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우리들의 교복시절> 리뷰 : 스스로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스로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누군가 필자에게 이 영화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북아시아의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청춘영화”라 말해주고 싶다.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인정머리 하나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청소년들이 ‘나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지대 삼을 때까지 겪어내야 하는 지독한 열병의 시간을 아프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러고 보니, 대만 영화계는 교복과 합이 좋은가보다. 필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대만 영화들(<남색대문>,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등)을 떠올려보면 교복을 입은 고교생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교복’은 이전에 필자가 스크린에서 보아왔던 대만 영화 속 교복들이 내뿜는 보편적인 느낌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발산한다. 필자의 이전 경험 속 대만 영화의 교복이 ‘청춘’이나 ‘첫사랑’을 위시하는 싱그러움을 상징한다면 <우리들의 교복시절>의 교복이란 ‘계급’의 상징물로 보인다.

 

아이(진연비)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제일여고에 입학한다. 고교 입시를 망친 아이가 대만 최고의 입시명문에 들어갈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야간반에 진학하는 것. 아이의 엄마는 ‘졸업장에는 주간 야간 나눌 것 없이 같은 이름이 박힐 것이다, 야간반 출신 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게 고입 시험을 잘 보지 그랬냐.’라며 회유와 직설로 아이의 불만을 억누른다. 아이의 엄마는 이 모든 게 다 아이의 장래를 위한 일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외부인의 관점에서도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으로 명문고등학교 진학을 선점하는 작전은 꽤 합리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작전에는 아이가 감내해야 하는 모멸감에 대한 대응은 누락되어 있다. 입학식 날, 강당에 모인 신입생들은 주간반과 야간반으로 구획을 지어 착석한다. 교장의 환영사에는 학교에 대한 두 부류에 대한 차별이 묻어 나온다. 교장은 강당에 모인 입학생들을 향해 자랑스러운 제일여고의 학생이 된 것을 축하하나, 주간반이 ‘태양’이라면 야간반은 ‘달’이라 칭하며 그들의 서열을 분명하게 가른다.

 

같은 초록색 교복 상의에 주간반은 주황색 실로, 야간반은 하얀색 실로 가슴팍에 학번을 새겨 넣는다. 야간반 학생들은 주간반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강당에서 대기해야 하고, 주간반이 일과를 마치면 그들의 교실과 책상을 빌려 쓴다. 주간반 학생들은 당연하게도 야간반 학생들을 업신여긴다. 성적 미달로 정규반(주간반)에 입성하지 못한 이들이 편법(야간반)을 써서 명문고에 들어온 것이니까. 이토록 은근하지만 확실한 차별이 바로 아이가 졸업 전까지 견뎌내야 하는 치욕이다. 기형적인 입시경쟁이 만들어낸 성적 만능주의는 경쟁에 참전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만성적인 패배감을 강요한다. 경쟁의 우위를 점한 소수는 오만함에 취해있지만, 대다수는 패배감과 오만함을 동시에 경험한다. 아이가 주간반의 책상 짝꿍 민(항첩여)과 처음 교복을 바꿔 입고 학교 복도를 거닐 때의 장면이 가장 아프게 기억에 남는다. 혹여 누구에게 들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아이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를 지나치는 학생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따뜻하다. 교복의 자수 색깔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자신을 향한 허용적인 시선에 점차 미소를 짓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필자는 안쓰러운 마음뿐이었다.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아이는 민과 우정의 시간을 나누기도 하고 제일고의 우등생 루커(구이태)와 첫사랑의 시간을 나누기도 하며 달콤하고 씁쓸한 추억을 쌓아간다. 엄마와의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이내 대입을 앞에 둔 수험생의 본분에 따라 공부에 정진한다. 마침내 대입을 치르고 난 후, 신문에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아이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색다를 것 하나 없는 서사에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안도의 감정이 우위를 점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고교생활이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했으니까. 필자는 우울한 아이의 얼굴에서 열등감과 열패감에 휩싸여 무엇 하나 마냥 좋아하지 못하는 지금 세대의 십대들이 겹쳐 보았다.

 

나는 (태양을 반사해) 밝게 빛나는 달이 되긴 싫어

나는 하나의 반짝이는 유성이 되어

내 꿈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내 안의 빛을 태우고 싶어

 

 영화는 아이의 동급생 위청위에의 글을 통해 제도의 억압에 고통받는 소년들을 응원한다. 아주 어리지도 않고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은, 불안하고 미숙한 이 시기에 부디 자신이 스스로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자신의 고유한 빛을 인정하기를.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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