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러 넘버 3>
바람에 깃든 정령의 작별 인사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예감이 들게 한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속 도서관의 한 장면에서도 그렇고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슬피 우는 주인공(전지현) 앞에서 갑작스럽게 펄럭이는 하얀색 커튼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정령(精靈)의 등장을 감지한다. 실존과 믿음의 여하를 막론하고 이러한 신비한 현상(혹은 존재)은 남겨진 자의 애상과 떠나간 자의 염려를 조금이나마 덜어내어 주기도 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신작 <미러 넘버 3>는 물(<운디네>)과 불(<어파이어>)을 모티프로 만든 두 전작에 이어 바람을 상실과 그리움으로 은유하며 ‘원소 3부작’의 종장을 완성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라우라(파올라 베어)의 집 베란다에서 휘날리는 파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서도 위와 마찬가지로 기묘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찰나와 같은 재회의 끝에는 여지없이 이별이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부재한 이후에도 남겨진 자들이 부디 남은 생을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바람에 실려 올 때면 여지없이 짙고 어두운 죽음의 기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파문이 일렁이는 강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라우라 앞으로 작은 배 하나가 지나간다. 배 위에서 노를 젓는 자는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려 조금은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라우라를 지나쳐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그에게서 죽음의 강을 지키는 뱃사공 카론의 실루엣이 느껴진다. 물론, 화면 속 사공의 배에 이미 죽은 자의 혼이 실려있는지 아니면 그 배가 혼백을 실으러 가는 중인지 관객은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승에 잡혀있는 인간이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필자는 영화의 시작(강가를 지나는 배, 나부끼는 파란 커튼)에서부터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영혼이 화면 안에 현형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존재가 라우라의 곁에 맴돌고 있음을 전제에 두고 작품을 감상하였다. 라우라는 내키지 않는 여행길에 올랐다가 금세 다시 돌아가는 동안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로 곁에 서 있는 중년 여성 베티(바르바라 아우어)와 연달아 눈이 마주친다. 라우라와 동행한 이들은 베티를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데, 유달리 라우라에게만 베티가 잘 보이는 모양이다. 그것은 베티도 마찬가지인 듯 베티는 뚫어져라 라우라를 응시하고 그녀의 시선은 라우라의 궤적을 따라간다. 라우라와 베티, 두 연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강하게 확신하는 순간이다.
확신은 현실이 되어 예기치 못한 사고를 일으킨다. 라우라를 태운 차는 베티의 집 앞을 지나고 얼마 못 가 전복된다. 운전하던 라우라의 연인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 듯 보이고, 차에서 튕겨 나가 들판에 떨어진 라우라는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몽롱할 뿐 성한 데 없이 멀쩡하다. 사고를 목격한 베티가 라우라를 깨웠을 때, 이전의 무기력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던 라우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밝고 기운찬 라우라가 나타난다. 병원을 가는 대신 자신을 구해준 베티의 집에 묵고 싶다는 라우라의 당찬 요구에 베티는 슬픔이 깔린 벅찬 표정을 지으며 라우라의 부탁을 들어준다. 현실에서 일어났더라면 분명 호의를 넘어선 권리를 운운하며 논란을 일으켰을 상황이다. 다행히도 영화이기에 필자의 상상은 라우라에게 벌어진 기적과 그녀의 기행에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라우라의 곁에 맴돌던 정령이 라우라를 지켜준 것이라면 그녀를 살려준 대가로 정령이 잠시간 라우라의 몸을 빌린 것이라면 그리고 그 정령이 베티와 생전에 연이 있었다면.
필자는 베티와 정령의 관계를 영화 속에서 은근히 자주 언급되는 ‘옐레나’라는 이름을 통해 유추해 본다. 베티는 자신에게 소중했던 옐레나라는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잃은 것 같다.(옐레나의 사연은 영화의 말미, 베티의 아들 막스의 폭로(에 가까운 절규)로 밝혀진다.) 아마도 옐레나가 사라지고 난 후 베티의 삶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라우라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베티의 삶에 새로운 생기가 흘러나온다. 라우라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라우라와 함께 울타리를 페인트칠하는 사이 베티가 몇 번이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라우라의 등장이 우연이든 인연이든 아니면 기적이든 간에 베티의 시간은 라우라를 구심으로 다시 앞으로 흘러나갈 힘을 얻은 모양이다. 오랜 기간 방치하였던 허브 텃밭을 라우라의 손을 빌려 다시 일구고 고장 난 집안의 물건들(물이 새는 수도, 자전거, 식기세척기)을 하나둘 고치거나 새로 장만한다. 무엇보다, 베티의 남은 가족들(남편과 아들)이 라우라를 매개로 다시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교체하고 수리된 것들이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가동한다는 것에서 크나큰 상심 후에 이어질 삶에 희망을 느낀다. 그러니, 떠나간 자신(옐레나) 때문에 남겨진 자들(베티와 그녀의 가족들)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정령)의 작별 인사가 바람이 멈춘 후에도 그 위력이 건재하기를.
