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세계의 주인> 리뷰 :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 나

<세계의 주인>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 나


 우연을 가장한 불행은 한 인간이 아름드리 일궈온 일상의 궤적을 일그러뜨린다. 신이라는 존재는 필시 저마다의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련을 내린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애 전반을 지배할 정도로 슬프고 아픈 기억을 남기는 건 너무도 가혹한 처사이지 않은가. 웃으며 지내기에도 아까운 우리의 생에 어찌하여 고통이 지배하는 시기가 필요한 건지.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성장한다고들 하지만 상처 자리에 남은 흔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내 삶을 그냥 내버려 둬

더 이상 간섭하지 마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세상으로

난 다시 태어나려 해

 

 주인(서수빈)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서 불현듯 임상아의 노래 <뮤지컬>의 가사가 입안을 맴돌았다. 참 이토록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구호를 되뇌며 씩씩하고 명랑하게 나아가는 소녀를 그 누가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과 주인을 둘러싼 이들에게 괜찮지 않겠지만 괜찮아지기를, 힘들겠지만 또다시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영화 <주인의 세계>는 회복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서수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시작에서 비춘 주인의 일상은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운동 신경도 좋아 보이고, 교우관계도 넓어 보이고, 연애 전선도 순항으로 보이고, 선생님의 신임도 한 몸에 받는 것으로 보이는 주인의 고교 일상은 말 그대로 ‘핵인싸’의 전형이다. 집안에서의 주인은 든든한 맏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엄마 태선(장혜진)을 도와 동생 해인(이재희)을 챙기고, 난장판이 된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그리고 거실에 둘러앉아 해인의 어설픈 마술쇼를 응원하는 주인과 태선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연하다. 정말이지 잘 살아가고 있는 소녀의 일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호(김정식)가 교내에서 진행하는 서명운동을 계기로 마냥 좋아 보이는 주인의 일상에서 밑바닥 어딘가에 감춰진 어둠이 고개를 쳐들고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한다.

 

 바쁜 아버지와 함께 어린 여동생 누리(박지윤)를 돌보는 수호는 8년 전, 교도소에 수감된 아동 성범죄자가 곧 출소를 앞두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자가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온다고 하니 불안감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심지어 수호와 누리의 통학로에 ‘그’ 아동 성범죄자의 집이 있다.) 어린 동생의 안전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수호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성범죄자 출소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한다. 수업 시간을 빌려 학우들 앞에서 서명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촉구하는 수호의 목소리 위로 카메라는 심드렁한 주인의 모습을 비춘다. 관심 없는 듯 손톱을 정리하는 주인의 태도에 신경이 쓰인다. 서명을 받으러 온 수호에게 주인은 ‘성폭행 범죄는 피해자의 영혼을 완전히 파괴하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라는 문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서명을 거부한다. 겉으로만 보면 옳은 일을 하는 수호를 업신여기는 주인이 몰인정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내를 파보면 주인 역시 수호처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회복의 과정에는 당연하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주인은 오로지 괜찮아지기 위해 삶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주인은 괜찮아지는 것 외에 또 다른 곳에 사용할 여력을 남기지 못한다. 주인은 지금까지 괜찮아진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프다는 감각을 외면하고 있었다. 주인이 억지로 붙잡아둔 ‘괜찮아진’ 상태는 수호와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주인의 손을 잠시 놓아준다. 그리고 그제야 주인은 아프다는 감각을 인지하는 데 삶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태선과 나란히 앉은 차 안에서 울분을 터트리는 주인을 보며 필자는 슬프고 안쓰러운 감정에 사로잡힌 동시에 이상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모든 상황을 웃음으로 포장하는 주인의 시간, 매일매일 술로 버텨내는 태선의 시간, 가족을 떠나 시골에 틀어박힌 주인의 아빠 기동(이석훈)의 시간. 주인과 주인의 가족들이 괜찮아지려고 보내온 시간 속에 사실은 아물지 못한 상처가 깃들어 있었다. 아픔을 알아차리고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모순적이지만 ‘괜찮아지기 위한’ 삶의 에너지가 채워진다.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라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그러니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아

 

 임상아의 노래 <뮤지컬>의 마지막 노랫말로 주인이 앞으로 나아갈 인생을 응원하고자 한다. 아마도 과거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회복에 회복을 더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회복의 순간을 지나 보낼 주인의 삶이겠지만, 그럼에도 ‘아직 망가지지 않은’ 주인의 삶은 주인이 이끄는 대로 나아갈 테니.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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