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국보> 리뷰 : 예술의 극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국보> 

예술의 극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분야를 막론하고 극치(極致)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는 자의 삶에는 특유의 광기가 서려 있다. 때때로는 그의 집착이 어딘가에 미친 사람의 것처럼 보여 두렵기도 하고, 때때로는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서 발산하는 찬란한 빛에 매료되기도 한다. 경지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 어찌 평탄하고 순조롭겠는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길이란 본디 좁고 험준하여 그 길에 들어서려는 이들에게 한시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한 번의 실수는 힘겹게 오른 길이 무색하게 도전자를 길 아래로 밀어내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수없는 고난과 좌절을 견뎌냈기에 (결함투성이의 인간이지만)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겁 없이 질주해 온 그를 보며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고야 만다. 영화 <국보>는 감독 이상일이 <악인>, <분노>에 이어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토대로 스크린에 그려낸 작품이다. <국보>는 가부키라 불리는 세계에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려 했던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다. 몸과 마음을 바쳐 재능을 연마한 권위자의 일생은 끝끝내 눈앞을 가득 채울 정도의 광휘로운 전경을 선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영화 속에 담아낸 가부키 배우의 화려하고 고독한 향연을 통해 관객들이 어떤 광경을 목격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걸까.


영화의 흐름은 키쿠오(요시자와 료)가 3대 하나이 한지로의 이름으로 가부키 배우의 정점인 국보(國寶)로 임명되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따라간다. 불운한 사건으로 아버지를 여읜 어린 키쿠오(쿠로카와 소야)는 소년의 재능을 눈여겨본 당대 유명 가부키 배우 2대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손에 맡겨진다. 야쿠자 두목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대를 이을 운명이었던 소년은 예정에도 없던 가부키 세계로 흘러 들어가 가부키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버린 것이다. 애석하게도 본래부터 가부키계는 지독한 혈연 중심 사회인지라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터부시 한다. 키쿠오는 혈족에게만 이름을 물려주려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가부키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신사 앞에서 신에게 소원을 비는 대신 가부키를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악마와 거래를 하였다고 말하는 키쿠오의 눈빛은 너무도 스산하다. 가부키를 위해서라면 사랑도 가족도 최소한의 양심마저도 저버릴 수 있을 키쿠오는 가부키의 무엇에 미쳐 있었던 것인지 너무도 궁금하다. 필자는 아직까지도 키쿠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서 대책도 없이 나아가는 키쿠오의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분명 처연하지만 동시에 우아하고 고상한 품격이 느껴진다. 생애 단 한 번이라도 욕심내는 무언가를 위하여 생을 바쳐 내달려 본 적이 있었는지 필자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순간이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는 키쿠오의 삶이 몰인정한 욕망의 화신이 맞이한 쓸쓸한 말로로 그려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에는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이 크다고 본다. 유년시절의 키쿠오가 가부키에 눈을 뜬 순간부터 그의 곁에는 슌스케가 있었다. 키쿠오는 하나이계의 적장자인 슌스케와 동고동락하며 수없는 연습과 공연을 함께한 시간 속에서 가부키 배우로 성장해 간다. 슌스케 역시 재능이 넘치는 키쿠오를 견지하며 당연하게 자신이 물려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예명(藝名)의 가치를 무겁게 깨닫고 진짜 배우가 되고자 정진하기 시작한다. 경쟁의 관계로 얽힌 라이벌이라는 존재의 숙명일까. 키쿠오와 슌스케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시기와 동경이 흐른다. 2대 한지로의 대역으로 키쿠오가 <소네자키 동반 자살> 공연을 섰을 때, 분장실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긴장과 압박으로 화장을 이어가지 못하는 키쿠오. 슌스케는 키쿠오의 손에서 붓을 빼 들어 키쿠오의 눈매에 대신 화장을 해준다. 그런 슌스케를 향해 키쿠오는 “슌스케의 피가 너무 갖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슌스케의 피를 꿀꺽꿀꺽 마시고 싶어.”라고 말한다. 그런 키쿠오를 보며 슌스케는 “너에게는 예(재능)가 있지 않느냐?”라고 답한다. 가부키를 향한 애정과 원망이 뒤섞인 마음을 어찌할지 몰라 서로가 지닌 것을 갈망하고 있는 키쿠오와 슌스케를 보며 순도 높은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다.

 

영화는 가부키를 이어가고자 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키쿠오와 슌스케를 통해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쉽사리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피(혈족)와 예(재능)와는 또 다른 영역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하나의 결승선을 향해 전진하는 키쿠오와 슌스케는 상승과 추락을 번갈아 하다가 이윽고 한 지점에서 만나 하나의 무대를 장식한다. 슌스케와 함께 한 키쿠오의 삶은 곧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스크린 위에 재현한 세 개의 무대는 키쿠오의 일생을 함축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아가씨의 감정을 아름다운 춤으로 표현한 <도죠지의 두 사람>을 보며 가부키 배우로 이름을 알린 키쿠오와 슌스케의 시작이자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다시 함께 한 재회의 시절을 은유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이 다음 생에 하나가 되기 위해 함께 생을 마감하는 <소네자키 동반 자살>의 무대에 선 키쿠오와 슌스케의 열연을 보며 영화는 가부키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만기쿠(다나카 민)에 이어 국보에 자리에 오른 키쿠오의 <백로 이야기>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백로의 몸짓에서 평생에 걸쳐 가부키를 열망한 키쿠오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무대에 설 때마다 키쿠오가 보고자 했던 그 하나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양과 질감으로 빛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것은 극치에 선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경관일 테니.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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