- 관객리뷰단 박유나
<미러 넘버 3>
바람에 깃든 정령의 작별 인사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예감이 들게 한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속 도서관의 한 장면에서도 그렇고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슬피 우는 주인공(전지현) 앞에서 갑작스럽게 펄럭이는 하얀색 커튼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정령(精靈)의 등장을 감지한다. 실존과 믿음의 여하를 막론하고 이러한 신비한 현상(혹은 존재)은 남겨진 자의 애상과 떠나간 자의 염려를 조금이나마 덜어내어 주기도 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신작 <미러 넘버 3>는 물(<운디네>)과 불(<어파이어>)을 모티프로 만든 두 전작에 이어 바람을 상실과 그리움으로 은유하며 ‘원소 3부작’의 종장을 완성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라우라(파올라 베어)의 집 베란다에서 휘날리는 파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서도 위와 마찬가지로 기묘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찰나와 같은 재회의 끝에는 여지없이 이별이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부재한 이후에도 남겨진 자들이 부디 남은 생을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바람에 실려 올 때면 여지없이 짙고 어두운 죽음의 기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파문이 일렁이는 강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라우라 앞으로 작은 배 하나가 지나간다. 배 위에서 노를 젓는 자는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려 조금은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라우라를 지나쳐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그에게서 죽음의 강을 지키는 뱃사공 카론의 실루엣이 느껴진다. 물론, 화면 속 사공의 배에 이미 죽은 자의 혼이 실려있는지 아니면 그 배가 혼백을 실으러 가는 중인지 관객은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승에 잡혀있는 인간이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필자는 영화의 시작(강가를 지나는 배, 나부끼는 파란 커튼)에서부터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영혼이 화면 안에 현형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존재가 라우라의 곁에 맴돌고 있음을 전제에 두고 작품을 감상하였다. 라우라는 내키지 않는 여행길에 올랐다가 금세 다시 돌아가는 동안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로 곁에 서 있는 중년 여성 베티(바르바라 아우어)와 연달아 눈이 마주친다. 라우라와 동행한 이들은 베티를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데, 유달리 라우라에게만 베티가 잘 보이는 모양이다. 그것은 베티도 마찬가지인 듯 베티는 뚫어져라 라우라를 응시하고 그녀의 시선은 라우라의 궤적을 따라간다. 라우라와 베티, 두 연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강하게 확신하는 순간이다.
확신은 현실이 되어 예기치 못한 사고를 일으킨다. 라우라를 태운 차는 베티의 집 앞을 지나고 얼마 못 가 전복된다. 운전하던 라우라의 연인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 듯 보이고, 차에서 튕겨 나가 들판에 떨어진 라우라는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몽롱할 뿐 성한 데 없이 멀쩡하다. 사고를 목격한 베티가 라우라를 깨웠을 때, 이전의 무기력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던 라우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밝고 기운찬 라우라가 나타난다. 병원을 가는 대신 자신을 구해준 베티의 집에 묵고 싶다는 라우라의 당찬 요구에 베티는 슬픔이 깔린 벅찬 표정을 지으며 라우라의 부탁을 들어준다. 현실에서 일어났더라면 분명 호의를 넘어선 권리를 운운하며 논란을 일으켰을 상황이다. 다행히도 영화이기에 필자의 상상은 라우라에게 벌어진 기적과 그녀의 기행에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라우라의 곁에 맴돌던 정령이 라우라를 지켜준 것이라면 그녀를 살려준 대가로 정령이 잠시간 라우라의 몸을 빌린 것이라면 그리고 그 정령이 베티와 생전에 연이 있었다면.
필자는 베티와 정령의 관계를 영화 속에서 은근히 자주 언급되는 ‘옐레나’라는 이름을 통해 유추해 본다. 베티는 자신에게 소중했던 옐레나라는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잃은 것 같다.(옐레나의 사연은 영화의 말미, 베티의 아들 막스의 폭로(에 가까운 절규)로 밝혀진다.) 아마도 옐레나가 사라지고 난 후 베티의 삶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라우라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베티의 삶에 새로운 생기가 흘러나온다. 라우라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라우라와 함께 울타리를 페인트칠하는 사이 베티가 몇 번이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라우라의 등장이 우연이든 인연이든 아니면 기적이든 간에 베티의 시간은 라우라를 구심으로 다시 앞으로 흘러나갈 힘을 얻은 모양이다. 오랜 기간 방치하였던 허브 텃밭을 라우라의 손을 빌려 다시 일구고 고장 난 집안의 물건들(물이 새는 수도, 자전거, 식기세척기)을 하나둘 고치거나 새로 장만한다. 무엇보다, 베티의 남은 가족들(남편과 아들)이 라우라를 매개로 다시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교체하고 수리된 것들이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가동한다는 것에서 크나큰 상심 후에 이어질 삶에 희망을 느낀다. 그러니, 떠나간 자신(옐레나) 때문에 남겨진 자들(베티와 그녀의 가족들)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정령)의 작별 인사가 바람이 멈춘 후에도 그 위력이 건재하기를.
- 관객리뷰단 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