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피크닉> 리뷰 : 세상의 종말을 위한 소풍


<피크닉>

세상의 종말을 위한 소풍


  감독 이와이 슌지가 지금껏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는 흑백의 이미지로 양분된다.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처럼 첫사랑의 아련하고도 달콤한 감각을 중심에 둔 ‘화이트 이와이’의 작품들의 대척점에는 <언두>,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슈슈의 모든 것>과 같이 어둡고 잔혹한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블랙 이와이’의 작품들이 있다. 이와이 슌지의 이 두 카테고리가 하나가 되어 ‘이와이 월드’를 구축한다고들 알려져 있다. 영화 <피크닉>은 초기 이와이 슌지의 작품 중 가장 명도가 낮은 작품으로 억압과 통제의 기제로 작동하는 권력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동시에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는 도로 한가운데 붉은 장미를 늘어놓으면서 시작된다. 한 여인이 땅바닥에 가지런히 붉은 장미를 내려놓는 과정은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보인다. 이 의식에는 이유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추모’의 감정이 피어오른다. 차분하게 진행되던 의식은 느닷없이 등장한 검은색 세단으로 인해 중단된다. 화면 끝에서 도로를 밀고 들어오는 검은 차량은 일렬로 늘어선 붉은 장미들을 매정하게 짓뭉개며 사라진다. 마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듯 으스러진 장미는 도로를 맥없이 나뒹군다. 좀 전까지 그것을 놓아두던 누군가의 가련한 마음이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장미를 짓밟으며 급하게도 내달린 검은 세단이 도착한 곳은 정신병원으로 보인다. 세단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코코(차라)는 하얀 근무복을 입고 있는 무리들에게 양팔이 잡힌 채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끌려가는 코코가 애처로이 뒤를 돌아보지만 세단을 몰고 온 그녀의 부모는 묵묵부답일 뿐이다. 병원에 수용당한 코코에게 간호사는 검은 옷을 벗고 하얀 환자복을 입을 것을 명령한다. 위압적인 상황에서 간호사의 지시를 따르는 코코지만, 검은 깃털 장식만은 빼앗기지 않으려 끝까지 저항한다. 강제입원 후 얼마되지 않아 코코는 까마귀의 깃털을 모아 날개 장식을 완성하고 하얀 환자복에 검은색 안료를 덕지덕지 바른다. 하얀 옷을 입은 군중 속에 검은 옷과 장식으로 무장한 코코는 회백색으로 잠식된 공간 속에서 생기를 내뿜는 유일한 존재로 느껴진다.

 

  검은 날개의 천사 코코는 순진무구하게도 일탈을 꿈꾼다. 코코의 곁에는 병원에서 조우한 두 소년 츠무지(아사노 타다노부), 사토루(하시즈메 코이치)가 있다. 담장 밖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무시무시’한 병원의 규율을 어길 수는 없기에 세 사람은 담벼락 위를 따라 거닐며 탈출을 감행한다. 좁디좁은 담벼락을 건너가는 세 사람은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공연자들처럼 보인다. 위태로움 속에 피어나는 긴박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세 사람의 여정에 활력과 환희를 불어넣는다. 이들이 지나는 길에 함께 보이는 우거진 녹음과 햇살,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 그 사이에 어지럽게 연결된 전선들은 사람 사는 동네의 한 대목을 표현하듯 보인다. 아늑한 동네의 편안함과 한적한 기운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담벼락 위에 선 세 사람을 바라보는 지상 사람들의 시선은 불안과 경멸로 가득 차 있다. 사회가 비행(非行)으로 규정한 행동을 코코와 두 소년이 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경계 밖에서 구금되어 있어야 할 존재들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일까. 담벼락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마음이 굳어간다.

 

  첫 번째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세 사람(정확히는 코코와 츠무지)은 병원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사지를 결박당하고 강제로 약물을 주입당한 것도 모자라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끔찍한 추행까지. 이들이 갇힌 병원에서의 치료는 매우 폭력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나 치료의 대상이 사회가 규정한 비정상적인 자들이기에 몰상식하고 몰인정한 대처는 깔끔하게 묵인되는 형국이다. 비정상적인 억압과 규율이 정상적 시스템의 일환으로 인정되는 부조리한 사회.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사람은 또다시 탈출을 감행한다. 계기가 있다면 츠무지의 손에 들린 성서-요한계시록-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7월 10일. 츠무지가 ‘세계 종말의 날’로 규정한 날이다. 아무리 신이 인간을 만들 때에 창조주인 자신과 닮도록 빚었다고 할지언정 세상이 끝나는 날을 제멋대로 정할 능력까지 부여하지는 않았으리라. 전능한 존재(신)가 존재하기에 믿음이 생겨나는지 아니면 전능한 존재(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그 존재가 증명되는 것인지 이들의 기행을 보며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의구심이 생겨난다. 얼토당토 하지 않는 츠무지의 확신을 따라 코코와 사토루는 기꺼이 동행한다. 츠무지가 성서를 읽고 알아챈 ‘세계 종말의 날’을 향해 코코와 츠무지 그리고 사토루는 다시금 담벼락 위에 선다. 죽음과 상실만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세 사람이 일순이라도 느꼈을 해방(혹은 자유)이 어떤 형태였을지 궁금해해도 되려나.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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