와 석영은 서로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긴다.
석영의 집요한 관심을 받는 동안 의심과 경계로 꽝꽝 얼어붙은 우주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나 보다. 우주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기 발에 물갈퀴가 있다는) 비밀을 석영에게만 터놓는다. 우주의 특별함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석영은 처음에는 마냥 행복해 보인다. 우주와 이곳에서 평생 함께 유영할 생각에 들뜬 마음이 석영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보면 절로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석영은 우주가 지닌 특별함에 불안함을 느낀다. 우주의 몸놀림을 눈여겨보는 수영부 코치의 시선에는 석영이 담기지 않는다. 석영과 우주의 수영 강사가 석영의 잠재력에 대해 피력해 보지만 코치는 성장기 여학생의 신체 변화를 이유로 석영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석영의 꿈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다. 자기 꿈이 무너져가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석영은 다짜고짜 우주에게 수영 시합을 제안한다. 석영의 발악은 물살을 가르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우주의 헤엄에 처연하게도 물거품처럼 사그라든다. 수영하는 우주를 멍하니 바라보는 물 안에 선 석영 위로 수영대회 신기록을 경신한 청소년 우주(이민재)가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그 뒤로 등장한 우주의 뉴스 클립 영상을 지켜보는 청소년 석영(효우)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석영은 주변의 존재들이 그들의 특별한 재능을 키워나가기 위해 그녀와 일상을 공유하던 공간에서 이탈하는 동안 덩그러니 그 공간에 남겨진다.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떠난 우주가 그러하였고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석영의 여동생도 배움을 위해 집을 떠나 상경했다. 고3이 된 석영은 보통의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을 쓰게 삼키고 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눌러보기도 하고 물 근처에 어슬렁대기도 하지만 무엇 하나 석영의 손에 꽉 잡히지는 않는 모양이다. 밤길을 오가는 석영의 발걸음에 힘이 없어 보이는 건 지레짐작만은 아닐 거라고 본다. 홀로 남은 석영에게 갑작스레 고향에 돌아온 우주의 등장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을지 필자는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물갈퀴가 옅어지고 있다는 우주의 고백이 석영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을지 복에 겨운 소리라며 성이 났을지 지금도 궁금할 따름이다. 평생 함께 수영하자던, 비밀을 꼭 지켜달라던 석영과 우주가 나눈 어린 날의 약속은 참 가벼이도 흩어졌다. 허나, 수년이 흘러 성인이 된 석영과 우주가 물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만났음에 약간의 희망을 느낀다. 석영이 우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우주가 석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빛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함께 나눈 유년의 특별한 순간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그 시간을 양분 삼아 석영과 우주는 평범한 어른의 일상에 발 딛고 설 수 있었으리라.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